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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태어나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고 쓰고 좇고 싶은 것이 부끄럽지만 여전히 내 몫의 즐거움을 좇고 내 몫의 부끄러움 또한 살아내고자 이렇게 글에 새긴다." - <살아갑니다> 중


시골에서 태어났다. 스포츠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승부욕이 시험에서 발휘되어 버렸는지, 경쟁률이 높다는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운 좋게' 입학을 했다.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듯 시험을 치르고, 친구들을 쫓아 KAIST에 들어갔다. 이후로는 10년을 대전의 변두리에 있던 캠퍼스에서 오로지 '나 개인의 인생'에 매달린 채 살아왔다.

나라에 '빚'을 졌다거나, '조국과 민족의 중흥'을 위해 삶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나라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겠거니 여겼을 뿐이다.

누구도 '이리 살아야 한다' 강요하지 않았고, '이리 살지 말아라' 막지도 않았다. 나는 책에서 배운대로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우리 선배들의 희생에 기대어,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며 X-세대라고 불렸던 90년대 학번으로서,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다'(교실이데아, 서태지와 아이들)는 어른들의 유혹에 저항하겠다며 '난 내 삶의 주인이다' 외치고 다녔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도,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도, 하기 싫은 것에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자유로웠고, 당당했고, 내 삶이 자랑스러웠으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여유로웠다. 내 앞에 작은 손해가 있더라도, 언젠가의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2008년이 되었고, 나는 직장을 옮겼을 뿐인데, 갑자기 세상이 180도 달라졌다. 이유를 알 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갔다.

"질문하는 것이 직업인 기자들조차 질문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정해진 대본대로 진행된다. 설령 청와대가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한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자들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들의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한편 새삼스럽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질문하지 않는 정서가 익숙한 나라니까. 하지만 세상은 늘 유난스러운 사람들이 바꿔오지 않았나. 우리는 언제부터 그 '유난스러움'을 잃어버렸나." - p.263


여기, 끝없이 '부끄러움'과 세상에 대한 '빚'을 얘기하는 젊은이가 있다. 날개에 적힌 프로필을 살펴보니 나보다 열두 살이 어리다. 그가 부끄러움을 느낀 세상이 어쩌면 '180도 달라진' 이후의 세상에서 내가 '부끄러움'과 '비겁함'을 얘기하기 시작한 무렵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즈음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없었'고 '좋아하는 것을 드러낼 수 없었'으며, 조직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을 느껴야 했다.

 <살아갑니다>
 <살아갑니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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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은 '나를 숨기는' 것의 반복이었고, 그렇게 '나 자신'을 숨겨야하는 일상은 '자부심'과 '자존감'을 갉아먹고 비겁함 속으로 나를 숨겼고, '월급'으로 교환되는 '삶의 가치'에 자괴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고민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를 만났다. 반가운데, 미안하다. 결국, 그를 힘들게 하는 고민은 내가 '마음껏 누리던' 자유의 대가가 아닌가?

권성민의 에세이 <살아갑니다>를 읽어내려가는 내내, '어른스럽고 용기있는 젊은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 온 그에게는 'MBC 예능PD'라는 직업 앞으로, '조직에 위해를 가한 해직자'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그는 2014년 5월 MBC의 세월호 보도 행태를 비판한 대가로 정직 6개월을 받은 뒤 업무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유배나 다름 없는 그곳에서의 일상을 웹툽 '예능국 이야기'로 SNS에 올렸다가 2015년 1월 해고 되었다. 이후 지난 5월 법원이 해고와 정직 모두 무효라 판결하며 2년 만에 MBC 예능국으로 돌아와 그간의 기록을 모아 책을 냈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더 좋은 나라는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나라이고, 한나절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퇴근한 뒤 가족들과 저녁을 들며 영화 한 편을 즐길 수 있는 나라이며, 아이들이 햇살을 벗 삼아 양껏 뛰어놀 수 있는 나라이다. 좀 더 어려운 일, 좀 더 많은 일을 하면 쇠고기도 사 먹고 비싼 술을 마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일을 하든 하루 8시간만 열심히 일하면 먹고 입고 누워 자는 걱정만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나라이다. ...(중략) ...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운영을 잠시 맡겨둔 공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거나 사소한 잘못이 보인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그것을 묻고 따지고 덤벼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짜 애국,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다." - p.245~246


젊은이들은 그들이 '꿈꿔온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그들이 기대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젊음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들이 배워왔고 희망하는 '사랑하는 대한민국'이 후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젊음'이 써놓은 글이 가득 품고 있는 고민들을 읽어내려가며 부끄러웠다. 나는, 우리의 선배들은, 지금의 후배들에게 염치가 있기는 한가?

젊음이 묻는다. 세월호의 아이들은 왜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가? 세월호의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한 국가의 시스템을 제대로 바로잡아달라 얘기하는 것이 잘못인가? 세상의 불합리에 의문을 갖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을 '불법 시위꾼'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은가? 세상을 바꿔달라 행동하는 사람들은 공권력의 폭력에 희생되어도 좋은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을 만큼 노력을 해도 이룰 수 없을 꿈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그 세상의 시스템을 바꿔달라 떼를 쓰는 것이 잘못인가? 세상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지 않은가? 세상의 잘못에 대해 잘못이라 얘기하고, 제대로 동작하도록 고쳐달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한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은 그들의 용기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는 에필로그를 통해 '이 글들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고 했다. 자신이 세상으로 내뱉은 모든 것은 '빚'이라고도 했다. 끝없이 자신이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고보니, 그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염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그리되면, 혼자만 너무 힘이 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요즘같은 '어처구니없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괴로움일지 조금은 짐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세상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닌데 말이다.

묻고 싶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자신의 이상과 희망을 외치는 젊음에게 그저 '견뎌라', '버텨라' 말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가? 그가 하루하루 '버티는' 청춘은 결국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빚'을 홀로 버티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삶을 핑계로 세상과 타협하며 '함께'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적당히 세상과 타협한 대가로 '개돼지' 취급을 받은 채 살아온 것이 확인된 지금, 기가 막히지 않은가? 그를, 세상의 젊음을 더 이상은 외롭게 하지 말자. 같이 버티고, 같이 견뎌내고, 그들의 짐을 나눠지자. 함께 살아가자.

책정보: <살아갑니다> 권성민 에세이,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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