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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25일 오후 4시 30분]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시정연설하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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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나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전날 불거진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 사건에 고개를 숙였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따른 법률적 책임이나 처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명백한 대통령기록물관리 위반이며 형법상 공무관련 비밀누설에 해당되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한겨레> 보도로 드러난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말을 빌리면, 최순실씨는 박 대통령에게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정도라는 게 아닌가. 이 전 총장의 주장대로 최씨가 박 대통령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며 국정을 농단했다면 이제 우리 국민들은 "진짜 대통령" 감별사 노릇마저 해야할지 모른다.

정국이 술렁이고 있다. 최순실씨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까지 손댔다는 JTBC 보도 이후 전 국민은 '멘붕'에 빠졌다. "설마? 그럴 리가. 소설일 거야"라고 치부하며 도저히 믿지 못했던 저잣거리 풍문들이 모두 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발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로 귀결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 사건의 결말에 대한 추론이 나돈다. 대통령 연설문 유출은 청와대 비서관 중 1인의 개인적 일탈로 귀결될 것이며, 미르와 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은 자금유용 정도로 검찰조사가 무마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에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강제집행까지 시도하고 정국을 점점 강대강 국면으로 얼어붙게 만들면서, 최순실 의혹으로 향하는 국민의 시선을 백남기 농민 문제로라도 분산해서 정국을 돌파할 카드를 찾겠다는 심산 아니냐는 진단도 나온다.

문제는 현재까지 제기된 최순실 관련 의혹들을 이대로 덮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개헌을 꺼냈다. 최순실 의혹 덮기용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개헌이슈가 달궈지면 언론들은 덩달아 이를 경마 식으로 보도할 테고, 그렇게 되면 최순실 이슈가 여론시장에서 최소한 개헌 후순위로 밀리지 않겠나는 계산을 한 듯싶다. 그러나 24일치 JTBC <뉴스룸> 보도로 최순실 의혹은 또 다시 핵폭탄급으로 떠올랐고, 그 자체로 박근혜정권은 탄핵과 하야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서울대 교수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조직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일부 시민단체들은 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견을 모으며 학계와 시민사회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참여연대는 26일 오전 11시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보고 내용을 수정한 정황이 확인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최순실 의혹 규명에 불을 당기고 나섰다.

김부겸은 "내각 총사퇴"... 안철수는 "대통령도 수사대상"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본 사건에 대해 "국기문란, 나아가 국기붕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특별검사 수사와 청와대 비서진 전면 교체,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또 "오늘로서 대통령발 개헌 논의는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 안철수 "내각 총사퇴하라...박 대통령도 수사대상"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2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을 미리 받아본 사건에 대해 "국기문란, 나아가 국기붕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특별검사 수사와 청와대 비서진 전면 교체,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또 "오늘로서 대통령발 개헌 논의는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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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 당 의원은 25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JTBC 보도를 보고 한 마디로 경악했다"며 "이것은 국기문란을 넘어 국기붕괴이며 결코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이어 안 의원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은 용납불가"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진실을 밝혀라. 특검을 포함해 성역 없는 수사로 짓밟힌 국민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또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도 수사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청와대 비서진을 전면 교체하고 내각은 총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늘로서 대통령발 개헌논의는 종료됐음을 선언한다"며 "정치권은 성난 민심을 수습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순실 연설문 유출 의혹사건에 대한 입장을 냈다. 김 의원은 "국정을 대폭 쇄신하기 위해 내각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실 전면개편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사인인 최씨가 국가기밀을 열람하고 수정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충격 그 자체"라며 "대통령의 진심어린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최씨의 신병을 즉시 확보해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의원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가장 먼저 사퇴시켜야 한다"며 "최씨가 대통령의 배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제2의 차지철'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의 해명이 일관된 거짓말로 판명 났고, 이원종 비서실장의 국정감사 답변은 모두 위증"이라며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계속하다 끝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사과하면 될 일을 부인하다 화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제안은 썩은 고기를 덮어보려던 비단보였다"며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국가 중대사를 한낱 측근비리를 감추는 빌미로 삼으려 했다"고 힐난했다. 이어 김 의원은 "앞으로 박 대통령은 개헌에 대해 일언반구도 입을 떼지 말라"며 "통렬한 참회"를 거듭 강조했다.

새누리도 "박근혜가 직접 소명하고 입장 밝혀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5일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44개를 미리 받아봤다는 JTBC 보도와 관련,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 정진석 "박 대통령, 최순실 연설문 직접 해명하시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5일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44개를 미리 받아봤다는 JTBC 보도와 관련,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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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오더정당'의 오명을 뒤집어쓴 새누리당도 이번에는 태도가 다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보도에 제기된 문제가 모두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소명하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사정당국은 청와대의 누가 일개 자연인에 불과한 최씨에게 문서를 전달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최순실 사태는 '배신의 정치'의 결정판"이라며 "공화국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능멸한 최순실 사태 수사를 위해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들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고 그걸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국내자본을 빼돌린 것은 권력형 비리의 일단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국정을 농단한 데 대해서는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최순실씨를 국내로 불러들여 진상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된 지 벌써 1개월에 넘는 마당에 여전히 최순실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이 최순실씨가 쓰던 테블릿PC를 입수해 조사 중이라고는 하나 종적을 감춘 최순실씨를 찾아내 국내로 데려올 생각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야권의 정치인들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최순실씨 압송과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민평련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유출 총책이라도 처벌"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이 거대한 권력형 비리와 국정농단 사건을 책임지는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다.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처럼 "인신공격성 논란"으로 갈음할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누구를 통해 왜 대통령의 연설문이 사전에 최순실씨에게 건너가게 된 것인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평화국민연대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기밀이 담긴 회의록 등 청와대 핵심 문건을 아무 직책과 권한이 없는 개인 최순실이 수정했다는 것은 비선실세 의혹이 현실로 확인된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개인 최순실에게 통째로 맡긴 명백한 국기문란이자 국정농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청와대의 시스템상 대통령의 연설문, 회의록 등 국가 핵심 문건은 외부로 유출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며 "이것이 외부로 유출되고 최순실씨에 의해 수정까지 되었다는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모르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이들은 "이번 대통령 연설문 유출 사건은 대통령 본인이 직접 관여한 것"이라며 "문건의 유출과 수정을 방기한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해야 하고, 설령 그 책임자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유출의 총책임자라면 그 스스로 처벌까지 받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서의 대외 유출은 금지다.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생산·접수된 모든 기록물에 이 법률은 적용된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공무상 비밀 누설죄에 해당될 수 있으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해당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꺼냈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설 대안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또 다른 우회로를 찾아야 할 터이다. 백남기 농민의 부검 영장 강제집행 시도로도 돌파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는 오래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의 위기에 선택할 카드 중 첫째는 개헌이요, 둘째는 국지전이라 예측해왔다. 친박 정권의 연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 얘기를 전해듣는 기자들은 전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최근에는 다들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유는 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사실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저잣거리의 풍문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끔찍한 한 대목을 함께 지나는 것일까.


태그:#박근혜, #최순실, #비선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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