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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뒤, 햄버거 만드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뒤, 햄버거 만드는 꿈을 꾸기도 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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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스트푸드점에 입사한 후 한달 동안 꿈에서도 햄버거를 만들었다. 잠에 빠져들 때 쯤, 빵을 굽고 그 위에 알맞은 소스를 뿌리고 재료를 넣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고, 꿈에서도 이어졌다. 하루종일 똑같은 일만 하다보니 그러는 건지, 아니면 외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학습을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어쨌거나 패스트푸드점은 하루아침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첫 출근. 나는 빵을 토스터기에 넣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하루종일 빵만 넣었다. 모니터에 주문한 햄버거가 뜨면 나는 5초안에 알맞은 번을 판단해서 토스터기에 넣고 빵이 나올 동안 알맞은 랩지를 깔고 빵이 나오면 순서에 맞게 랩지 위에 놓는다.

빵을 랩지 위에 올려놓는 데까지 25초가 걸려야 한다. 처음에 우왕좌왕 빵을 고르고 넣고 랩지를 뒤적거리다가 한 80초가 걸렸다. 트레이너가 모니터 위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25초 표시판을 가리키며 "목표는 25초라구. 25초가 안에 할 수 있도록 빨리빨리 해야 해"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빵을 넣어도, 이 일이 익숙해져도 25초안에 빵을 넣고 굽는 것을 기다리고 랩지를 까는 것은 불가능했다.

패스트푸드점, 정말 '패스트'가 중요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정말 패스트(fast)는 중요했다. 주문을 확인하고 빵을 구워서 랩지에 올려놓은 후에 주문을 지우는데(범프라 한다), 범프를 날리기까지 시간이 기록되며 평균 시간 또한 기록된다. "범프 빨리빨리 안 눌러? 매니저 모가지가 달린 문제야!" 우리가 빨리 일을 해서 시간을 단축하지 않으면 매니저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우리를 빨리빨리 돌리지 못한 죄다. 매니저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직책을 유지하기 위해 알바들을 독촉해야 한다.

입사 첫날, 같이 일을 하던 누군가가 나에게 "빠른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니 몸이지"라고 말했지만 중요한 것은 빠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몸, 건강, 안전이 아니었다. 너겟을 튀기고 바스켓을 옮기다가 바스켓에 묻은 뜨거운 기름이 팔에 닿은 적이 있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라 고통이 많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물로 씻을 생각도 안 했다.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계속 일을 하고 한참 후에 팔을 보니 바스켓 모양을 따라 그대로 보라색 화상이 남겨져 있었다. 오래 일한 언니에게 보여줬더니 우스갯소리로 상처만 보면 어떤 바스켓에 데였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햄버거 만드는 나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 팔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늘어났다. 그릴에서 패티 굽는 법을 처음 배울 때는 그릴판이 너무 뜨거워서 무서웠다. 단 두 장의 얇은 위생장갑을 끼고 냉동패티를 그릴판 위에 올려놓는다. 양손에 패티 네 개씩을 잡고 동시에 두 개씩 내려놓는다. 나에겐 위생장갑이 커서 패티를 내려놓으면서 손가락 끝쪽 장갑이 녹았다. 두 장의 위생장갑이 녹아 자기들끼리 엉겨붙기도 하고 내 손에 녹은 비닐이 달라붙기도 했다. 한 번 패티를 구우면 그릴판을 청소해야 하는데 밀대로 그릴판 위를 밀 때 재수 없으면 기름찌꺼기가 팔에 떨어진다.

기름찌꺼기도 굉장히 뜨거워서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 트레이너는 어쩔 수 없다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무서우니까 조심조심, 천천히 패티를 굽고 청소를 했다. 하지만 내 손 조심하느라 느릿느릿 굽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당장 내가 뜨겁고 화상을 입는 것보다 패티를 빨리 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릴판을 밀대로 청소할 때도 빠르게 하다보니 기름이 팔에 마구 튀었다. 잠깐 '앗!' 할 뿐, 나는 계속해서 내 일을, 빨리, 해야 한다.

매장은 공장이, 우리는 기계가 되는 그 순간

햄버거 주문이 밀려들어오면 같이 일하는 이모는 "빵 공장 된다~"라고 외친다. 실제로 매장은 공장이 되고 우리는 기계가 되어서 누군가는 빵만 넣고 누군가는 소스만 뿌리며 누군가는 햄버거 속을 채워 넣고 누군가는 패티만 넣는다. 반복적인 일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내가 계속해서 햄버거를 만드는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8시간 동안 서서 반복되는 일을 하다보면 몸은 쓰러질 것 같이 힘들고 정신은 멍해진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갈아 넣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살아간다는 것, 즉, 나의 몸이 살기 위해서 나의 몸을 닳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공허하고 답답했다. 살기 위해 살아간 다는 것, 몸이 닳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 몸을 유지한다는 것. 음식을 만드는 알바는 요리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일 줄 알았는데,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립을 하는 로봇일 뿐이었다.

미국 한 패스트푸드점 본사 CEO가 직원들 시급을 올릴 바엔 로봇을 개발해서 쓰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로봇이었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다른 로봇과 비교해 투자가치를 따지고 더 효율성 있는 기계를 고를 뿐이다. 사람으로 인정받기엔, 아직 먼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 패스트푸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알바노조, #햄버거, #아르바이트, #알바, #패스트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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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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