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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온 국민이 경악하고,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밥을 못먹을 것이다." - 정두언 전 의원

대한민국이 '비선실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 농단' 논란으로 뜨거운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씨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순실씨 관련 보도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KBS조차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영상을 공개했으나 28일 오후 4시께 해당 영상을 삭제했다.

최태민씨가 재조명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관계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1975년부터 시작된 '박근혜-최태민'의 관계부터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와의 관계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990년부터 언론에 등장한 박근혜-최태민 관계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박정희·전두환 정권 당시 정부에 있었던 인사들의 증언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최태민씨는 나를) 도와주신 분"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답했다(1988년 8월 23일 <레이디경향>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쓴 탄원서. 이 문서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으로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의 전횡과 비위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가 쓴 탄원서. 이 문서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으로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의 전횡과 비위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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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박지만 남매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탄원서. 작성일인 1990년 8월 14일 표시 아래로 박근령(2004년 개명 전 이름 박근영), 박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탄원서. 작성일인 1990년 8월 14일 표시 아래로 박근령(2004년 개명 전 이름 박근영), 박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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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마이뉴스>는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와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지난 2007년 8월 단독 입수해 보도한 한 문서를 재조명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2004년 개명 전 이름 박근영)씨와 박지만씨가 1990년 8월 14일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가 바로 그것이다.

[관련 기사] "최태민씨, 언니 방패막이로 재산 착취... 그의 손아귀에서 언니를 구출해주세요"

탄원서는 A4 용지 12매 분량으로 박근령씨, 박지만씨의 명의로 작성됐다. 글씨는 박근령씨가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남매는 ▲ 금전 편취 ▲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 부모님에 대한 명예 훼손을 구분해 총 18개 항목에 걸쳐 최태민씨의 부조리를 노 전 대통령에게 고발했다.

이 탄원서가 제출된 때는 박근령씨가 최태민 당시 육영재단 고문의 전횡을 문제 삼으며 박근혜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과 갈등하던 시기였다. 박근령·박지만 남매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 될 일이 눈앞에 닥쳐" 노 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문서는 박 대통령의 가족이 바라본 최태민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주기에 희소가치가 매우 크다. 박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관계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이야기다. <오마이뉴스>는 2007년 최초 보도 당시 다루지 않았던 내용까지 포함해 열쇳말(키워드)별로 정리, 추가 공개한다.

[열쇳말①] 밀착, 방패 그리고 차단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영애 박근혜. 사진 맨 왼쪽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영애 박근혜. 사진 맨 왼쪽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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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에서 박근령씨와 박지만씨는 최태민씨가 박근혜 대통령에 접근해 자신의 방패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태민씨는 영애 박근혜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어머니(육영수씨)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라고 써놨다. 아래 박근령·박지만 남매의 탄원서 속 증언을 살펴보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최태민 - 기자 주)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하여 저희 언니(박근혜 - 기자 주)를 자신의 방패로 삼아왔습니다."

"최씨(최태민 - 기자 주)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들을 … 이간질을 시키고, 이로 인해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저희들의 사생활마저 일일이 간섭하여 완전히 망쳐놓았으며, 우리 형제를 한자리에 만날 수조차 없게 하고 있으니(경비원을 붙여 언니를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전화 대화마저도 못하는 실정 … 우리는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

"우리 언니의 말 한마디면 최씨 자신은 어떠한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 같습니다."

"제5공화국 시절(1981~1988,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 기자 주) 박 대통령 유족에게 접근 않겠다는 각서를 (최씨가) 썼으나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최태민씨가 영애 박근혜를 '장악'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맥락의 증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자국으로 보낸 비밀문서에도 같은 맥락의 언급이 있었다.

"최태민 목사가 그녀(박근혜 - 기자 주)의 인성 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열쇳말②] 치부, 착취 그리고 소유

1977년 1월 19일 최태민 총재가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었다.
 1977년 1월 19일 최태민 총재가 새마을 국민운동본부 발족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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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대로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이 탄원서를 쓴 배경은 '최태민씨의 전횡'이다. 최태민씨의 횡령 및 비리 행위는 왕성한 대외활동을 벌이던 때부터 있었다. 중앙정보부는 보고서를 통해 영애 박근혜와의 친분으로 정·재계 및 정부관료에 접촉해 인사·승진·공천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했는데 총 44건에 액수는 3억1700만 원이라고 적어놨다. 당시 물가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 최태민 거세 ▲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 해체 ▲ 청와대·박근혜에 접근금지 등의지시를 내렸다(선우련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 비망록).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을까.

"최씨는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 박근혜 이사장의 비호 아래 치부(致富 - 기자 주)하였다."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에게 밀착해 …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하여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

"최씨가 (육영재단, 장학재단에 - 기자 주) 그의 측근과 친인척을 침투시켜 뜻을 같이한 모든 분들을 사업체로부터 제외시켰습니다."

"부모님의 정성 어린 공익사업들이 … 오로지 최씨 휘하에서 최씨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운영되는, 최태민씨의 개인 소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씨는 부모님의 유덕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놓고 이름만 부모님 기념사업회(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이고 실제 내용은 최태민 기념사업회로 전락…."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근령·지만 남매는 이렇게 주장했다.

"… 사업회의 운영진이나 이사진 교체나 개편 시, 행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이사의 임기도 끝나기 전에 이사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게 이사직을 사임한 것 같이 서류를 작성하여 최씨의 임의대로 이사 개편을 한 후 통보도 않은 상태로써 이것은 행정적인 불법행위…."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최태민씨가 '불법행위'를 통해 축적한 부가 그 후손에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바로 '비선실세 국정농단' 논란의 주인공 최순실씨 말이다. 최순실씨는 서울 강남, 강원 평창의 부동산 등 수천억 원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쇳말③] 환상, 속았다 그리고 구출

박근령씨와 박지만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중 일부분.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해도 듣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박근령씨와 박지만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중 일부분.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해도 듣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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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의 눈에 비친 영애 박근혜는 '환상'에 빠져 '철저하게 속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고 힘도 없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유족 보호 차원'으로 언니를 '구해달라'고 사정한다.

"부디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십시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언니를 잃고 싶지 않지만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 순진한 저희 언니 같은 사람에게 교묘히 접근하여 속이고 이용하는 인면수심의 최씨 같은 사람이 우리들 주위에서 맴돌고 있는 한 …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각하 내외분뿐이라 사료됩니다."

"언니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과 이간시키고 완전히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키는 최씨의 손아귀에서 저희 언니를 속히 구출해주시어 … 최씨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 이사장의 청원(최태민씨를 옹호하는 부탁 말씀)을 단호히 거절해주시는 방법 외에는 … 우리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26년전 박근령·박지만의 '예언'이 들어맞았다?

JTBC가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씨의 사진을 지난 26일 공개했다. 한편 최씨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JTBC 캡쳐=연합뉴스]
 JTBC가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씨의 사진을 지난 26일 공개했다. 한편 최씨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JTBC 캡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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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관계를 고발한 탄원서는 애절하게 호소하는 문체로 가득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언니를 구출해준다면 우리 유가족은 부모님의 뜻을 기리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면서 살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번 기회에 저희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태민씨가 죽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탄원서 작성 26년 뒤, 그의 딸 최순실씨가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단하는 정황이 연일 드러나고 있다. 최씨 일가의 '농단'에 '국정'이 '희생'되고 있는 모양새다. 더 큰 규모로 박근령씨와 박지만씨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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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근혜, #최태민, #최순실, #박근령, #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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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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