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음악은 소리를 매체로 한 예술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자연을 표현하고,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삶의 모습들을 담는 그릇이 되어 주었기에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듣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한 만큼 음악은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클래식부터 재즈, 록, 팝, 힙합, 일렉트로닉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그 다양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 속에서 공감과 소통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지요.

물론 음악의 역사 가운데는 선동과 세뇌라는 어두운 임무가 주어진 때도 있었지만 팍팍하고 틀에 박힌 도시인들의 삶에 활력과 위로를 주는 것은 역시 음악 밖에 없습니다. 머나 먼 타국에서 노예로서의 삶을 시작한 흑인들에게도 음악은 '위로'였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그들의 삶은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야했던 흑인들의 음악은 정복자의 것이었던 유럽풍의 음악과 만나 아주 독특한 미국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재즈입니다. 혹자는 미국에서 살아야했던 흑인들의 한이 녹아있는 음악이 재즈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크리오울(Creole,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들의 음악이었다고 말하지요. 어쨌든 재즈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음악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인의 절대고독을 위로할 촉촉한 감성의 빗물이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재즈 음악의 낮은 선율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침잠하게 하며, 깊이 있는 노랫말은 삶을 관조하게 하니까요.

글, 그림 거스 고든/ 역 김서정/ 그림책 공작소
▲ <허먼과 로지> 글, 그림 거스 고든/ 역 김서정/ 그림책 공작소
ⓒ 그림책공작소

관련사진보기

그림책 <허먼과 로지>(글 그림, 거스 고든/ 김서정 역/ 그림책공작소)는 재즈 음악의 선율이 귓가에 맴돌게 하는 책입니다. 빛바랜 LP판이 보이는 표지가 눈에 띄는데요. 마치 턴테이블의 바늘을 놓듯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주인공 허먼과 로지가 사는 곳은 '뉴욕'. 그들은 한동네에 살지만 (그것도 바로 옆 아파트에) 서로를 모릅니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요.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허먼은 오보에 연주를 즐깁니다. 로지는 재즈 음악을 듣기 좋아하며 가끔 클럽에서 노래도 부릅니다.

둘은 모두 도시의 삶이 좋습니다. 활기찬 사람들의 소리와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끔은 외롭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해야 하는 일도 즐겁게 하지요.

어느날 허먼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꿀단지 같은 노래 소리를 듣습니다. 로지는 자기 집에서 집안 가득 채워지는 멋진 오보에 소리를 듣지요. 이 특별한 음악은 며칠 동안 두 사람을 따라다닙니다.

도시의 낭만은 가깝고도 먼 빌딩들 사이에서 이렇게 시작됩니다. 몇 번의 우연이 그들을 만나게 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설레는 마음이 살랑살랑, 간질간질해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텔레마케터 허먼은 물건을 많이 팔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납니다. 로지가 노래하던 재즈 클럽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고 말지요. 둘은 실의에 빠져 그만 몇 주가 지나도록 음악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도시는 허먼과 로지처럼 삶에 지친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모두 각자의 삶이 바빠 그들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지요. 나의 아주 가까운 곳에도 분명 또 다른 허먼과 로지가 있을 텐데 말이에요.

허먼과 로지의 만남
▲ <허먼과 로지> 허먼과 로지의 만남
ⓒ 최혜정

관련사진보기


그래도 허먼과 로지는 다시 일어납니다. 허먼은 오보에를 꺼내 옥상으로 갑니다. 부엌에서 무심히 팬케이크를 굽던 로지는 마음 속에 간직하던 멜로디를 다시 듣게 되자 행복해집니다.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음악 소리를 따라가지요. 화면을 가득 채운 허먼과 로지의 만남이 도시를 훤하게 밝힙니다. 휘영청 밝게 떠 있는 달빛은 우리 마음까지 밝혀주지요. 낭만이 가득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그림책입니다.

재즈 음악에서는 모든 악기가 하나하나 살아있습니다. 저마다의 개성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지요. 악기들도 다양합니다. 오보에, 트롬본, 피아노, 첼로와 같은 클래식 악기 뿐 아니라 기타, 드럼과 같은 밴드 악기도 자유롭게 결합됩니다. 마치 도시의 다양성을 담은 것처럼요. 허먼과 로지 역시 악어와 사슴인걸요. 그들이 만나 만들어낼 도시의 즐거움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재즈 음악이 흐르는 도시, 오늘은 퇴근 후 홍대 앞 재즈클럽으로 발길을 한 번 돌려보세요. 거기 허먼과 로지가 오보에를 불고 노래를 하며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허먼과 로지

거스 고든 글.그림, 김서정 옮김, 그림책공작소(2016)


태그:#허먼과 로지, #거스 고든, #그림책공작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