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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 22일 이틀간 시가현 시가라기에 있는 미호뮤지엄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지난 10월 1일부터 무갈황제와 마하라자(Maharajas)의 보석, 겐잔 도자기 특별전과 실크로드 상설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특별 전시에 소개된 여러 가지 꾸미개 작품입니다.
 이번 특별 전시에 소개된 여러 가지 꾸미개 작품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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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갈제국의 다섯번째 황제 샤자한(Shah Jajan,  1592.1.5~1666.1.22)은 자신의 세 번째 부인인 뭄타스 마할(Mumtāz Mahal, 1595.4.6~1631.6.17)이 황제의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39세로 세상을 떠나자 황제는 그녀를 애도하기 위해서 22년 동안 공사를 하여 1654년 타지마할 무덤을 지었습니다. 동원된 인부가 2만 명이었고, 코끼리가 1000마리였다고 합니다.

무갈제국(Mughal Emperors)은 티므르조의 일파였던 바브르(Ẓahīr al-Dīn Muḥammad Bābur, 1483.2~1530.12)에 의해서 1526년 건국되어 지금의 인도(남부 일부 제외)와 그 둘레를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무갈제국은 1862년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될때 까지 17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이번 미호뮤지엄 인도 보석 특별전에서 무갈 제국의 황실에서 사용되어온 여러 가지 보석과 꾸미개 181점을 보아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꾸미개에 따라서 작은 다이야몬드 1742개를 모아서 만든 머리 꾸미개도 있습니다.

          컷트 다이야몬드로 가장 큰 블르 아이 70.21캐럿과 다이야몬드 152.64 캐럿으로 만든 터번 꾸미개입니다.
 컷트 다이야몬드로 가장 큰 블르 아이 70.21캐럿과 다이야몬드 152.64 캐럿으로 만든 터번 꾸미개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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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깎아서 만든 블르 다이야몬드로 가장 큰 것은 70.21캐럿이라고 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블르 다이야몬드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일본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거의 매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볼 정도입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다이야몬드를 비롯하여 에머랄드, 비취 따위 보석들은 모두 인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도는 오래전부터 다이야몬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보석의 생산과 가공의 기술이 뛰어나 지금도 유럽 보석회사들과 공동으로 여러 가지 상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보석에 열광할까요? 굳이 결혼식에서 결혼반지를 비롯한 예물을 주고받아야 할까요? 일상생활에서 보석들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보석을 가져왔습니다. 보석을 지녀온 역사는 돈의 역사보다 깊고 오래되었습니다.

          이번 오가타 겐잔의 도자기와 인도 보석 특별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입니다.
 이번 오가타 겐잔의 도자기와 인도 보석 특별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 사진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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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을 만들기 전부터 보석은 있었습니다. 돈이 귀중한 경제 단위가 된 지금도 여전히 보석은 가치와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보석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돈이 경제 활동의 수단이라면 보석은 눈에 보이는 값어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하나 보석에는 만든 사람의 기술과 능력 그리고 가지고 있는 사람과 받은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이번 소개된 여러 가지 보석 가운데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준 것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다. 어떤 행동이나 요구에 대해서 이 보석을 선물했다 등등입니다.

오가카 겐잔(尾田 乾山,1663~1743.7) 특별전에서는 겐잔이 만든 도자기 작품과 미술품 66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겐잔은 교토에서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형 고린(光琳,1658.~1716.7)은 화가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현재 일본 국내외에 남아있는 겐잔의 도자기를 비롯한 미술 작품은 800점 쯤이라고 합니다.

          오가타 겐잔 도자기와 현재 JR오사카 역 위 교토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컵입니다.
 오가타 겐잔 도자기와 현재 JR오사카 역 위 교토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컵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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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잔이 만든 도자기 무늬는 지금도 교토에 있는 식당이나 교토 먹거리를 파는 식당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겐잔은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그릇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양자까지 이대에 걸쳐서 겐잔이라는 이름으로 도자기를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도자기는 먹거리나 물 따위 액체를 담아서 활용하는 생활도구입니다. 생활도구는 일상생활 속에서 늘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생활도구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겐잔은 생활 도자기를 통해서 생활도구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습니다.

도자기에 여러 가지 계절 마다 볼 수 있는 꽃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전하는 시를 써넣고 그것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꽃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도자기가 인기가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이 800점이라면 만들어서 팔 때는 그것의 몇십 배를 넘었을 것입니다.

          오가타 겐잔 도자기와 현재 JR오사카 역 위 교토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컵입니다. 바둑판무늬는 겐잔이 네덜란드 도자기 무늬를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오가타 겐잔 도자기와 현재 JR오사카 역 위 교토 식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컵입니다. 바둑판무늬는 겐잔이 네덜란드 도자기 무늬를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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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토를 비롯한 인근에서 겐잔의 멋진 도자기를 찾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겐잔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소비자의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인도와 일본, 보석과 도자기.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8세기 전후 두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보석과 도자기 모두 생활 필수품은 아닙니다. 권력자나 가진자들이 누렸던 화려한 취미였습니다.

보석과 도자기, 두 가지는 예술작품으로서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고, 물건으로서 가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물건을 어떻게 보느냐는 마음입니다. 그것들 없이도 생활했을 서민들은 현실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이제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미호뮤지엄 본관 입구입니다. 미호뮤지엄을 설계한 아이 엠 페이( I.M.Pei Architect, Ieoh Ming Pei 貝 聿銘, 1917- )는 중국 출신 건축가로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유리 피라미드 정문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한 미호뮤지엄 본관 입구입니다. 미호뮤지엄을 설계한 아이 엠 페이( I.M.Pei Architect, Ieoh Ming Pei 貝 聿銘, 1917- )는 중국 출신 건축가로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유리 피라미드 정문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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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미호뮤지엄, http://miho.jp/japanese , 2016.10.22.
참고문헌> 아름다운 겐잔 사계 채채(美し 乾山 四季彩菜), MIHO MUSEUM, 2016.10.11
무갈제국과 마하라쟈의 보석, MIHO MUSEUM, 2016.10.11
첨부파일> 미호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겐잔의 도자기 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과 간략한 소개를 덧붙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미호뮤지엄, #겐잔 도자기, #인도 보석, #꾸미개, #다이야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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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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