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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밖에 나가있는 동안 가스 불을 끈 기억이 나질 않아 안절부절 할 때가 종종 있다. 믿을만한 이웃집이나 관리사무소의 신세를 지더라도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될 만큼 가스는 생활에 유용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정기점검이 중요하다.

가스 관리는 대부분 가가호호 방문하여 검침, 점검, 고지서 송달 업무를 하는 안전매니저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업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생각이 이 쯤 되니 안전매니저들의 안전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지난 서울 A지역의 도시가스 고객센터에서 10년, 15년 넘게 안전매니저를 하고 계신 B씨와 C씨를 만났다. 예전에는 서울도시가스 직영으로 소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서울도시가스 본사에서 퇴직해 나가는 관리자들에게 지분을 주어 개인사업자로 지역고객센터를 관리하도록 함에 따라, 떨어져 나온 개인사업자에 소속돼 있다가 이번에 4개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합쳐지면서 A지역의 고객센터에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태 저희가 정규직인 줄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근속 수당이 없기 때문에 1년 계약직이라 하더라고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정규직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어요. 대부분 1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져요. 지역별 고객센터도 서울도시가스 본사에 속해 있고 서울도시가스는 서울시에서 관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PDA에 나타나지 않는 업무와 어려움들

공식적인 사무실 출근은 한 달에 한 번. 대부분 PDA로 자료를 받아서 처리하는데 보통 6개월간 1인당 300~400세대를 맡는다고 한다. 가구 방문 횟수는 고지서 송달과 검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안전점검으로 6개월 동안 나눠서 한 번씩 방문해서 한 가구를 6개월 동안 13번 방문하게 된다. 그러니 그 구역에 대해서 빠삭하게 잘 알 수밖에 없고 가끔 통장님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할 정도라고.

"안전점검이 첫 달이 10%고, 다음 달이 20%면 한 달에 700세대를 해야 해요. 하루에 50세대를 완료하려면 150번 정도 세대 방문을 다녀야 가능해요. 고객들이 집에 많이 계신 시간을 골라 돌아다니니 그 시간에는 노동강도가 강해지고 업무 시간이 일정할 수 없죠. 그것을 서울시에서 감안해줘야 하는데 시간만 따지는 거예요. PDA를 통해서 시간 안에 몇 집을 하는지만 계산하더라고요. 그런데 PDA에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고지서 일일이 보내지. 고객님께 문자 보내지. 방문을 했는데 사람이 없는 경우는 메모를 남겨두기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전화 받아야하지."

안전매니저들은 수도나 전기처럼 검침과 고지서 송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큰 휴대폰 3배 정도 되는 무게의 PDA를 업무 내내 들고 다니면서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점검이 10납기에 몰려있는 경우는 2,3일 안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고지서를 가득 넣어 매고서 한 손에는 PDA를 들어야 해요. 왼쪽 손부터 어깨까지 무리가 가서 통증을 많이 호소해요. 검침하러 다니다 보면 거미줄도 너무 많아요. 풀숲을 헤치고 다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곳은 올라갔다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난간에 매달려서 아슬아슬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4,5층 빌라의 경우 나머지 층은 완료됐지만 꼭대기 층이 남았다면 4,5층을 계속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데 일하는 내내 걸어야 하니 다리도 돌아가면서 안 아픈 곳이 거의 없어요. 요즘 애완견들 많이 키우니 개한테 물리는 경우도 다반사죠. 그런데 조금 할퀴거나 긁히는 건 말도 못해요. 피가 줄줄 나고 살점이 뜯어질 정도는 돼야 회사에서 치료비 받는 거죠. 사냥개에 물려서 7cm 꿰맨 사람도 있어요."

일하시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로 처리하시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산재는 아주 크게 다쳤을 때 부러지거나 누워있어야 할 때나 처리하죠. 산재를 하더라도 우리는 한 달 이상 쉬지 못해요. 취업규칙에 한 달 이상 쉬면 퇴사하게 돼 있어요. 이 지역은 나만 알아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라는 거죠. 일하다 다치면 일은 누가 대신해 줄지부터 생각해요. 내가 힘드니까 동료들에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한 거예요. 동료들이 대신 도와 줄 때 예전에는 회사에서 점심 값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줘요. 다친 사람이 알아서 부담하라는 거죠. 회사에서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죠.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려고 해도 검침 기간을 피해서 해야 해요."

