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저 역시 살며 억울한 일을 적지 않게 겪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받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해명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울하다는 말조차 못하고 지나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억울한 일에 대해 흔히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며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억울함도 있습니다. 특히 경찰의 날만 되면 그 억울함이 되살아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함께 경찰서에서 당한 그 억울한 사연,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습니다.

남편 앞에서 아내를 걷어찬 그 놈

2012년 11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시교육청에서 감사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그 해, 적어도 '그 사람만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2012년 8월 1일 묘 이장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님이 외부 가격에 의해 타살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후보는 이러한 진실을 외면한 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 8인에 대해서도 "두 개의 판결문이 있다"는 등 진실을 왜곡하려는 박근혜 후보를 보며 진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침묵하는 것은 이 시대에 양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내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표였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강제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내려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후에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일정한 자격과 조건만 가지고 있다면 대통령을 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박근혜 후보만은 안 된다'는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일을 혼자 판단해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아내와 상의하고자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아내에게 저는 밥을 먹으며 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고맙게도 아내는 제 생각에 동의해줬습니다. 양심의 울림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기 역시 지지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남편이 당장 월급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데도 제 생각에 동의해 준 아내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더 잘하겠다며, 또 신중하게 잘 처신하겠다며 아내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그때였습니다. 우리 부부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술에 취한 채 말다툼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은 친구 사이인데 술을 마시다가 어떤 일로 다툼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투던 두명의 남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돌아서서 씩씩 거리더니 걸어가던 우리 부부 앞으로 거칠게 다가오는 것 아닌가요?

그러더니 문제의 그 남자가 대뜸 우리 부부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왜 너희도 나를 한 대 때리고 싶냐"고 말하며 돌발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일에 아내가 본능적으로 저와 그 남자 사이를 비집고 막아섰습니다. 그러면서 "아저씨, 왜 지나가는 사람한테 이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뭘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제 눈 앞에서 벌어진 그 거짓말 같은 일. 문제의 남자가 항의하는 제 아내의 배를 발로 걷어찬 것입니다. 아내는 이내 그 충격으로땅바닥에 나가 떨어졌습니다.

이후 상황은 솔직히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 땅 바닥에 나가 떨어진 아내를 재차 폭행하려는 그 남자에게 정신없이 달려들어 붙잡았고 이후 육박전과 다름 없는 몸싸움이 자연스럽게 벌어진 것 같습니다.

아내가 또 그 남자에게 맞을까봐 저는 그 남자를 제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좀 떨어져 있던 그 남자의 친구가 이 싸움에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취 상태에서 말다툼을 하더니 자기 친구가 싸우자 도와준답시고 가세를 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3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 2명과 혼자 싸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눈이 뒤집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앞서 배를 맞고 땅에 쓰러진 아내가 2대 1로 싸우는 저를 보고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또 가해자들과 제 사이를 막아선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때였습니다. 처음 아내를 발로 걷어찬 그 놈이 재차 제 아내의 배를 걷어차는 것 아닌가요.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어이없고 참담한 일이었습니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또 있을까요. 이러다가 정말 우리 부부가 다 잘못될까 싶어 저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에게 "경찰에 좀 신고를 해달라"며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그렇게 맞으며 또 저항하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잠시 후,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경찰차가 도착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우리 부부가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어 가해자 남자 2명과 저희 부부가 경찰차를 타고 파출소로 향할 때 현장을 목격한 이들 중 몇 분이 경찰에게 우리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해 줬습니다.

"저 남자들이 이들 부부를 때렸다"며 증언해 주기도 했고 필요하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주기도 한 것입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파출소로 향하며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목격자도 많으니 이제 저 가해자들이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겠지 내심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고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정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잊을 수 없었던 그 악몽같은 사건, 그 분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대한민국 경찰의 사건 처리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날 때린 놈보다 경찰에게 더 한이 맺힌 그 사건

