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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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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훔치는 짓을 해 본 적 있습니다. 그무렵에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는 없다. 그런데 너한테는 많다. 그러니 너한테 많은 것 가운데 하나를 내가 가져도 된다.'

따위로 바보스러운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으로 내가 나를 둘러대며 문방구에서나 동무 집에서 장난감이나 지우개를 슬쩍한 적이 있어요.

문방구에서는 사라진 것을 모를까요? 동무는 사라진 장난감을 모를까요? 어쩌면 모를 수 있을 테지만, 모를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모르는 척해 줄 뿐이라고 느낍니다. 부디 스스로 잘못을 털어놓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기다릴 뿐이지 싶어요.

작은 냄비 뚜껑을 열다가 이소벨은 벽에 걸린 접시를 보았어요. 반짝반짝 빛이 나는 황금 접시였지요. 인형의 집은 엘리자베스 거예요.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엘리자베스 것이고요. 이소벨은 벽에 걸린 접시를 떼어 주머니에 넣고 말했어요. "나, 집에 갈래." (4∼5쪽)

버나뎃 와츠 님이 빚은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황금 접시>(봄볕,2016)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좀도둑질'을 다룹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좀도둑질'을 찾아보면 "자질구레한 것을 훔치는" 짓으로 풀이하는데, 아이들이 아직 철이 없을 즈음 좀도둑질을 하는 까닭은 '자질구레한' 것을 갖고픈 마음이 아니지 싶어요. '나한테 없는 대단한' 것이기에 '내 것으로 삼고' 싶어서 훔친다고 느껴요.

그러면 우리한테는 무엇이 없을까요? 부잣집 동무한테 대면 우리 집에는 장난감도 없고 만화책도 없을까요? 잘사는 집 아이는 이것저것 다 있는데 가난한 집에는 아무것도 다 없을까요? 장난감이 많으면 더 재미나게 놀 만할까요? 돈이 많은 집에서 사는 아이는 걱정도 근심도 없이 언제나 웃음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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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벨도 인형의 집은 있었어요. 진짜 인형의 집이 아니라 낡은 책장이에요. 이소벨은 주머니에서 황금 접시를 꺼내 낡은 책장에 올려놓았어요. 어울리지 않았어요. 예쁘지도 않았어요. (9쪽)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황금 접시>에는 이소벨하고 엘리자베스라는 두 아이가 나와요. 이소벨은 엘리자베스한테 대면 어버이가 수수한 살림을 꾸리고, 이소벨한테 있는 장난감이나 놀잇감이나 인형은 무척 수수하다고 할 만해요. 둘은 사이좋게 노는데 어느 날 문득 이소벨이 엘리자베스네 집에 있는 '놀잇감 황금 접시'를 훔쳤다고 해요.

너무 좋아 보여서, 너무 좋은데 우리 집에는 없다고 여겨서, 너무 좋고 우리 집에는 없는데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이런 좋은 놀잇감을 장만해 주지 않겠다고 여겨서, 그만 좀도둑질을 하고 말아요.

아이는 왜 동무한테 말을 안 하고 훔쳐야 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음에 드는 놀잇감이라면 동무한테 말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를테면 "얘, 이 놀잇감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 집에서 더 놀고 싶어." 하고 말을 걸을 수 있어요. 또는 "얘, 이 놀잇감 얼마나 하니? 나도 갖고 싶다." 하고 물을 수 있지요. 놀잇감 황금 접시 값을 알아본 뒤에 "아, 앞으로 돈을 모아서 나도 꼭 장만해야지." 하고 다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이소벨이라는 아이는 이렇게 동무한테 말을 걸지 못해요. 아무 말을 않고 슬그머니 제 주머니에 동무 놀잇감을 넣고는 '놀이 끝!'을 외쳐요. 집으로 내빼듯 돌아와요. 그러고는 집에서 밥도 안 먹고 놀지도 않고 잠도 못 이룹니다.

속그림. 동무네 집에서 황금 접시를 훔친 뒤 괴로운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아이. 마침 보름달이 황금 접시처럼 빛난다.
 속그림. 동무네 집에서 황금 접시를 훔친 뒤 괴로운 마음을 달래지 못하는 아이. 마침 보름달이 황금 접시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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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이소벨을 보고 아주 좋아했어요. "네 황금 접시 가져왔어. 말없이 가져가서 정말 미안해." "그거, 너 갖고 싶으면 가져도 돼!" 엘리자베스가 말했어요. (20쪽)

'동무한테서 훔친 장난감'을 잘만 갖고 노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무한테서 훔친 장난감'이 마음속에 더없이 깊이 아픈 생채기로 박혀서 아무것도 못하며 눈물에 젖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 어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버이는 아이 낯빛을 보며 '이 아이한테 뭔가 일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다그칠 수 있으나 조용히 기다리면서 아이가 먼저 털어놓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또는 아이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실마리를 슬기롭게 풀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온 아이는 눈물로 어머니한테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아이를 찬찬히 달랩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더러 스스로 동무한테 찾아가서 놀잇감을 돌려주라고 말해요. 아주 어려운 일이 되겠지요. 그렇지만 이소벨한테는 '놀잇감'보다 '동무'가 훨씬 크고 좋은 줄 온몸으로 느꼈기에 동무한테 찾아가요. 동무 엘리자베스는 이소벨이 내민 황금 접시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너 갖고 싶으면 가져도 돼!" 하고 말해요. 엘리자베스도 '놀잇감'이 아닌 '동무'가 저한테 훨씬 크고 좋거든요.

속그림. 드디어 황금 접시를 동무한테 돌려준다.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진 아이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속그림. 드디어 황금 접시를 동무한테 돌려준다.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진 아이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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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릴 적을 곰곰이 돌아보면, 저도 어릴 적에 바보스러운 좀도둑질을 해서 손에 넣은 '훔친 장난감'은 조금도 못 갖고 놀았습니다. 마음만 쿡쿡 쑤실 듯이 아팠습니다. 훔친 장난감이나 지우개를 문방구나 동무한테 돌려줄 때까지 참말 하루 내내 바늘이 찔린 느낌이었고 고되었습니다. 어머니한테 털어놓고 동무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림책 아이'가 대견합니다. 더구나 이 아이를 따스하게 맞이하는 동무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들은 '나한테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빕니다. 또 아이들은 '남하고 나를 견주는 바보짓'을 하지 않기를 빕니다. 그리고 때때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 두려움은 떨치면서 꼭 꾸밈없이 털어놓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되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황금 접시>(버나뎃 와츠 글·그림 / 김서정 옮김 / 봄볕 펴냄 / 2016.7.25. / 13000원)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황금 접시

버나뎃 와츠 글.그림, 김서정 옮김, 봄볕(2016)


태그:#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황금 접시, #버나뎃 와츠, #그림책, #어린이책,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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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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