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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규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은 장애인 시설 인권침해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동체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정중규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은 장애인 시설 인권침해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동체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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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자선 위주 장애인사업, 교회는 예수를 잘못 해석"에서 이어집니다.)

- 그리스도교가 소유, 운영하는 복지시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거슬렀는가와 무관하게 이 시설들에서 끔찍한 인권유린 사태가 벌어져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희망원의 경우도 2년 동안 129명의 희생을 치른 다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적한 대로 장애인 인권유린, 정부예산 횡령, 정부기관과의 유착 등은 정부예산을 지원받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대개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수용시설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이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시설에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크다.

거기에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과 시설 사이에 악어와 악어새 같은 유착관계가 형성되면 내부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기란 쉽지 않다. 나는 장애인으로서 국내 사회복지시설의 실상을 접해왔는데, 희망원 역시 예상한 그대로였다. 누구를 질타하고 처벌하는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물론 전국의 모든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그러나 '가톨릭재단이 운영하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등 전국 최고의 모범복지시설로 평가받아온 희망원의 실태가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어떠할까?'라고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외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한국의 장애인 복지는 '시설수용'이다. 그런데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같아 보인다. 앞서 위원께서 지적하신 탈시설이 대안이라는 판단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탈시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사회는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다. 탈시설이 성공하기 위해선 어떤 덕목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해결의 실마리는 탈시설화에 있다고 본다. 희망원 사태의 궁극적인 해결책도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 수용시설에 갇혀 있는 이들을 다시 껴안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런데 배제·격리가 본질인 수용시설은 결국 우리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 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외국인들에게 부끄럽다'며 부랑인들을 마구 잡아 가뒀다. 꽃동네, 희망원, 형제복지원 같은 대형수용시설들이 급성장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와 일치한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시설에 수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을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라도 시설 내의 노숙자와 장애인들의 사회복귀와 사회통합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예산 총액은 400조 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규모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껴안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면서 함께 살겠다는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 있어"

 대구 희망원은 2년 동안 129명의 희생을 치른 뒤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중규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맞서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대구 희망원은 2년 동안 129명의 희생을 치른 뒤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중규 희망원 인권유린 진상조사위 공동위원장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맞서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 SBS <그것이 알고싶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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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열린 '병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자비의 특별희년 미사'에서 '육체를 우상으로 섬기는 이 시대에 불편한 육체를 지닌 이들은 수용소에 가두어지거나 숨겨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비추어 꽃동네 방식, 즉 '아직도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는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장애인복지사업은 근본적인 개혁을 시작할 때다. 예수의 복지정신에도 어긋나는 수용시설 위주의 반(反)예수적 장애인복지사업에서 벗어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누이 강조한 바 있는 장애인 자립과 사회통합을 꾀하는 장애인운동에 인적·물적·복지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장애인에게 진정한 은총은 얻어먹는 일이 아니라 '자립'이다. 그러나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들은 1980, 1990년대 보조금에 길들여져 본래설립 목적인 은총(카리스마)이 퇴색됐다. 본질을 회복하려면 우선 국고 보조금의 굴레에서부터 스스로 해방해 잃어버렸던 초심, 즉 한 생명을 존엄하게 여긴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공동체 의식 회복해 장애인 껴안는 게 근본 해결책"

- 끝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정부 역시 장애인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현 정부에 제안하고자 하는 정책이 있다면?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해 희망원과 같이 인권유린이나 공금 횡령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시설에 대해서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지원을 중단하거나 시설 폐쇄를 가하는 법제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2017년 예산안 개요'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16개를 신규 지원해서 가정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 대한 주거서비스 제공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주거서비스 제공이 어떻게 시설 확대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장애인 시설지원 확대는 OECD회원국인 대한민국이 장애인 자립생활권을 명시한 UN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자, 선진 장애인 복지의 탈시설화 흐름에도 역행하는 조치다.

심지어 2017년까지 실시 예정인 제4차 장애인 정책 5개년 종합계획에 따르면 장애인 대규모 시설 개편과 탈시설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강화계획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비판받아 마땅한 안이라고 본다.

정부는 가정생활이 어렵다는 장애인들을 시설에 수용하려들기에 앞서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생활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규모 거주시설에 집단 수용해놓고 보조금을 몰아주는 행정편의적인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자립생활을 꾀하는 개별 지원정책으로 전환해, 지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장애인이 살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다. 거꾸로 해석하면 정부의 국정철학, 즉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관에서 국민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헬조선'이라 불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간화에 앞장설 수 있는 복지 마인드를 지닌 정부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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