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비롯해 서유럽 대다수 국가의 프로 축구는 아마추어 축구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초창기 프로 축구의 경기장 여건, 선수 임금, 경기 인식 수준은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백여 년 전 아마추어 축구로 시작한 프로 축구는 이제 전 세계 자본을 흡수해 믿기 힘든 과거를 지우고 있다.

이에 반해 뒤늦게 프로 축구를 키운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시행착오를 덜 거쳤다. 다른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선례로 삼기도 했지만, 일부는 정부 주도 아래 계획적으로 리그를 구성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정부 주도 아래 구성된 프로 축구 중 일부는 스포츠 정신과는 무관한 의도로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3S(Screen, Sports, Sex)'로 알려진 우민화 정책을 통해 K-리그의 탄생과 발전을 가능케 한 것이 그 예다.

1. 독재자의 우민화와 축구 발전

프로 스포츠, 특히 프로 축구 발전을 통해 우민화 정책을 펼친 원조는 포르투갈의 독재자 안토니오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이하 살라자르)다. 오랜 전쟁으로 정치에 신물이 난 포르투갈 국민은 살리자르 집권 이후 시행된 '3F'(Fuetbol - 축구, 종교 - Fatima, 파두 - Fado 포르투갈 전통 민속 음악) 정책에 완전히 매몰된 상태였다. 치밀했던 살라자르의 36년 독재는 '카네이션 혁명'(1974년 4월 25일에 발생한 포르투갈의 무혈 쿠데타)으로 막을 내렸지만, 애석하게도 살라자르가 남긴 어두운 유산은 이미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간 뒤였다.

특히 "잉글랜드가 만든 축구를 완성했다"는 말로 유명한 브라질도 살라자르의 우민화 정책에 영향을 받아 프로 축구를 진흥시킨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20세기 초 브라질은 정치, 사회적 구조의 불균형으로 분열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당시 분열된 정치세력의 대립 종식과 망가진 브라질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시킬 적임자로 히우그란지두술 주지사 제툴리우 바르가스(이하 바르가스)가 떠올랐다.

바르가스는 임시 대통령을 거쳐 1934년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군사반란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올라선 후, 권력을 중앙 집권화시킨 탓에 많은 반발을 샀다. 이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바르가스는 축구 협회와 리우 카니발 축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일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축구를 브라질의 국가 스포츠로 탈바꿈시켜, 인종 간의 갈등 완화와 화합을 도모하게끔 했다. 이러한 지원 덕에 펠레, 가린샤와 같은 하층민 출신 선수들이 브라질을 넘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막대한 지원도 바르가스 자신이 전체주의 독재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신(新)국가(Estado Novo) 체제를 세운 것에 대한 무마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다만 같은 시기 시행한 교육, 공업, 노동자 인권, 여성참정권 진흥이라는 업적 덕에 독재자와 브라질 현대화의 아버지라는 평가가 공존하게 되었다.

바르가스 집권 시기 부흥한 브라질 축구는 1959년 지역별 프로 축구 리그 창설로 이어졌지만, 넓은 국토와 거대한 밀림, 그리고 교통망 발달 미비로 인해 전국 리그 출범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1971년 정식 명칭 '캄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 데 클럽 다 세리 A', 일명 '브라질 세리에 A'가 출범했다. 하지만 이 역시 1964년부터 집권한 군사 정권이 브라질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시행한 것이었다.

2. 소크라테스, 브라질 민주주의를 깨우다

 브라질 민주화를 필드 위에서 실현한 소크라테스.

브라질 민주화를 필드 위에서 실현한 소크라테스. ⓒ SC코린치앙스


이렇듯 군사 정권의 지원으로 성장한 브라질 구단은 운영 방식도 억압과 부당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기력한 문화가 만연해있던 시대에 상파울루를 연고로 하는 S.C. 코린치앙스(이하 코린치앙스)에 브라질 역사를 바꿀 남자가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물려받은 공격형 미드필더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190cm가 넘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발재간이 좋았고, 거기에 축구 지능까지 겸비해 1980년대 가장 화려한 축구를 구사했던 브라질 황금 4중주(지쿠, 팔카오, 세레소, 소크라테스)를 진두지휘한 수장이었다. 또한 의사 가문 집안 출신으로 축구 실력 외에도 의학과 철학 박사 학위까지 소유한 엘리트였다. 그는 이름처럼 체 게바라, 존 레넌 같은 당대 혁명가들을 존경했고, 이러한 이유로 고압적인 브라질 축구 문화에 반감을 품었다.

필연처럼 코린치앙스는 1910년대 노동자들이 결성한 클럽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을 구단이 정한 대로 움직이던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운영 방식, 운영 철학, 사소한 식단까지도 선수들 간의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적 방식이 독재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당시 브라질 군부는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우상화해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런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운동 중심에 서자, 군사 정권 입장에서도 쉽게 제지할 수 없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유니폼에 스폰서 광고 대신 '민주주의'라는 글자를 달고 뛰었다.

그리고 1982년, 코린치앙스 선수들은 투표를 독려하는 문구를 달고 경기에 임했고, 브라질 국민들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민주화된 브라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를 따라 구단의 억압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결정 방식을 선택한 코린치안스는 그해 상파울루주 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해 11월 투표 결과로 시작된 민주화의 물결이 몇 해 뒤 군사정권을 물러나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민주주의가 독재의 억압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1989년 보타포구 FR에서 15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낸 소크라테스는 15년 뒤인 50세 나이에 잉글랜드 아마추어 팀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했다. 그가 애주가에 골초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대단하다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은퇴 후 소아과 의사, 칼럼니스트, 소설가, 축구 해설위원 일을 하며 현역 시절 못지않은 열정을 발휘했다. 하지만 민주화를 향한 그의 헌신과 달리 브라질은 군부 정권이 무너진 후 한참 동안 경제 위기에 처했고, '브릭스'(BRICs, 신흥경제대국)로 분류된 이후에도 빈부격차와 치안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3. "더 좋아진 나라에 내 골을 바치리라"

  소크라테스가 꿈꾸던 브라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꿈꾸던 브라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 SC코린치앙스


2011년 12월, 소크라테스는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알코올 과다 섭취에 따른 위장 출혈이 원인이었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나는 마신다. 나는 피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삶을 살다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인 것은 더는 브라질 국민에게 정부의 축구 우민화 정책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을 앞둔 시점부터 월드컵 개막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브라질 정부는 컨페더레이션스컵과 2014 브라질 월드컵 개최에만 한화 10조 원이 넘는 예산을 들였다. 더군다나 예산 규모를 2000년대 개최된 대회들과 비교했을 때 세 배에서 네 배 가까이 많은 예산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건설업자와 정치권의 유착관계가 의심되고 있다.

월드컵 개막을 반대했던 시위대는 "축구가 아니라 보건과 교육, 기반 시설 등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여전히 브라질 저소득층은 축구를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은 룰라 다 시우바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를 감싸려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경제 위기 대응 미흡과 재정회계 법 위반으로 탄핵당하였다.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직위를 승계한 후 정식 대통령이 되었지만, 전직 대통령들의 문제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다수다.

세상을 떠난 소크라테스가 축구를 통해 브라질을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로 이끌 수 있었다고 믿었기에 했던 말, "더 좋아진 나라에 내 골을 바치리라"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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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청춘스포츠에도 게재됐습니다.
코린치안스 브라질 축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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