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포스터. 에바 그린의 호연이 돋보인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포스터. 에바 그린의 호연이 돋보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동심의 세계엔 입구가 필요하다. 미스 페레그린이 만들어놓은 루프(시공간을 왜곡시켜 특정한 시간을 반복해 살 수 있게 만들어놓은 장)가 그렇듯이 일상적인 모습으로 위장한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통로가 필요하다.

페레그린의 루프로 들어가는 입구가 웨일스 어느 섬의 동굴이라면 전통적인 동화의 입구는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 같은 주문에 가까운 문장이다. 다정한 할아버지나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주문은 아이들을 오랜 신화와 전설, 그러니까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비이성적 세계로 이끈다.

때로 그곳은 피터 팬의 네버랜드이며 회오리에 휩쓸려 닿는 오즈이기도 하고 앨리스 앞에 펼쳐진 이상한 나라처럼도 보인다. 사실 그곳은 이곳이 아닌 모든 곳이다.

비밀스러운 통로일수록 일상적인 모습을 하는 법이다. 앨리스가 토끼굴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섰고 <쥬만지> 속 아이들이 보드게임을 하며 게임 속 세상을 현실 밖으로 끄집어낸 것처럼. 해리포터가 마법의 세계로 가기 위해 킹스크로스 기차역 9와 3/4 승강장을 거쳐야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신비의 세계와 맞닿은 평범한 입구, 대체 무엇 때문에 많은 동화와 설화는 이런 설정을 반복해 사용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세계의 경계 너머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 바로 호기심과 상상력이다. 왕성한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이 빚어낸 한계 없는 세상, 신비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팀 버튼의 세계에 한계란 없다

 거실에 모여 영상을 보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

거실에 모여 영상을 보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팀 버튼은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독이다. 그가 신비로운 세계에 끝없이 천착하는 것도, 죽음과 같은 알 수 없는 난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타고난 호기심 때문이다.

그는 남다른 호기심을 바탕으로 끝없이 관심사를 확장해 왔고 마침내 다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저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마치 영화 속 할로우게스트가 그렇듯, 팀 버튼은 해갈할 수 없는 욕구로 다른 작가들의 독특한 세계관을 끊임없이 잡아먹고 있다. 그런 그에게 랜섬 릭스의 소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아래 <미스 페레그린...>)은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의 영화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때로는 다락이나 동굴, 토끼굴과 회오리조차도 필요치 않다. 듣고자 하는 귀가 있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호기심이 있다면 '옛날 옛적에'와 같은 오래된 주문으로도 닿지 못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미스 페레그린...>은 팀 버튼 자신의 전작 <빅 피쉬>를 연상하게 한다. 선대가 후대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빅 피쉬>는 허풍쟁이로 여겼던 아버지의 믿기 힘든 경험담이 사실이었음을,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한 순간에서야 알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다. <미스 페레그린...>도 할아버지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그가 늘 말해온 이야기가 사실일 수 있음을 알게 된 손자의 이야기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할아버지가 자란 고아원을 찾고 그곳에서 놀라운 신비와 마주한다.

팀 버튼의 두 영화는 모두 선대가 전해주는 오래되고 믿기 힘든 이야기를 후세대가 받아들인다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 죽음이 주요한 소재로 활용되고 주류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이 지닌 특별함을 매력적으로 강조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스 페레그린...> 속 악당의 모습에선 오래된 설화나 동화의 변주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괴물 할로우게스트는 영생을 얻으려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존재로, 다시 인간이 되고자 능력자들의 눈알을 뽑아먹는다. 구미호가 인간의 간을 탐하고 드라큘라가 따스한 피에 갈증을 느끼듯, 산 인간의 신체를 먹어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는 것이다.

2000년대 판타지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인 <해리포터> 시리즈의 악한 마법사 볼드모트는 이런 부류의 악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캐릭터다. 조앤 롤링이 냉담하게 묘사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볼드모트는 육체가 없는 존재로 등장해 끊임없이 타인의 생명을 빨아먹고 그로부터 생존의 원료를 얻고자 한다.

모든 어른은 한때 아이였으므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공기보다 가벼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엠마(엘라 퍼넬 분)와 그녀를 붙잡고 있는 주인공 제이크(에이사 버터필드 분). 팀 버튼의 영화에 출연, 전 세계 관객에 얼굴을 알린 두 배우는 실제 연인 사이라는 소문에 휩싸인 상태다.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공기보다 가벼워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엠마(엘라 퍼넬 분)와 그녀를 붙잡고 있는 주인공 제이크(에이사 버터필드 분). 팀 버튼의 영화에 출연, 전 세계 관객에 얼굴을 알린 두 배우는 실제 연인 사이라는 소문에 휩싸인 상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여러모로 <미스 페레그린...>은 오래된 전형의 동화적 변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팀 버튼은 옛것으로부터 새것을 창조하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수고, 특별히 남다른 취향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엔 도가 튼 연출자다. <미스 페레그린...>은 그런 그가 20여 년 전 <가위손>과 <배트맨>에서 그랬듯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그렇게 태어난 영화는 아이들의 블록버스터가 됐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불과 바람을 다루는 능력부터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흑마법과 동물로 변하는 변신능력, 빛을 쏘는 능력과 투명인간 등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돋우는 능력들이 망라된다. 악당의 위협을 아이들끼리 극복한다는 <에밀과 아이들> 류의 짜릿함과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랑과 우정 따위의 감상이 적절히 삽입된 건 물론이다.

하루가 50년 동안 반복된다는 설정부터 깨어지기 쉬운 완벽함을 지켜내기 위한 페레그린의 강박적 노력, 루프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안락하지만 권태로운 모습 등은 그 자체로 흥미를 자아내는 요소다. 침몰한 대형여객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배 안의 해골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괴물들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 아이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과정은 그 결말이 쉽게 예상 가능할지라도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롭다.

천진한 아이부터 진지한 어른까지 모두를 매혹시킬 멋진 장면들로 가득한 팀 버튼의 영화에선 자신이 빚은 동화가 모두에게 먹힐 것이라 확신하는 특유의 자신감이 읽히는 듯도 하다. 사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어른은 한때 아이였으므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팀 버튼 에이사 버터필드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