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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니(어머니) 밥 주세요' '맛있어요'라는 한국말 몇 마디로 한 달간을 견뎌낸 사람이 있다. 바로 조각가 준 탐바(JUN TAMBA, 본명 塚脇淳, 일본 고베대학 교수)씨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탐바 교수는 인천의 한 철공소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들을 그는 지난 21일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선보였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붉은 누워있는 여인> 앞에선 조각가 준 탐바 씨
▲ 누워있는 여인 이번 전시의 대표작 <붉은 누워있는 여인> 앞에선 조각가 준 탐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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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누워있는 사람> 준 탐바 작
▲ 누워있는 사람 <소원, 누워있는 사람> 준 탐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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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날인 21일 오전 11시에도 탐바 교수는 여전히 작업복 차림으로 작품 설치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 새벽에 트럭으로 이 작품을 싣고 왔습니다"라며 1층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붉은 빛이 감도는 커다란 작품을 요리조리 위치를 잡아주고 있던 탐바 교수는 기자에게 작은 철 조각을 내보였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붉은 누워있는 여인'이 있게 한 '철조각'이었다. 시인의 눈에는 발밑에 구르는 낙엽도 한편의 시가 되듯, 조각가에게 있어 대수롭지 않은 철 조각이 명작을 낳게 하는 순간이었다. 탐바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재작년 러시아 국제 조각 심포지움에 참가했을 때 철공소에 버려진 작은 쇳조각 하나를 주웠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 누워있는 사람을 연상하게 되었지요. 이 누워있는 이미지는 곧바로 저의 가슴 속에서 조금씩 작품으로 형상화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붉은 누워있는 여인'이다.


 위 그림과 아래 조각 각품은 <붉은 구름>, 준 탐바 작
▲ 붉은 구름 위 그림과 아래 조각 각품은 <붉은 구름>, 준 탐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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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그림은 <붉은 구름>이고, 아래 조각 작품은 <누워있는 사람>,준 탐바 작
▲ 누워있는 사람 위에 그림은 <붉은 구름>이고, 아래 조각 작품은 <누워있는 사람>,준 탐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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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대조각의 거장인 영국의 헨리무어(1898~1986)를 존경합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 가운데 '붉은 누워있는 여인'은 헨리무어와의 '경쟁심'을 의식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죠."

탐바 교수는 당당히 헨리무어에게 도전장을 던지기라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이번 전시회의 제목인 "인천에서 만들다(JUN TAMBA works in INCHEON)"가 너무 밋밋하여 기사 제목을 <인천관동갤러리에서 만난 일본의 헨리무어>라고 하고 싶다는 기자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대표작인 '붉은 누워있는 여인' 외에 '삼선(參仙: 세 개의 봉우리)', '공룡능선', '병풍바위', '능선' 등 주로 인천 철공소에서 만든 작품과 '걷는 사람' 등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전시 외에도 29일, 중요한 아트 심포지움이 마련되어 있다. 심포지움의 발표로는 고베 예술 NPO C.A.P.(예술과 계획회의) 대표인 음악가 시모다 노리히사 씨의 '예술인 모임의 실천, 고베에서의 22년-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아트, 아트를 살리는 공동체'와 탐바 교수의 '우리는 무엇을 지향 하는가-문화의 삼거리 인천에서의 작업을 통해서' 가 예정되어 있다.

 왼쪽은 <두개의 바위>, 오른쪽은 <삼선>, 준 탐바 작
▲ 삼선 왼쪽은 <두개의 바위>, 오른쪽은 <삼선>, 준 탐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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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관동갤러리 전시장 모습
▲ 인천관동갤러리 인천관동갤러리 전시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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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러울 정도로 무더웠던 올 여름의 불가마 더위 속에서 탐바 교수는 인천의 한 철공소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과 이웃 주민들의 시선을 벗 삼아 이번 전시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면서 '차디차고 무디고 강하기만 한 철'이 일정한 조건(달구는 조건)아래서 '더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재료'라는 새로운 사실을 기자는 탐바 교수의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세계적인 철(鐵) 조각가 탐바 교수의 귀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단 2주일뿐이라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또한 심포지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아트, 아트를 살리는 공동체"도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클 것으로 보인다.

