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시간을 10분 더했다면 5-0으로 끝났을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수장 주제 무리뉴 감독이 경기 후 한 발언이다.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그가 이야기했다고 하기엔 분명 이례적인 고백이다. 그는 이어 "선제 실점이 준비한 전략을 다 망쳤다"고 했다. 그렇지만 선제 실점이 아니었어도 상대 팀 첼시가 90분 내내 경기를 통제하며 시즌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첼시가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인 반면 맨유는 경기 내내 우왕좌왕했다. 수비라인은 정돈되지 않았고, 최전방은 무뎠다. 그라운드 내 구심점이 될 선수도, 그라운드 밖에서 무리뉴 감독의 대처도 미흡했다. 문제는 갈팡질팡한 경기력과 함께 드러난 문제점이 단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맨유의 정돈되지 않은 수비, 리더의 부재

 맨유는 아자르를 통제하지 못 했다. ⓒ첼시 공식페이스북

맨유는 아자르를 통제하지 못 했다. ⓒ첼시 공식페이스북 ⓒ 첼시


맨유는 전반 시작 30초 만에 실점했다. 마르코스 알론소의 패스를 받은 페드로의 침투와 날카로운 마무리가 훌륭했지만, 기본적으로 맨유 수비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컸다. 지난 시즌 루이스 반 할 감독 체제에서 기량이 만개했던 크리스 스몰링은 최근 들어 잔 실수가 잦다.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새로운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수비라인의 조직력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에릭 바이를 제외한 수비라인 선수들과 다비드 데 헤야는 지난 시즌 내내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다.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선제골을 내준 건 뼈아팠다.

이른 선제실점은 맨유의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러나 아직 89분의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대처였다. 맨유는 그라운드 안에서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없었다. 웨인 루니는 최종 훈련에서 부상으로 명단이 제외됐고, 마이클 캐릭은 주중 UEFA 유로파리그 페네르바체 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무리뉴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분위기를 다잡지 못한 사이 22분 코너킥 상황에서 또다시 수비 실책으로 2번째 골을 실점했다.

맨유의 이날 4골 실점 모두 수비수들의 직접적인 실수로 인한 것들이었으나, 미드필더에서의 구조적인 압박과 패스 정확도 역시 부족했다. 직전 리버풀과 페네르바체 경기에서 보여줬던 끈끈함이 없었다. 영국 공영 방송 'BBC'의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MOTD)의 필립 네빌은 "맨유는 리버풀 전에서 보였던 강도 높은 압박과 견고함을 보이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안데르 에레라와 마루앙 펠라이니는 첼시의 조직적인 압박에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하는 패스를 넣어주지 못했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 후방 볼을 돌리는 과정에선 패스미스가 빈번했다. 바이는 에레라의 패스미스로 촉발된 디에고 코스타의 역습을 막다 전반에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특히 펠라이니의 선발투입은 조직적인 첼시의 미드필더 싸움에서도, 피지컬적인 면에서도 최악의 선택이 됐다. 무리뉴 감독이 후반 시작과 함께 후안 마타를 투입하면서 맨유는 점유율을 회복했고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반 펠라이니의 투입은 명백한 패착이었다.

첼시전 대패만큼이나 바이의 이탈은 향후 맨유의 수비라인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바이는 후반 6분 스스로 오른쪽 무릎 부위에 불편함을 느꼈고 마르코스 로호와 교체됐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후 "심각한 부상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릎 부상이다. 그는 무릎이 좋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며 바이의 부상 정도에 대해 걱정했다.

콩테는 백스리는 과감하고 치밀했다

 캉테는 마티치와 함께 콩테의 축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첼시 공식페이스북

캉테는 마티치와 함께 콩테의 축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첼시 공식페이스북 ⓒ 첼시


안토니오 콩테 체제에서 첼시는 패배가 사실상 결정됐던 지난 리그 6라운드 아스널 경기 후반부터 백스리 전환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은 헐시티와 레스터시티와 리그 경기에서 백스리를 기반으로 한 3-4-3 포메이션의 숙련도를 높였다. 첼시는 맨유를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거두며 백스리로 전환한 이후 3경기에서 9골을 넣고 무실점을 기록했다. 첼시가 리그에서 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건 2015년 4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첼시는 그간 수비의 중심이었던 존 테리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의 노쇄화로 수비진영의 변화가 불가피했다. 다행히 시즌 개막 진전 새로 영입한 다비드 루이스와 마르코스 알론소가 제 역할을 해주면서 백스리를 기반으로 한 수비가 안정감을 찾았다. 맨유를 상대로 알론소는 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단점을 정확한 패스와 간결한 플레이, 영리한 수비로 상쇄했다.

루이스는 무리한 드리블을 자제하고 수비적인 견고함에 무게를 쏟았다. 잇단 실수로 비판을 받았던 게리 케이힐은 백스리로 전환한 이후 실수가 줄었고,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는 풀백과 윙백 그리고 백스리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수비 능력을 보여줬다.

