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 위원회


고백하건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한 정도였다. 부모님 밑에서 이렇다할 걱정 없이 지냈고, 치열하게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먼 일로만 여겨지다 보니 정치는 '남의 나라 얘기'였던 셈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름을 아는 정치인은 대통령 말곤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특별했다. 그가 어떤 정책을 추진했는지, 어떤 업적을 이루고 어떤 점에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TV에서 이런저런 연설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은 분명 좋은 정치인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떤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신념으로 가득한 청년 같기도 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 위원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인간 노무현'의 자취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마치고 돌연 이 세상을 떠난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 대신, 깊은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그의 과거를 꺼내어 관객 앞에 내민다. 이야기의 중심은 그가 2000년 부산 북강서을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당시의 에피소드. 연출을 맡은 전인환 감독은 당시의 미공개 영상을 '발굴'해 이번 영화로 세상에 선보이게 됐다.

'정치 1번지'인 종로를 뒤로하고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이루어진 무모한 도전. 허태열 후보에 맞서 '지역감정 타파'를 부르짖는 노무현의 선거 운동은 영화를 관통하며 내내 큰 울림을 남긴다. "총알에 쓰러져 간 광주 학생들의 상처를 기억하는 호남의 지역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며 "영남이 먼저 손을 내밀자"는 주장은 경남 출신이자 민주당 당원인 그의 정체성과 맞물려 이념을 아우르는 설득력을 갖는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 위원회


주머니에 양 손을 꽂은 채 누구에게든 쫄래쫄래 뛰어가 넉살좋게 악수를 청하는 노무현의 선거 유세 장면들은 작은 보석처럼 영화 곳곳에서 빛난다. 그는 사인을 해 달라는 어린아이들의 요청에 일일이 응한 뒤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데 '2번이 좋대요' 해라"라며 장난스레 요구한다. "그러면 뭐가 좋아지는데요?"라는 반문이 따라오자 "어렵다"고 난감해 하며 짐짓 고민한다. 특유의 꾸밈없는 태도를 보고 있자니 터져 나오는 유쾌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루어진 유세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부산 갈매기'를 부르기로 약속한 그가 노래를 연습한 뒤 굳이 해당 지역을 다시 찾는 장면에서는 '바보 노무현'이란 그의 애칭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노무현을 다룬 과거의 이야기와 더불어, 영화는 세상을 떠난 그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비중을 할애한다. 특히 올해 총선에서 여수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백무현씨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언론사의 시사만화가였던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만화를 완성하고,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아 뜻을 펼치고자 하는 전개는 16년 전 에피소드와 교차되며 기시감을 자아낸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한장면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 위원회


"매번 지더라도 계속해서 싸우면 언젠가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지금을 사는 영화 속 젊은이들이 기억하는 인간 노무현의 가르침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원명, 한겨레 신문 지국을 운영 중인 조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던 장철영 사진작가, 그리고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 멤버들.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인간 노무현은 진실하고 소탈했던 이상주의자로 남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져서 보통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남긴 꿈이자 우리 모두가 해내야 할 숙제일지 모른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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