 
준탐바 (JUN TAMBA) 교수 약력
1952 일본 교토 태생
1977 교토시립예술대학교 조각과 졸업
1979 교토시립예술대학교 조각전공과 수료
1980~ 고베대학교, 현재 고베대학교 대학원 인간발달환경학 연구과 교수
C.A.P.(예술과 계획회의) 회원  

전시안내
- 10월 21일~30일(금ㆍ토ㆍ일만 개관, 이 밖의 요일에는 사전연락으로 문 열 수 있음)
- 인천과 고베를 잇는 아트 심포지움: 10월 29일 14:00~16:00, 인천관동갤러리
- 인천관동갤러리: 인천시 중구 신포로31번길 38 (관동2가4-10) 전화:032-766-8660

철관과 철관 사이의 '공간'은 '소통'과 '연결'의 공간
"인천에서 만들다" 전시회의 세계적 조각가 준탐바 교수


대담을 하는 준 탐바 교수
▲ 준 탐바 대담을 하는 준 탐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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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의 재료로는 돌이나 나무 등도 있을 텐데 하필 철(鐵)을 선택한 까닭은? 
"대학시절에는 나도 돌이나 나무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차츰 철의 매력에 빠져 들고부터 내 작품의 재료는 철이다. 어느 새 철을 다룬지도 30여 년 이상 되었다. 사람들은 철이 주는 이미지를 '강하고 차갑다'고 느끼지만 나는 다르다. 열을 가했을 때의 철은 그 어느 재료보다 부드럽고 온화하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철이 지닌 매력이다."  

- 작품들을 보면 때론 무거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철로 만든 조각의 특징을 든다면? 
"철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무거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철관을 이용하면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마치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가늘고 긴 풍선으로 자유로운 형상을 만들 듯 철관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특히 '공간'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 철관과 철관 사이의 '공간' 이야말로 이것과 저것과의 '소통의 공간'이자 단절이 아닌 '연결의 공간'이다.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인 '붉은 누워있는 여인'에서도 바로 그러한 '공간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작품 중에는 "삼선(參仙: 세 개의 봉우리)"이라든가 "공룡능선", "병풍바위", "능선"과 같은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데 특별한 까닭이 있는가? 
"사실 한국의 산을 가본 적은 없다. 다만 한국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설악산이나 금강산의 사진을 접하고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상상과 실제가 하나로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 일본의 산은 높지만 완만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은 바위산이 많고 험한 산이 많다.

그러나  내 작품 속의 산들은 그렇게 험한 산의 이미지는 아니다. 특히 삼선(參仙)은 한·중·일 세 나라를 표현한 작품이다. 세 나라 문화는 동양이라는 같은 근원을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같은 DAN를 공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단언컨대 동아시아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사이좋은 세 개의 봉우리처럼 <함께 이어져 있다>고 본다."  

- 지난 한 달간 인천의 한 철공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구태여 한국에서 작품을 만든 까닭은 무엇인가? 
"보통 전시작품들은 자신의 작업장에서 만들어 전시장으로 운반하는 게 통례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진정한 예술 작품이란 작품 구성 단계부터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현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바로 그곳이 인천인데 이곳은 내가 사는 고베(神戸)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곳이다. 인천과 고베는 개항장이라는 공통점 말고도 커다란 항구와 외국인거류지 등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특히 8개의 작품들은 인천 중구 신흥동의 옛 수인역 인근에 있는 철공소 <소원애드, 대표 이기남>에서 탄생한 것이다. 인근 지역이 도시화 되어 모두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리고 난 인천의 마지막 달동네 철공소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부서지고 망가진 집안의 온갖 물건들을 수리해주는 곳'이다.

한국말도 전혀 할 줄 모르는 내가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면서 행복했던 것은 나의 작업을 봐주던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 덕분이다. 사장님이 출타 중일 때에도 마을 주민들은 내 집처럼 스스럼없이 철공소에 드나들며 커피도 타마시고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등 동네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 끈끈한 정을 나누는 철공소에서 나는 지난 한달 간 작품을 만들면서 마을 주민들과도 친해졌다. 나의 작품들은 모두 주민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고 탄생한 것들이다."     

- 재료가 철(鐵)인만큼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을 일본에 가져가는 일이 만만치 않을 텐데 작품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2002년 부산비엔날레에 참가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출품작이 부산 아시아경기장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 작품들도 한국의 중요한 곳에 남아 한국인들이 감상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작품 판매도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인천관동갤러리, #준 탐바 , #'인천에서 만들다, #붉은 누워있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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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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