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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태풍의 눈' 정유라씨가 마침내 덴마크에서 체포됐습니다. 정씨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 "엄마가 다 했다", "나는 모른다"라고 발뺌했습니다. SNS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말했던 정씨. 출석도 안하고 시험도 안 본 정씨에게 학점을 준 이대 교수님들. 우리 사회의 민낯에 청년들은 분노하기보다 허탈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싣습니다. [편집자말]
내가 고3이던 5년 전, 딱 이즈음이었다. 나를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은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분노와 절망을 느낀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입학사정관제도가 붐을 일었던 때였다. 나와 몇몇 친구 역시 그 전형을 썼다. 붙은 친구들도 있었고, 아예 낙방한 친구도, 면접에서 떨어진 친구도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도는 뒷이야기가 있었다.

"누구는 내신도 낮고 스펙도 없는데 붙었다더라"
"누구는 면접 날 대답도 못 했는데 최종합격했다더라"
"그런데 그 누구의 부모님이 사실 누구라더라"

이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합격한 '그 누구'가 합격한 뒤에 학교를 떠나면서 했던 말이나 평소의 모습, 선생님의 평가들을 종합했을 때는 그건 거짓보다 사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애초에 주관이 개입하는 전형이고, 우리가 모르는 장점이 있었나보다'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누가 소위 '빽'으로 붙었다는 이야기는 절망이었지만, 우리에겐 증거를 찾을 능력도, 대안도, 그럴 시간도 없었다. 닥친 수능 준비에 몰두할 뿐이었다.

'공정하게 평가받는다'는 믿음은 깨졌다

최경희 총장 사퇴 촉구하는 이대생들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경희 총장이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관련 학내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학생들이 행사장밖에서 총장 사퇴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경희 총장이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관련 학내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학생들이 행사장밖에서 총장 사퇴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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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서울대 1%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서울대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은 교수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우고 적어낸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대학생들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여겼다.

당장 사는 모습이 그랬다. 교수님과 의견이 다른 것을 표출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그 과목을 포기할 각오"가 필요했다. 발표나 실기 수업에서 교수님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면 그 생각을 따랐다. '그 교수 정치 성향이 이러니, 그런 식으로 답안을 적고 발표해야 점수를 잘 준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수님의 말은 법이었고, 법을 어긴 자에겐 낮은 점수라는 형벌이 뒤따랐다.

대학가는 지금 시험 기간이다. 매 시험 기간마다 찾아오는 논란은 바로 '족보'다. 선배가 과목의 시험문제를 후배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시험 기간 때마다 학생들은 족보가 옳네 그르네 싸움을 벌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쳤는데 족보대로 나와서 좋았다는 다른 학생의 후기를 들을 때면 힘이 빠진다는 이야기에는 '족보 구하는 것도 능력이다'란 말이 뒤따랐다. 그 반론이 옳든 그르든, 문제는 매년 같은 문제를 내며, '족보가 있으니 문제를 바꾸어 달라'는 학생들의 피드백을 무시하는 교수들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쨌거나' 학생들이 공부한 건 어떤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라는 믿음.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불공정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 최소한 '우리 모두 같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까'라는 믿음.

그렇기에 면접날 대답을 하나도 못했다고 직접 말한 학생이 수시에 붙어서 학교에 나오지 않고, 사실 걔 부모님이 누구래라는 이야기에도 '설마 그래서 뽑혔겠어'라며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무시당하고 교수가 부당한 것을 요구해도 그 부당함이 '우리 모두 겪는 일'이라고 넘겼다. 누군가가 족보가 있다더라고 해도 '족보가 있어도 공부를 안 하면 시험을 잘 볼 수 없어'라면서 공부를 해왔다.

그 믿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시 발표가 나기 시작하고, 수능이 불과 1달 남았으며, 대학생들이 시험에 돌입한 지금, 무너지고 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야기다. 전형을 만들어서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입학을 하고, 규칙인 출석과 과제 기한을 무시하고 그 과제조차 비속어와 은어로 메워져 있지만 F가 아닌 B학점을 받고, 그 모든 것들이 '돈도 실력이다'(정유라씨의 SNS 발언)라는 말로 끝나는 이야기. 모든 규칙을 어겨도 '네, 잘하셨어요'라는 교수님의 친절한 말이 뒤따르는 이야기.

'해도해도 안되는 망할새끼... 허탈하다

'비선실세' 딸 각종특혜에 분노한 이대생들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 곳곳에 ‘비선실세’ 최순실 딸 정유라(승마특기생)의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를 규탄하는 각종 대자보가 붙어 있다.
▲ '비선실세' 딸 각종특혜에 분노한 이대생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 곳곳에 ‘비선실세’ 최순실 딸 정유라(승마특기생)의 부정입학 및 학사 특혜를 규탄하는 각종 대자보가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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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화여대 총장이 사임을 했음에도, '그래도 특례 입학과 특혜는 없었다'는 발표가 이어진다. 바뀐 건 없다. 어쨌거나 평범한 우리는 여전히 시험공부를 해야 하고, 여전히 부당한 규칙이더라도 따라야 하며, 여전히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의 '공정'에 대한 믿음은 갈수록 얇아지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능력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씨의 말에 따르자면, '믿음'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부모님을 탓해야 하는 걸까?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는 시험을 쳤고, 치고 있고, 칠 것이다. 평가를 받았고, 받고 있고, 받을 것이다. 오늘도 도서관과 독서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늦은 나이에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내 친구들은 1년째 이른 아침에 학원을 가서,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많은 10대, 20대의 생활도 다르지 않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저 '평가는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할 뿐이다. 그러나 노력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은, '달그닥, 훅' 하고 사라지고 있다. '해도해도 안되는 망할새끼'(정씨의 리포트 내용에 들어있는 비속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생 내내 이어지는 허탈함과 무력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평범하게 노력하는 청년들을 '해도해도 안되는 망할새끼'로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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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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