점검 완료 99.9%를 위해 견뎌야하는 것들

수리나 설치 기사는 고객이 원해서 하는 예정된 방문인 반면 안전점검은 고객이 원치 않은 방문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문을 닫아버리거나 못마땅해 하고 푸대접받기 일쑤라고 한다. 보통 마지막 달인 6월에 고객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 갔더니 다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분들 많으니까.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어서 노크를 하고 가스점검 왔다고 하니 안 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대번에 XXX 욕을 하더라구요. 그래도 계실 때 하시라고 달랬더니 신경질 내며 문을 열어주어서 금방 끝나는 건데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했어요. 키도 엄청 크고 체격도 있는 아들 뻘 되는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 대 칠 것처럼 손을 올리더라고요. 화를 참고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계속 서서 욕을 하고요. 얼마나 서러웠던지... 이런 일을 책으로 쓰라고 하면 몇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안전매니저님끼리는 얘기를 들으면 공감이 된다고 하셨다.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아마도 이렇게 얘기만 들어서는 못 느끼실 거라며 사무실에서도 잘 모른다고 했다.

"점검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뒤에 누가 왔는지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슥 만지는 남자들도 있어요. 팬티 입고 나오는 것은 다반사구요. 너무 당황하니까 처음에는 대처하는 게 잘 안되죠. 그러니까 이건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이 먹은 주부들이나 견디면서 하죠. 낮에 사람이 없어서 저녁에 갔는데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들하고 둘만 있는데 성추행 당하면 어쩌게 여길 들어오겠냐는 거예요. 그래도 나는 점검률 99.9%를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하니까 들어갔죠."

상황이 이 정도이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하고 감정노동관련 치유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진짜 하고 싶어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느끼거든요. 예전에 수도검침원이 성폭행을 당해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요구를 해서 나온 게 있어요. 호루라기 허허~. PDA에 누르면 회사 사장이나 상무에게 연락이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오작동이 잘 돼요. 연락이 된다고 해도 현장에 오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이미 상황 끝나죠."

외주화와 부당한 대우에 안전매니저들 뿔났다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은데도 센터에서는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뿐 아니라 각종 안내문 뿌리는 일, 제휴 카드 신청서 받기 등 잡일을 많이 시켰고 정규직으로도 인정하지 않아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불만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200세대 신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사설 업체들과 경쟁이 붙어서 우리보고 아파트에 나가서 타이머를 팔면서 가스렌지 연결 신청서를 받으라는 거예요. 물론 본 업무는 모두 하면서, 하루 일당 3만 5천원 줄테니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라는 거죠. 힘들었지만 회사에서 요구하니 열심히 했죠. 그래서 4~5천 만 원을 벌었다는데 추석 때 행정과 민원 기사들만 20만원 씩 더 주고 우린 원래 받기로 한 일당만 준 거예요.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인정을 너무 안 해주니 안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거죠. 33명 중 26명이 노조를 결성해서 교섭 중이고 교섭 대표로 4명이 들어가고 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도 안 나기 때문에 노조 결성해도 어쩔 수 없다고 우리끼리 안에서 얘기하자고 회유 반 협박 반 하는 사장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협상 대상은 일단 센터 사장이고 서울도시가스 그 다음은 서울시가 될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씀했다.

"사실은 서울시가 모두 관할해야 하는데 서울도시가스로 분할하고 여기서 또 외주화해서 교섭도 그렇게 하는 거죠. 지하철도 스크린 도어 정비를 외주에 맡긴 거잖아요. 사실 구의역 사고 보면서 얼마나 공감했는지 몰라요. 가방에서 컵라면, 빵 나온 것 보고. 우리도 검침이나 고지서 송달하러 나갈 때는 아침부터 나가는데 주택가라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으니 떡이나 빵을 사서 가요.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주택가 구석이나 아파트 꼭대기층 계단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어요. 먹으면서도 내 자신이 비참해요. 음식점이 밑에 있는데 맨날 걷는 게 지겨운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먹고 현장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게 힘들고 시간도 걸리니 자투리 시간에 먹는 거죠."

혼밥, 혼술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사회생활로 인해 빈 집이 많아지는 추세라 앞으로 일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안전매니저분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바람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현재 담당하는 3400세대에서 3000세대로 줄고, 근본적으로는 서비스 질을 보장하기 위해 2500~2600세대로 일의 양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본사에서 검침 일정 등을 잡을 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여건을 배려하는 것을 이루어나가겠다고 한다. 안전매니저의 바람들이 현실화되고 동시에 안전매니저의 안전이 보장되어 결국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 독자들부터라도 집에 방문하는 안전매니저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경희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도시가스 안전매니저, #도시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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