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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화려한 3일을 보내고 9월 16일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 드골공항으로 가는 12시 30분 비행기를 타러 여유있게 아일랜드 코크공항에 도착해 아침을 먹었다. 메뉴로 아이리쉬 블랙퍼스트와 오트밀 수프가 있었다. 오트밀 수프를 골랐는데 묽은 죽에 호박씨 등 갖은 씨앗과 꿀, 잼 등을 넣어 달달하게 먹었는데 해장도 되고 든든했다.

식사 후 출국 수속을 마치고 일부는 면세점 구경을 하고 몇 명은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오빠가 "빠리에 빠리바게트가 있는가?"라고 전라도 억양으로 '아재 개그'를 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코크공항에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게이트 바로 옆에 '펍'이 있다. 맥주를 마시면서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면 지루하지 않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대표 항공사인 에어 링구스(Aer Lingus)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는 아일랜드의 상징인 클로버가 그려져 있다.
 아일랜드 대표 항공사인 에어 링구스(Aer Lingus)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는 아일랜드의 상징인 클로버가 그려져 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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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시간이 돼 비행기를 타러 움직였다. 에어 링구스(Aer Lingus)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는 아일랜드의 상징인 클로버가 그려져 있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는 아일랜드에 사는 '민'도 함께 했다.

파리 시내에서 만난, '불타는 강남'

드골공항에 도착하니 총을 멘 군인들이 많아 테러의 위험이 몸소 느껴졌다. 지난해 11월 파리의 공연장과 축구경기장 등, 6곳에서 총기 난사와 자살폭탄 공격 등의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해 최소 130명이 사망했다. 파리 시내를 구경할 때도 경찰과 군인들을 자주 만났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만난 낮선 풍경에 기분이 씁쓸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프랑스에서 가장 맛있다는 라뒤레(LADUREE) 마카롱을 파는 매대가 있었는데 '가장 맛있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알록달록한 것들 중 세 개를 샀다. 큰 단추만한 크기인데 하나에 2유로가 넘었다. 내 입맛으로는 설탕 덩어리에 물감을 씌운 불량식품 같았다.

숙소로 가기 전에 공항에서 파리 뮤지엄 패스(Paris Museum Pass)를 구입했다. 이 패스는 파리와 그 주변지역의 박물관과 미술관 60여 개를 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2일과 4일, 6일권이 있는데 우리는 2일권을 48유로에 샀다. 루브르박물관 입장료가 15유로인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비싼 건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패스는 무제한으로 다닐 수 있고 특히 티켓을 구입하느라 드는 시간을 절약해 빠른 입장이 가능하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민의 작업실로 가 짐을 풀었다. 민의 작업실은 사진 촬영과 작업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와 침대와 소파가 있는 휴식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깨끗하고 하얀 벽의 스튜디오에는 성능 좋은 빔 프로젝터와 오디오 시설이 갖춰졌으며 싱크대와 냉장고, 화장실, 욕실 등이 있어 말이 작업실이지 게스트하우스나 펜션 못지않았다. 보통 작업을 하면 스태프 20여 명이 작업하면서 쉬는 공간이란다.

민의 작업실이 있는 휘드빌리에 골목에는 예술가 700여 명이 산다. 그들은 1년에 두 번 자신들의 작업실을 오픈해 관광객들이 작품을 구경하거나 구입하는 행사를 하는데, 10월 중순에도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작품을 사러 많이 온다고 한다. 실력은 있는데 아직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예술가들이 수준 높은 작품을 저렴하게 파는데 그 작품이 나중에는 큰돈으로 팔 수도 있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고 민은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처음 들른 식당이 한국음식을 파는 '불타는 강남'이었다. 중국인 사장과 한국인 주방장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프랑스에서 처음 들른 식당이 한국음식을 파는 '불타는 강남'이었다. 중국인 사장과 한국인 주방장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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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은 후 본격적인 파리여행을 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중국인 사장에 한국인 주방장이 있는 '불타는 강남'이라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김치찌개와 오삼불고기, 해물파전, 순두부찌개 등을 시켰다. 프랑스에 도착해서 처음 먹는 음식이 한국음식이었고, 한국을 떠나 6일 만에 먹는 한국음식이었다. 음식이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저작권이 없는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지하철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소리가 꽤 켰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프랑스 지하철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소리가 꽤 켰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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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강남'에서 나와 몽트뢰유(Montreuil) 지하철역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프랑스 와 우리나라 지하철의 다른 점 두 가지 중 하나는 지하철역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하라 소리가 크게 울려 노래를 좋아하는 나조차 기타나 신디사이저 연주소리가 소음처럼 들렸다. 우리나라였다면 쫓겨나거나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프랑스 지하철 역 안에는 과일을 파는 상점이 많다.
 프랑스 지하철 역 안에는 과일을 파는 상점이 많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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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지하철에서 과일을 파는 간이상점이 많다는 거다. 우리는 천도복숭아와 납작복숭아를 사서 통로와 열차 안에서 먹었다. 걸어 다니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음식을 먹지 말라는 교육과 세뇌를 당해서인지 먹는 게 무척 어색했다.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 지하철 안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그쪽으로 눈을 돌리니 나를 보는 중년 여인이 눈을 마주치자 웃음을 지었다.