경찰의 합의 종용으로 아내는 억울하게 전과자가 됐다.
 경찰의 합의 종용으로 아내는 억울하게 전과자가 됐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파출소를 거쳐 경찰서까지 오고도 가해자들은 조금의 굴함이 없었습니다. 이유없이 부부를 폭행하여 경찰서까지 오고도 함께 온 친구끼리 내내 시시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경험이 많은지 "우리도 맞았으니 같이 처벌 받으면 된다"는 말을 우리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리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경찰을 믿었습니다. 남편 앞에서 자기 아내를 두 번이나 이유없이 발로 걷어찬 행위에 대해 저들이 뭐라고 하든 경찰이 우리의 억울함을 대신하여 '반드시 옳게 처리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점 이상했습니다. 시시덕거리는 가해자들의 비아냥과 조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경찰서에 도착한 지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던 일 때문에 그렇겠지 싶었지만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더구나 가해자들이 우리가 들리도록 내내 큰 소리로 모욕을 하는데도 이를 제지하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 앉혀 놓고 방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참다 못해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빨리 좀 조사를 해 주실 수 없냐고. 우리가 부부인데 외식하러 나왔다가 이 일을 당했고 지금 집에는 중학교 2학년 딸 아이만 혼자 있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돌아온 경찰의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그러게 왜 사람들과 싸웠냐"는 대꾸였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심장이 후들거릴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파출소에서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한 이후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말할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다시 말했습니다. 싸운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저 두 남자들에게 맞은 거라고. "40대 부부가 왜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두 명과 싸우겠냐"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경찰의 태도는 제가 기대한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제 말을 귀담아 듣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알았으니까 가서 앉아 있으라"는 대꾸가 전부였습니다. 이럴 수가. '사건이 또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경찰이 우리 부부의 피해 사실에 대해 공감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래서 사건 당시 제발 경찰에 신고 좀 해달라고 외쳤는데 그 경찰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경찰의 지시에 따라 할 수 없이 아내 옆의 긴 나무 의자에 앉을 때였습니다. 그때 들려온 가해자 남자 두 명의 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경찰에게 민망한 핍박을 받고 돌아서는 저에게 그들이 한 말이었습니다.

"아저씨. 어차피 뭐 서로 치고 받았으니까 쌍방 불처벌 합의서 쓰고 그냥 끝내자구. 끝까지 가봐야 쌍피(쌍방 피의자) 사건이니까. 뭐 어차피 이건 벌금 사건이니까 돈 많으면 끝까지 가던가. 같이 처벌 받으면 되지."

그러면서 또 시시덕거리는 그들. 순간 참담함과 분노로 살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었습니다. 그래. 지금은 마음껏 떠들어라. 아직 경찰이 사건 내용을 잘 몰라서 그렇지 조사가 시작되면 정의를 바로 세워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이를 악 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그토록 기다렸던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이 연행된 4명을 각각 한 명씩 나눠 진술조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정의는 사라지고 대신 들은 말은 좀 전에 가해자들이 했던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경위는 이랬습니다. 저에게 진술조서를 작성하던 30대 초반의 경찰은 처음부터 쌍방 폭행 사건으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아니라고 저는 열심히 소명했습니다. 사건 내용을 잘 몰라 그런가 싶어 정말 최선을 다해 우리가 왜 피해자인지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태도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그 경찰이 내 설명을 끊고 던진 말은 좀 전 가해자 남자가 하던 그 말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즉, "저 쪽에서도 당신한테 맞았다고 하는데 왜 피해자라고 자꾸 주장하냐. 그러니 서로 불처벌 합의하면 그냥 불기소 처분되는데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했습니다.

경찰은 결론적으로 상대방 남자들과 우리 부부가 싸웠기 때문에 '쌍방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반박했습니다. 상대방 남자가 이유없이 먼저 걷어차 땅에 쓰러져 이에 아내를 보호하고자 남편이 맞설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게 왜 쌍방 폭행 사건이냐고.

그러자 경찰의 답변은 예의 심드렁한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겠고 여하간 저쪽 주장에 의하면 여자 분도 자기를 때렸다고 주장하니 쌍방 폭행 피의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합의하면 불기소 처분해 드릴 수 있는데 어찌 하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경찰의 말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억울하다고 말했지만 결국 경찰은...

사건에 있던 그날,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결국 사람'이라는 이 액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게 경찰이 말하는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인가요?
 사건에 있던 그날,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결국 사람'이라는 이 액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게 경찰이 말하는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인가요?
ⓒ 고상만

관련사진보기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누가 봐도 진실을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부부가 외식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만취한 남자가 아내를 남편 앞에서 두차례나 때려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이런데, 경찰은 왜 쌍방 피의자 운운하며 합의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냐'며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기분이 나빠졌는지 "알았어요. 합의하기 싫다니, 그럼 둘 다 처벌해 드릴 테니 저기 가서 기다리세요"라고 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경찰의 태도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결국 아내와 다시 경찰서 형사계 의자에 물러 앉아 있으면서도 저는 너무 억울하고 황당했습니다. 이후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경찰서에서 억울하다며 분신자살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아내를 새벽시간 경찰서 형사계 의자에 앉혀 놓고 이런 모욕을 당하게 하는 무능한 남자. 집에는 중 2 딸 아이 혼자 있는데 아무 일은 없는지, 혹시 이 시간에 도둑이나 강도나 들어오면 어떡하나 온갖 걱정이 들면서 제 머리 속은 완전히 엉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3시가 좀 넘자 경찰이 말했습니다. '일단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시고 다음에 다시 출석하여 조사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와 가해자에게 모두 사무실을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경찰에게 다시 부탁을 했습니다.

