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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빠듯한 살림인지라 아내는 여지껏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래 해온 일인데도 계속 새로 나온 책을 봐야 하는 업이라 바쁩니다. 별로 즐거울 틈이 없지요. 아이 둘을 건사해야 하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한동안 무슨 바느질을 그리 했습니다. 뭐냐 했더니 퀼트라네요. 쉴 때면 늘상 매달려 있었습니다.

"좀 쉬지, 뭘 그리 하느라 그래. 안 힘드나."
"난 이게 쉬는 거야. 이거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나네."

뭔가 아무 생각없이 열중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널찍한 천을 사다가 꿰메기만 하면 어느새 근사한 가방이 됩니다. 신기합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라도 쉼을 주거니와, 없던 게 결과물로 생겨나니 성취감도 생기고, 또 갖고싶은 백도 여러개 만들어 들고 다니며 기분을 냅니다. 그리고는 주위에 하나씩 만들어 줍니다.

덕분에 저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가방을 얻었지요. 시장가서 사온 루이비통(?) 천으로 만든 거라네요. 속에 지퍼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오호~. 근사하네. 이런 재주가 다 있었어?!"
"그러게, 나도 내가 바느질을 이리 하는 줄 몰랐어."

퀼트 덕분에 아내의 즐거움은 꽤 갔습니다. 아내는 그렇고, 저는 바둑을 둘 때 아주 즐겁습니다. 친구와 저녁내기 한판을 두면 온 세상을 뒤로 하고 몰입합니다. 얼마나 재밌는지요.

가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뭐 할 때 즐거우세요'라고 묻곤 합니다.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그 사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내와 제가 퀼트를 하거나 바둑을 두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 반대지요. '나'라는 존재가 가진 생동감이 퀼트와 바둑이라는 행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존재의 표현방식인 셈입니다.

문제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뭔가를 하는 행위에 있다면 어느날 그것을 못했을 때 삶의 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많은 부분 제약을 받는 노년에는 더욱 그럴 수 있지요. 행위로 인한 성취감이 삶의 중요한 요소일수 있지만 존재의 한 방식일 따름이지요.

그러니 뭔가를 가질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 존재의 방식이 '소유'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갖고 싶은게 있으면 가져야지요. 그러나 계속 가져야만 즐겁고 행복하다면 사는게 무척 피곤해집니다. 백화점 가봐야 적은 월급으로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더욱이 소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지요.

그래서 뭔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호랑이는 평생 여러모양으로 으르렁댑니다. 이 호랑이 때문에 갖고싶은 걸 못 가지면 우리는 좌절하기도 하고 점점 화도 납니다. 속상하지요.

1845년 3월, 미국의 한 젊은이가 도시를 떠나 도끼 한자루로 어느 호숫가 근처에 오두막집을 짓고 거기서 홀로 2년을 살았습니다. 후에 그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그 무엇, 혹은 자신이 '되어야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언가 가져야 하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타인을 위해 건설적인 행위를 하거나, 자신의 본질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얘기 같습니다.

내 존재의 본질을 느끼는 그 자체로 견줄 수 없는 행복감이 있다고 합니다. 벽을 마주하여 참선을 하여도 지고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더 대왕을 향해 따스한 햇볕을 가리지 말라던 디오게네스는 분명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하버드대를 나와서도 세상의 가치를 좇아가지 않고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바람과 별빛 속에 자신을 찾아간 스물여덟의 데이비드 소로우, 그의 삶에 배인 정신이 놀랍고 부럽기만 합니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붉게 타오르는 가을 산의 정취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 단풍 붉게 타오르는 가을 산의 정취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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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욕망, #월든, #오두막, #하버드대,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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