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더 댄 밤즈> 영화 포스터

▲ <라우더 댄 밤즈> 영화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죽음이 초래한 아픔과 이것을 극복하는 치유는 영화에서 흔히 만났던 서사다. 영화 <라우더 댄 밤즈>도 종군 사진기자였던 이사벨(이자벨 위페르 분)이 사고사를 당한 후에 남겨진 남편 진(가브리엘 번 분)과 두 아들 조나(제시 아이젠버그 분), 콘래드(데빈 드루이드 분)가 겪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

연출을 맡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모두가 둘러앉아 눈물을 흘리는 슬픈 드라마는 피하고 싶었다. 기억, 기억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자아와 정체성이 흥미롭고 영화 속에서 특정한 기억의 과정을 드러내려고 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기억에는 절망과 희망이 모두 들어있다"는 설명을 추가했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기억과 상실의 교차로에서 선 가족을 독특한 방법으로 그려간다. <라우더 댄 밤즈>가 사용하는 화법은 감독의 전작 <리프라이즈>(2006)와 <오슬로, 8월 31일>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영화 <라우더댄밤즈>

영화 <라우더댄밤즈> ⓒ 그린나래미디어(주)


<트레인스포팅>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리프라이즈>는 작가로 성공하길 바라는 두 젊은이가 느낀 시간과 감정을 조각으로 흩뿌리는 전개를 구사한 영화였다. 마치 그들이 겪은 실패의 끄트머리에서 출발한 듯한 <오슬로, 8월 31일>은 약물 중독이었던 남자가 치료를 받고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주변의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행보를 따라간다.

전작이 보여주었던 실패와 절망감은 <라우더 댄 밤즈>에도 흐르고 있다. 다시 약물에 빠져드는 남자의 모습으로 끝나는 <오슬로, 8월 31일>은 세상(또는 가족)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 이사벨의 자살과 겹쳐진다. 남은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다.

<라우더 댄 밤즈>는 떠난 자와 남겨진 자를 오가면서 정서를 관찰한다. "가족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다"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슬픔이란 감정이 각자의 경험과 위치에 따라 다르기에 이런 복합적인 구성을 택했다"고 부연한다. 영화는 이사벨, 진, 조나, 콘래드의 시점을 빌려 과거라는 회상, 현재라는 시간, 미래라는 상상 위를 쉴 새 없이 걷는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때론 꿈이란 환영의 공간도 넘나든다.

 영화 <라우더댄밤즈>

영화 <라우더댄밤즈> ⓒ 그린나래미디어(주)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사벨을 기억한다. 진은 아내가, 조나는 어머니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진과 조나는 콘래드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 사고사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콘래드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이사벨의 삶과 생각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영화는 "진실이란 게 대체 뭐죠?"라는 질문을 던지고, 흥미로운 실마리를 덧붙인다. 이사벨은 콘래드에게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사진의 의미가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이것은 시각에 따라 단 하나의 진실이라 믿었던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는 시각을 바꾸어서 사람과 기억을 마주하길 원한다. "우리가 스스로 구축한 자신의 역사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언제나 해방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라는 감독의 견해는 몇 개의 장면을 통해 점차 발전한다. 영화에서 진이 콘래드가 우려스러워 전화를 걸고 몰래 따라가는 장면은 진의 시점과 콘래드의 시점으로 두 번 등장한다. 두 장면을 대비시켜 영화는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게끔 한다.

 영화 <라우더댄밤즈>

영화 <라우더댄밤즈> ⓒ 그린나래미디어(주)


콘래드가 어릴 적 어머니와 숨바꼭질을 했던 장면은 '이해'를 조명한다. 당시 기억을 떠올린 콘래드는 같은 장면을 어머니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콘래드는 이사벨이 어디 숨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놀이를 계속하고 싶어서 모른 척했다는 진심을 뒤늦게 알게 된다.

콘래드가 짝사랑하던 여자와 나란히 걷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콘래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그녀를 보며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슬픔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과정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으로 이어졌고 '깨달음'을 준 셈이다. 이어서 영화는 여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콘래드는 세월이 흘러도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콘래드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콘래드가 가족을 이해하고 그 속으로 돌아가는 순간, "폭탄보다 거대한"이란 영화 제목은 범위를 확장한다. <라우더 댄 밤즈>는 첫 장면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생명과 가족이란 '폭탄보다 거대한' 불가사의함을 이야기한다. 이후 죽음을 통해 '폭탄보다 거대한' 상실의 고통을 묘사한다. 그리고 서로 보듬어주는 가족을 비추며 영화는 노래한다. "사랑의 힘은 폭탄보다 거대하다"고.

라우더 댄 밤즈 요아킴 트리에 가브리엘 번 제시 아이젠버그 이자벨 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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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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