지금 함께 나가면 또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우리가 먼저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내내 따지고 항의하는 제가 아니꼬운 듯 힐끗 쳐다보더니 "참 요구도 많으시네요. 그럼 남자 분들이 먼저 나가세요. 그럼 됐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태도에 황당했지만 제가 또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먼저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을 먼저 나가게 하면 우리에게 또 앙심을 품고 어디선가 기다렸다가 우리를 또 폭행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피해자 입장에 대한 일고의 배려조차도 없는 경찰의 태도. 어쩌면 경찰은 우리를 피해자가 아니라 쌍방 폭행 피의자라고 생각하니 그런 것일까요? 다행히 제 요구가 받아들여져 그렇게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아내가 불쌍했고, 또 제 스스로가 불쌍했습니다. 뭔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치는 밤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날아온 아내 '불기소 처분 통지', 참담했다

경찰 로고
 경찰 로고
ⓒ 경찰청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일단 집으로 돌아온 후 내내 고민했습니다. 너무 억울한 이 사건에 대해 정말 끝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제가 경험한 이 상황에서 과연 법의 정의를 믿을 수 있나'였습니다. 그날 밤의 경찰 태도를 봤을 때 "과연 제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을 경우 경찰이 제대로 된 진실을 담아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 줄까" 불안했습니다. 그런 지경에 이후 검사와 판사 역시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줄지 자신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바보가 아니라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40대 부부가 왜 젊고 건장한 30대 초반의 만취한 두 남자에게 시비를 걸고 싸운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사정에 대한 합리적 판단없이 "저 아줌마도 우리를 때렸고 아저씨도 같이 싸웠으니 처벌해 달라"는 가해자들의 말에 같이 호응하며 "어떻게 하실래요? 합의하실 겁니까? 아니면 쌍방 처벌로 넘길까요?"라는 경찰을 대하니 더 이상 뭘 어찌할까요?

결국 사건이 일어나고 이틀 후. 저는 다시 아내와 함께 경찰서를 방문했습니다. '끝까지 가 보자'는 오기와 '해 봐야 소용 없을 것'이라는 수많은 갈등 끝에 제가 진 것입니다.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경찰이 제시한 쌍방 불처벌 확인서에 지장을 안 찍으면 내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줄 것 같은 생각에 결국 지장을 찍기로 한 것입니다.

손가락에 시뻘건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으며 저는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또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30대 초반의 그 경찰이 우리 부부에게 훈시성 말을 던졌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길거리에서 싸우지 마세요. 그래야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정말 어이가 없어 저는 그 경찰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뭐라도 한마디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탈한 심정으로 마저 지장을 찍고 그냥 빨리 경찰서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경찰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냥 미안했습니다. 경찰의 그 어처구니없는 훈시성 말에 항의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내가 저에게 한 말은 이랬습니다.

"아니야. 당신이 왜 미안해. 다만 당신이 늘 경찰 문제를 이야기 할 때마다 솔직히 뭐가 문제라는 건지 잘 몰랐는데 이번 일을 겪어 보니 이제 알겠네. 정말 경찰은 좋은 일이든 아니든 만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일인 것 같네. 그냥 재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잊어."

그리고 얼마 후, 집으로 두 통의 우편물이 왔습니다. 지방검찰청 검사실에서 보내온 그 우편물엔 각각 아내와 제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어보니 '폭력 사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 통지'였습니다.

'죄는 있되, 쌍방 불처벌 합의에 따라 기소하지 않는다'는 그 통지를 접하며 생각했습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형사 처벌 기록이 남게된 아내. 그날 그 사건으로 왜 아내와 저에게 이러한 형사사건 처분 기록이 남아야 하나요. 정말 억울합니다.

오늘(21일)은 경찰의 날입니다. 대다수 많은 경찰이 국민을 위해 고생하십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정의를 지키고 보호해 주는 공권력인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확신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우리 부부에게는 그날의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혹시 오늘도 그날 밤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어떡하나? 만약 그러한 일이 또 발생한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그때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묻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님. 만약 그날 제가 당한 일을 청장님이 똑같이 당하신다면 과연 청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청장님 앞에서 누군가 낯선 남자가 청장님 부인의 배를 걷어 차, 부인이 길바닥에 나가떨어진다면 그 순간 남편인 청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해야 이런 억울한 일을 겪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공권력이 제대로 된 수사와 판단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 주지 않고 사건 처리를 한다면 과연 어느 국민이 경찰을 신뢰할까요? 그런데 '당사자끼리 불처벌 합의하는 방식으로 사건만 종결시키면' 상대방 민원도 야기되지 않고 또 일도 줄어든다는 이유로 경찰이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면, 그게 정말 옳은 걸까요?

저와 같은 억울함을 가진 국민은 또 있을 것입니다. 경찰의 날, 저는 이러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의 입장을 다시 생각하는 경찰의 날이 되기를 촉구합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끝으로 '치안을 위해 수고하시는 더 많은 진짜 경찰관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며 글을 맺습니다.


태그:#경찰, #불기소, #불처벌 합의서, #쌍방폭행, #공권력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