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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쿠첸 본사 쇼룸에서 모델이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미작(味作)으로 만드는 케이크·단호박 죽·단호박 볶음밥 등 다양한 할로윈 홈파티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이젠 밥솥 시장까지 '할로윈 마케팅' 바람이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쿠첸 본사 쇼룸에서 모델이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미작(味作)으로 만드는 케이크·단호박 죽·단호박 볶음밥 등 다양한 할로윈 홈파티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이젠 밥솥 시장까지 '할로윈 마케팅' 바람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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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마트에 갔더니 할로윈 파티용품이 가득 진열돼 있었습니다.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위한 할로윈 용품을 구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지난해 이맘때 쌍둥이 남매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할로윈 파티를 한다면서 의상을 가져오라고 했어요.

회사일로 미리 이벤트 용품을 준비할 틈이 없어서 집에 있는 소품을 들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벤트에 둔한 아들은 엄마가 준비해주는 의상으로 별말없이 할로윈 파티를 치르고 왔지만, 딸아이는 친구들은 멋진 할로윈 의상이 있는데 자기만 구입한 지 2년도 더 지난 디즈니 드레스를 입고 갔다면서 속상해 했습니다.

할로윈의 원래 의미는 유령에게 한 해를 무탈하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는 켈트족의 전통 축제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유의미한 할로윈 축제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죠. 유명 놀이동산에서 할로윈 축제를 하고, 급기야 아이들의 유치원에서도 분장을 위해 의상을 준비해오라고 했더군요. 인터넷으로 할로윈 복장 및 장식의 가격을 보니 10만 원이 훌쩍 넘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몇해 전 미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의 집에 갔을 때였습니다. 마침 10월이었는데, 미국에서는 할로윈을 위해 10월 초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거의 모든 집들이 할로윈을 위해 한 달 내내 축제를 준비하고 즐기는 시간을 두는데요. 장식하지 않은 집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모든 집이 할로윈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여동생의 집과 동네 풍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할로윈 준비

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 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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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 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여동생 집의 뒷골목에 위치한 이웃의 앞마당에 장식된 유령들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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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네 집에서도 초대형 호박의 속을 비워 초를 넣은 다음 마당에 인형과 함께 장식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장식이었지만 이것을 위해 저녁 내내 제부가 호박 속을 파고, 촛불이 밖에서 보일 수 있도록 구멍 뚫는 작업을 하더군요. 이모부의 호박 파기에 쌍둥이 남매와 조카는 흥겨워했고, 작업은 하나의 가족 놀이이자 축제가 됐습니다. 그날 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할로윈 파티를 위해 이런 작업과 장식을 추가해나간다고 합니다.

 미국 여동생의 집 앞마당에 장식한 대형 펌킨
▲ 미국 여동생의 집 앞마당에 장식한 대형 펌킨 미국 여동생의 집 앞마당에 장식한 대형 펌킨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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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니 조명으로 한껏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 유령 장식들
▲ 밤이 되니 조명으로 한껏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 유령 장식들 밤이 되니 조명으로 한껏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한 유령 장식들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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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장식, 초콜릿과 간식 등을 보면서 외국에서 한 달 내내 즐기는 할로윈 축제가 우리나라에선 단 하루의 소비를 위한 치장으로 변질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어쨌거나 할로윈은 우리나라가 한 달 내내 즐길 수 있는 축제는 아니니까요.

아이들의 학원이나 유치원에서 단 하루 혹은 몇 시간을 위해 과한 소비한다는 것이 제 상식에는 맞지 않아 소비를 위해 지갑이 쉽게 열어지지 않았습니다.

산 넘어 산? 할로윈 끝나면 빼빼로데이

그런데 할로윈이 끝나자마자 며칠 뒤에는 또 빼빼로데이가 있습니다. 마트뿐만 아니라 길거리의 편의점에서도 빼빼로를 놓고 판매하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으실 텐데요.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데이 마케팅에 대한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많이 챙기는 데이(Day)는 '빼빼로 데이'인 것으로 조사됐다 합니다.

빼빼로데이 역시 딸아이는 빼빼로를 준비해서 친구들과 나눠먹기를 간절히 원하는 반면, 아들은 엄마가 준비해주면 가지고 가긴 하겠다는 반응입니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이벤트를 챙기겠다는 욕구가 무척 강했습니다.

빼빼로데이 역시 제과회사의 상술이라는 얘기도 있고 부산 지역의 여학생들이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로 주고받은 것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날짜의 독특함과 과자의 비슷한 모양이 주는 재미를 제외하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이벤트 데이(Day) 같아요.

이밖에도 많이 알려진 이벤트 데이로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등이 있는데 진정한 그날의 의미를 챙기기보다 껍데기는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했으나 알맹이는 가볍기 그지없는 상품들을 늘어놓고 기업이 소비를 조장하기 위해 벌이는 이벤트 분위기에 휩쓸려 소비자들이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술에 휘말려 무슨 무슨 데이(day)를 기념하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치장으로 명품에 집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이나 치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정장을 입어야 하는 회사의 드레스 코드에 캐주얼을 입는 식의 규정을 어기는 일은 물론 안 되거니와 최소한의 형식을 지킬 필요는 있습니다만, 과도한 치장, 화려한 꾸밈이 그 사람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해마다 찾아오는 이벤트 데이, 아이들의 소외감

그러나 이런 이벤트 데이(Day)마다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더군요. 아직 어려서 엄마의 철학을 설명해주거나 긴 대화를 하기도 어려운 터라 무조건 엄마는 관심 없는 분야이고 아이 역시 같은 태도를 유지하라고 가르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작게라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런 제 태도는 워킹맘으로서 늘 아이에게 양적으로 부족한 애정을 충족시켜주려는 작은 몸짓일까요? 무조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엄마는 이닌지라 어떤 때는 제 기준대로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자제할 수 있도록 강요하기도 하는데요. 어느 선까지 아이의 욕구를 들어주고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동생네의 할로윈이 부러웠던건 화려한 그네들의 장식이 아니라 축제를 하루하루 준비해나가는 매일 저녁시간이었어요. 집 앞 마당을 가득 장식해둔 그 외국인은 그런 장식을 촬영하는 우리의 모습에 기뻐했고, 매일 조금씩 장식을 추가해나갔습니다.

설이나 추석이라는 명절 외에는 연휴도 없고 세계에서 가장 긴 근로시간에 치여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우리네 삶이 사람들이 이벤트나 축제를 더욱 갈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업의 상술에 놀아나기도, 외국의 축제에 휩쓸리나 봅니다.

요즘 단풍과 더불어 수많은 가을 축제로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는데요. 축제라고 해봐야 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붙잡기 위해 지자체의 장들이 무언가 시행했다며 보여주기식의 행사가 우후죽순 치러고 있어 즐기는 사람은 없고 기업의 상술 혹은 정치적인 목적만 가득한 이벤트에 그치고 맙니다.

무슨 무슨 데이(Day)마다 소비성 이벤트를 하지 못해 안달인 우리는 정작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어떤 이벤트로 자신을 끌어올리고 가족의 화합을 다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이벤트데이,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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