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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들 마운틴 정상에 있는 유명한 호수(Dove Lake)
 크래들 마운틴 정상에 있는 유명한 호수(Dove Lake)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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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엔 한라산, 호주 남단 태즈메이니아섬엔 크래들 마운틴

제주도에 한라산이 있다면 호주 남단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에는 크래들 마운틴(Cradle Mountain)이 있다. 제주도에 온 관광객이 한라산을 찾듯이 태즈메이니아에 온 사람은 크래들 마운틴에 들린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크래들 마운틴은 한라산보다 낮은 1545m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크래들 마운틴에 가는 날이다. 비가 흩날리는 추운 날씨다. 추위를 생각해서 준비해 온 두툼한 옷을 입고 길을 나선다. 오래전에 왔을 때는(20여 년 전) 흙먼지 날리는 도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깔끔하게 되어 있다. 우거진 숲속을 지나기도 하고 시야가 확 트인 산중턱을 운전하며 산길을 오른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제법 큰 여행자 정보 센터가 있다. 넓은 주차장도 있다. 비가 내리는 날씨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건물에 들어가 직원에게 이런저런 정보도 듣고 입장권을 산 후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경치가 전개된다. 산 중턱에서 서성거리는 옅은 구름이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너른 들판에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시선을 끌기도 한다. 이름 모를 식물로 가득한 곳도 있다. 비를 맞으면서도 자동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넓은 호수가 나온다. 크래들 마운틴의 명소, 비둘기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Dove Lake)다. 가파른 산들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호주에 살면서 보기 어려웠던 하얀 눈이 산 정상을 덮고 있다. 멀리 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도 보인다. 관광객들이 호수 주위를 거닐며 바쁘게 셔터를 누르고 있다.  

호수 주위로 여러 개의 산책로와 등산로가 있다. 여섯 시간 이상 정상을 향해 가는 코스가 있는가 하면 짧은 코스도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바람도 심하게 분다.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다. 많은 사람은 걷기를 포기하고 호수 주변에서만 서성거린다. 우리는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로를 택해 걷기로 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산책길은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조금 걸으니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우리보다 일찍 온 한 쌍의 젊은이가 노란 우비를 걸치고 바위에 올라 힘겹게 사진을 찍고 내려온다. 바위에 올라서니 비바람이 불어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다. 간신히 사진 한두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고 길을 재촉한다.

궂은 날씨지만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작은 다리를 건넌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숲을 지나기도 하고 넓은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능선을 걷기도 한다. 눈 쌓인 정상이 구름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모습도 즐길 수 있다. 궂은 날씨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산책을 끝내고 자동차에서 몸을 녹인다. 호주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손과 발이 시린 경험을 한 산책이다. 주차장에는 아직도 관광객이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큼지막한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우고 신중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호주 사람보다는 중국 사람을 비롯해 외국에서 온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고달픈 여행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타즈마니아를 찾은 여행객: 사륜구동 차에 휘발유 통까지 싣고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행객 혹은 잠자리가 있는 캠퍼벤을 빌려 여행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타즈마니아를 찾은 여행객: 사륜구동 차에 휘발유 통까지 싣고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행객 혹은 잠자리가 있는 캠퍼벤을 빌려 여행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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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도로를 운전하며 국립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짧은 거리의 산책로를 찾아 더 걷기도 한다. 비가 와서 그런지 개울에는 물이 넘쳐난다. 폭포에도 많은 물이 떨어진다. 물을 흠뻑 머금은 나무와 꽃들에서 생기가 넘쳐난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비는 멈추었지만, 하늘에는 비구름이 가시지 않았다. 싸늘하다. 이럴 때 따뜻한 커피 생각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리조트를 찾아들어서니 마침 벽난로 옆에 앉았던 사람들이 나갈 준비를 한다. 제일 좋은 자리라는 농담을 건네며 자리에서 떠난다. 운이 좋은 날이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주문한다.    

리조트는 고풍이 넘쳐나는 건물이다. 오래된 큼지막한 벽난로 옆에 앉아 몸을 녹인다. 장작불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좋다. 커피를 마신다. 비바람과 함께 조금은 힘든 관광을 했기에 커피 향이 평소보다 더 온몸을 휘젓는다. 지금 이대로가 참 좋다.

어디선가 들었던 스페인 속담이 생각난다. "항상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 되어버린다." 만약 관광객이 원하는 좋은 날씨만 계속된다면 크래들 마운틴도 사막이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비바람이 있었기에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도 항상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사막처럼 건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궂은 날씨를 즐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태즈메이니아, #크래들마운틴, #도브레이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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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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