수비가 안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미드필더의 역할도 명확해졌다. 그간 중앙 미드필더로 네마냐 마티치와 은골로 캉테 그리고 오스카를 같이 투입할 땐 수비적인 밸런스는 좋으나 공격 작업에선 파괴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수비의 강점이 있는 중앙 미드필더를 3명이나 투입하는 건 인력 낭비였다. 오스카를 빼고 3-4-3으로 전환한 후 중원은 캉테와 마티치 줄곧 선발로 나서고 있다. 두 선수는 서로의 역할을 절절하게 배분하면서 시너지를 냈다. 맨유를 상대로 하는 마티치와 캉테는 경기 내내 침착했다. 캉테는 팀의 4번째 쐐기골을 넣기도 했다. 백스리 전환으로 수비의 부담이 줄어든 에당 아자르는 맨유 진영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전방 스리톱의 기동력과 파괴력 폭발 시켰다.

.맨유를 상대로 기록한 이른 선제골과 추가골 모두 맨유의 수비 실책에서 비롯된 득점이지만 첼시 선수들의 냉철함이 빛났다. 전반 2골로 앞선 첼시는 의도적으로 라인을 내렸고, 후반엔 전방 스리톱을 활용한 역습으로 맨유의 뒷공간을 공략했다. 첼시의 3,4번째 득점은 맨유의 수비의 어수선한 상황을 공략한 콩테 감독의 전술적 쟁취였다.

즐라탄 플랜 A의 미지수 

 콩테는 첼시에 '백스리'라는 맞는 옷을 입혔다. ⓒ 첼시 공식홈페이지

콩테는 첼시에 '백스리'라는 맞는 옷을 입혔다. ⓒ 첼시 공식홈페이지 ⓒ 첼시


맨유의 4골을 실점한 수비도 문제였지만, 1골도 득점하지 못한 공격의 세밀함 역시 비판받을 만한 요소다. 무리뉴 감독은 수비를 단단히 하고 빠른 역습을 통해 득점을 만드는 축구를 선호해 왔다. 첼시 2기 첫 시즌 페르난도 토레스와 뎀바 바, 라다멜 팔카오로 우승하지 못했던 건 자신의 축구를 완성할 최전방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역습축구의 방점을 찍을 코스타를 영입하면서 이듬해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쟁취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무리뉴 감독이 맨유로 오면서 야심 차게 영입한 공격수다. 만 35살의 즐라탄은 아직도 탄탄한 체격과 유연한 트래핑 그리고 치명적인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실제 맨유 입단해 3경기 연속득점에 성공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리뉴 감독의 선택은 옳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현대축구로 오면서 선수들의 피지컬과 스피드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하물며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하는 리그다. 즐라탄의 높이에 강점이 있지만 스피드는 부족하다. 지난 시즌 프랑스 리그앙에서는 38골을 넣으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지만, 파리생제르망(PSG)의 전력이 리그에서 독보적이었기에 가능했다. PSG는 2위와 31점 차이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압도적인 팀의 전력이 즐라탄의 단점을 가려줬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맨유의 즐라탄은 PSG의 즐라탄과는 다르다.

즐라탄의 스피드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첼시를 상대로 맨유가 역습을 가져갈 상황 자체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그런 플레이를 시도하지 못한 건 전방의 스리톱의 기동력이 첼시의 수비진을 따돌릴 수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첼시의 최전방 코스타는 역습 상황에서 빠르게 볼을 운반하면서 첼시에 공격을 이끌었다. 코스타의 빠른 기동력을 통해 측면의 윙어들 역시 자신의 스피드를 활용해 결정적인 공격 장면을 만들 때 선택지가 늘었다.

현재 맨유의 1군에 사실상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할 수 있는 선수는 즐라탄과 루니 그리고 마스커스 래시포드와 앙토니 마샬이 있다. 그러나 즐라탄과 루니는 정점에서 내려왔고 래시포드와 마샬은 측면에서 더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다. 맨유가 자신들이 충분히 경기를 통제할 팀과 대결에서는 상관이 없지만 비슷한 실력 이상의 팀과 경기에서는 즐라탄의 최전방 기용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무리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걸까

무리뉴 감독은 지난 첼시 2기 시절 팀을 우승 챔피언으로 만든 이후부터 부침을 겪고 있다. 이전부터 미디어와 언론 그리고 팀 내 선수와 불화가 많았지만 무리뉴를 지탱했던 건 철저하게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자신의 전술적 역량의 한계와 대처 방식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패배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팀으로 성장하는 것 역시 명장의 능력이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부임 이후 10경기 연속 승리를 거둔 당시 토트넘에 첫 패배를 기록하자 "그들이 더 나은 경기를 했다."며 인정하면서 "상대가 나았을 때는 승패를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배우면 된다" 고 밝혔다.

반면 무리뉴 감독은 UEFA 유로파리그 1차전에서 페예노르트에 패배한 직후 루크 쇼를 강하게 비판했다. 당시 쇼가 다리 골절 부상 이후 10개월 만에 경기에 나선 것이어서 선수를 보호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첼시전이 끝나고도 무리뉴 감독은 콩테 감독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귓속말로 "'0-4 상황에서 홈 팬들을 자극하는 손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0-1 상황에서 해야 했다. 굴욕적이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첼시 감독 시절 수차례 다른 감독들과 마찰이 있고, 불필요한 자극으로 언론에 도마에 올랐던 무리뉴 감독의 언사가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무리뉴 감독은 철저한 성과주의자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둬왔다. 그러나 팀의 부진과 함께 처신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그의 명성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자신이 역사를 만들었던 첼시 서포터즈가 후반 "무리뉴 당신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라는 노래를 부른 걸 그는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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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종현 개인 블로그와 청춘스포츠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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