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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한가하게 진도 나갈 때인가요? '최순실 대통령 사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지난 며칠 간 실시간 검색어 1, 2위가 하야와 탄핵이던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아웃'되는 건가요?"
"지금껏 해온 거짓말이 들통 난 셈인데,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에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나요?"


수업시간 출석을 부르기도 전인데 아이들이 다짜고짜 '최순실'과 '박근혜'만 입에 올렸다. 아예 책상 위에 교과서와 공책도 챙겨두지 않은 채 삼삼오오 모여 '시국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 사이의 대화에서 그 흔한 연예인 가십거리나 해외축구, 게임 이야기 등이 쏙 들어갔다.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 최순실은, 지금 아이들에게 그 어떤 아이돌보다 유명한 이름이 됐다.

'언니'는 '동생'에게 연설문과 외교문서 등 국가기밀을 입맛대로 첨삭하고 공직 인사권을 행사할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언니'를 보좌해야 하는 참모들은 '동생'의 눈치를 살피며 수족 노릇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동생'과 그의 측근들이 '언니'의 이름을 앞세워 재벌에게 수백억 원을 뜯어내고 민간 기업의 인사에까지 손을 뻗쳤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은 '두 막장 자매'가 운영하는 나라였다.

"'청소년 지지율' 조사하다면 1%대일 것"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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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번 대통령의 '수명'이 다했다고 표현했다. 대통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통치 능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에게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악담마저 아이들 입에서 무람없이 쏟아졌다. 이번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아이들의 기억 속에 전무후무한 최악의 대통령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에 견준다면 4대강 사업으로 천문학적 혈세를 낭비하고 환경 파괴를 일삼았던 전임 대통령이 차라리 '성군'이었다는 조롱마저 나왔다. 그나마 그는 '삽질'이라도 잘하지 않았느냐면서. 한 아이는 최근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했다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마저도 믿을 수 없다면서, 만약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10대 청소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면 1%에도 미치지 못했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그가 갈 곳은 '어버이 연합'이 제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기꺼이 방패막이를 자임하며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돌리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그 은혜에 보답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어딜 가든 패션 감각을 뽐내는 걸 즐겨하니, '가스통 할배'들 사이에서 대통령의 군복에 선글라스를 쓴 차림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조롱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조롱이 아니라 저주다.

그런데,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야 대통령의 과거에 대해 비로소 알게 됐다는 아이가 말문을 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과거를 찾아 읽다보니, 그가 왜 한낱 '친한 여동생'에게 의지하고 전권을 위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박근혜 대통령은 심신쇠약 상태의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수긍했다. 그의 말마따나, 어린 나이에 양친 부모 모두를 흉탄에 보낸 마음의 상처에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속세와 인연을 끊고 지내야 했던 은둔의 삶이 대통령의 몸과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진 않았을 것이다. 한 아이는 대통령이 혼자 살면서 '국가와 결혼했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화가 잠시 '대통령도 피해자'라는 분위기로 흘렀지만, 결국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대화는 쉬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1번'에 투표한 국민들부터 우선 반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후보자들의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한 언론들의 책임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뒷담화가 이어졌다. 몇몇 아이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국정원의 댓글 사건까지 다시 끄집어내기도 했다.

비선 실세가 실질적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되레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그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나도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표현대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온 국민이 직접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역사에 빗댄 '십상시'나 '환관정치'라는 말로도 다 설명해낼 수 없는 엽기적인 상황에 10대의 아이들마저 혀를 내두르고 있다.

대학생과 교수 사회의 잇따른 시국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을 넘어 현 정부에 대한 불신임 선언이다. 이는 국정을 이끌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내놓는 그 어떤 정책도 저의를 의심받게 될 것이고,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함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게 됐다. 일부에선 이미 '무정부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이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버렸다는 것이다.

하야도 탄핵도 어렵다면, 그냥 '가만히 계시라'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윈민 미얀마 하원의장을 접견하기 위해 무궁화실로 들어서고 있다. 2016.10.28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윈민 미얀마 하원의장을 접견하기 위해 무궁화실로 들어서고 있다. 2016.10.2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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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회가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업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탄핵할 사유야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만 해도 이미 차고도 넘친다. 일부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사례를 들어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지만, 그보단 기나긴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국정 농단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이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처라면, 진상규명은 재발을 막고 역사에 교훈을 남기는 선결 조건이며 당위적 절차다.

그렇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하야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처럼 중요한 사안을 최순실의 '조언' 없이 스스로 결정할 능력도,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는 최순실의 '아바타'에 불과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나. 딸과 함께 도피 중인 최순실은 당장 제 앞가림하기도 녹록지 않은 처지다. 지금 문자로든 메일로든 대통령에게 '조언'할 만큼 한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오직 한 가지뿐이다. 남아있는 1년 8개월 남짓의 임기 동안 '가만히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 발린 국가 안보나 경제 활성화 대책을 신뢰하기는커녕 후안무치한 행태로 여긴다. 국민들로부터 이미 정치적, 도덕적 '파산 선고'를 받은 마당이니, 사실상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혈세로 주는 월급이 아깝긴 하지만 '청기와 호텔'에서 남은 임기동안 잠자코 지내라는 것이다.

과연 '식물 대통령'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든든한 우군이었던 보수 신문들과 공생 관계를 지속해온 종편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남은 '입'이라곤 일찌감치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일부 지상파 방송뿐이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라도를 조리돌림하며 정부와 여당의 자료 창고 역할을 해온 '일베'조차 하야와 탄핵을 입에 올리는 형국이니, 대통령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

머지않아 대통령과 측근들을 '결사 옹위'했던 검찰조차 늘 그래왔듯 대통령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다음 주인을 기다리며 되레 대통령을 물어뜯는 개로 탈바꿈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다. 뻔히 예견되는 이렇듯 참담한 상황을 그들이 마냥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역사가 증명하듯,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발악을 할 것이다.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대통령을 최순실의 '꼬붕'이라고 놀려대던 한 아이는 '불길한' 예측으로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프로야구를 빗대자면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대통령과 측근들이 조만간 엄청난 승부수를 띄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승부수란, 바로 전쟁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아이들의 말에, 역사는 기득권층의 농단으로 늘 그렇게 전개되어 왔다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모든 위기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전쟁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애먼 국민들만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벌어질 테지만, 저들은 늘 국민의 안위보다 기득권 유지에 골몰해왔죠. 세월호 참사에도 지금껏 눈 깜짝도 하지 않았던 자들이잖아요. 한국 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시키고 줄행랑 친 이승만의 후예라면, 전쟁을 불사하고도 남을 사람들이에요."

선거권이 없는 아이들조차 대통령을 버렸다. 앞으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겠다는 아이가 태반이었다. 전국적으로 불붙은 시국 선언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정치권은 아이들의 잠재된 분노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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