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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박 대통령 대국민사과 "최순실 도움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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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대통령 연설문 사전유출'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관련기사 : "최순실은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 송구").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미리 준비한 글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면서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최씨의) 도움을 받은 적 있다"면서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혔다.

또한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 여러분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기자회견은 녹화방송으로 진행됐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성을 확인하기 힘든 사과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이름을 처음으로 거론했으나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에 대한 불법 여부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 본인을 연설문 사전유출의 '주체'로 설명하기도 했다.

최씨를 둘러싼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 역시 거론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안팎에서 요구했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비서진 교체 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즉, '진정한 사과'라고 인정할 수 있는 후속 대책은 전무한 입장 표명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유출 경위나 비서진 교체 등 후속조치에 대한 질문에 "그런 것들은 어차피 수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겠느냐"라며 검찰 수사 이후에나 청와대의 조치가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국기문란행위'라고 엄벌 명하더니, 본인이 유출 지시 자백?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관련 의혹을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박 대통령은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청와대 외부의 '일반인' 최씨에게 유출한 주체를 자신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스스로 위반했다고 고백한 셈이다.

이 법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본인이나 보좌·자문·경호기관이 생산·접수·보유하는 기록물 및 물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무단으로 유출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더욱이 최씨는 이러한 대통령기록물을 취급할 자격이 없는 '일반인'이다. 그런 최씨에게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을 사전에 건넨 것을 두고 "지인의 도움"이라는 박 대통령의 주장 자체가 납득되기 힘든 셈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대통령기록물 유출에 대해 '국기문란행위'라고 스스로 비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 문건' 유출 사태 당시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면서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공권력의 후속조치도 이어졌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 이후 당시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관천 당시 행정관 등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즉, 박 대통령 본인의 말에 따르더라도, 이번 일은 단순한 "지인의 도움"이 아니라 불법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할 문제인 셈이다.

청와대 보좌 체계가 무려 2년 간 미완성? '비선 모임' 의혹까지 분출

박 대통령이 "취임 후에도 일정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힌 것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JTBC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문건은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취임 후 2년까지도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다는 납득하기 힘든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청와대 참모의 '위증' 시비를 일으킬 만하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연설문 의혹) 기사를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면서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날 스스로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이 비서실장이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위증'을 한 셈이 됐다.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 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최씨의 역할은 연설문 등의 표현을 수정하는 정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씨가 연설문 등의 표현을 넘어 정부 정책이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날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 자료를 가지고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했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비선 모임의 논의 내용과 관련, "한 10%는 미르, 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이라며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도 밝혔다.

대통령 탈당(당적 정리) 요구 들고 나온 새누리당

결국,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러한 의혹들에 속시원한 답변은 못되는 셈이다. 실제로 여야 모두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긴급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안의 심각성을 대통령이 받아들였으니 거기에 맞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정병국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박 대통령은) 그동안 최순실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의혹도 사실일 텐데 그와 관련된 위법적인 모든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답을 내놓지 않았다"면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밝혔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 탈당' 요구까지 했다. 그는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의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며 "여야가 특검 도입에 합의하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 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최순실 특검 도입 ▲청와대 비서진 전면 개편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즉각 사퇴 ▲이정현 당대표 '친구' 발언 사과 등도 함께 요구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진정한 사과는 이유 여하를 불문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정말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짚어보는 것이 우선"이라며 "어떻게 책임을 지고 개선의 노력을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신속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따로 입장 자료를 통해 "오늘 대통령의 사과는 당혹해 하는 국민을 더 당황스럽게 하는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변명"이라며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고백으로 이제 대통령 자신이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국정조사와 특검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밝혔다.


태그:#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사전유출, #최순실, #비선실세, #국기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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