민은 '프랑스에서는 뭘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걱정 말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3일간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과일을 먹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파리지엥들은 과일을 안 좋아하나?

루브르 박물관은 엄청 넓었다. 대영박물관에서도 입을 벌리면서 관람했는데 소장품 38만점의 루브르는 상상 이상이었다. 루브르궁전이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루이 14세가 1682년에 거처를 베르사이유궁으로 옮기고서다. 역대 프랑스 국왕들이 수집해놓은 방대한 미술품을 소수 특권층만 누리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대중에게 공개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원근법과 소실점을 적용한 그림으로, 중세시대 소실점의 발견은 혁명적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원근법과 소실점을 적용한 그림으로, 중세시대 소실점의 발견은 혁명적이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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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사진작가 민은 어떤 도슨트보다 훌륭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줬다. 그녀의 설명 중 기억나는 것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칼리아리 파올로 베로네세(Caliari Paolo Véronèse)가 그린 '가나의 결혼식'이었는데, 원근법과 소실점이 적용된 그림으로 중세시대 소실점의 발견은 혁명적이라고 민은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화가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였다. 과일과 야채로 사람의 얼굴을 그렸는데 작가주의의 시초라고 설명해줬다. 예술가는 어떠해야하는가를 그림으로 보여준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든 작품에는 저작권이 없단다. 개인이 사진으로 찍은 모든 걸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이틀은 밤 10시까지 개장하는데 운이 좋게 우리가 간 날 밤 10시까지 개장해 많은 것을 구경했다.

퐁피두와 몽마르트 언덕, 오르세 미술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딴 퐁피두센터. 건물 외벽에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현대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딴 퐁피두센터. 건물 외벽에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현대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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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여행 이틀째, 오전에 퐁피두센터에 갔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 미술관이 센터에 있다. 퐁피두센터 건물 외벽은 배수관과 가스관, 통풍구가 밖으로 노출되게 지었다. 컬러풀한 건물 철골을 그대로 드러낸 외벽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센터를 만드는 데 힘을 쓴 당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1977년 개관했는데 개관 당시 현대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파리국립근대미술관이고, 퐁피두센터 4~5층에 있다. 1900년대 초부터 1960년대까지 작품을 모은 5층의 '근대 컬렉션'에는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 샤갈 등의 대작이 모여 있고, 4층 '현대 컬렉션'에는 앤디워홀, 조셉보이스 등의 작품이 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아쉽게도 4층은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앤디워홀이 다녀간 식당에서 점심으로 오믈렛을 먹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17세기의 샬레 저택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은 흰 벽에 고풍스런 건물 내부의 나무 구조를 그대로 살려 미술관 자체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세계 각지에 있는 피카소의 작품 중 회화, 조각, 판화 등 3000점 이상이 소장돼있다.

아침 7시까지 민의 스튜디오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3시간밖에 못 잤지만 우리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는 세느강이 흐르고 에펠탑이 우뚝 서 있고 몽마르뜨 언덕이 올려다 보이는 프랑스 파리가 아닌가.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노틀담역으로 이동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라는데,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세느강변과 노트르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었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샤이오궁 광장에서 단체사진을 셀카로 찍었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샤이오궁 광장에서 단체사진을 셀카로 찍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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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100주년인 1889년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세운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 드디어 도착했다. 여행이란 떠나기 전의 '설렘'이 최고의 미덕인 것 같다. 직접 본 에펠탑도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래도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샤이오궁으로 향했다. 궁을 구경하기보다는 우리처럼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해발 130m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평지인 파리에서는 시내를 내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대에 속한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야경을 구경하러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다.
 해발 130m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평지인 파리에서는 시내를 내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대에 속한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야경을 구경하러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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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도 볼 겸 저녁식사도 할 겸 몽마르트 언덕으로 갔다. 해발 130m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평지인 파리에서는 시내를 내다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대에 속한다. 시내 곳곳에서도 에펠탑과 몽마르트 언덕이 보인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야경을 구경하러 올라온 사람들이 많았다.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몽마르트 언덕에서 보냈다.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펜션 사장 오빠가 한턱 쏴 말로만 듣던 달팽이 요리와 연어구이, 오리 다리 구이 등,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 1939년까지 기차역이었던 곳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 1939년까지 기차역이었던 곳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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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귀국을 앞두고 오르세 미술관만 들렀다.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미술관과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을 다루는 루브르 박물관, 20세기 이후의 현대 미술을 다루는 퐁피두센터의 국립근대미술관과 비교하면, 19세기 이후의 근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앞의 두 미술관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 3대 미술관을 모두 관람했다.

1939년까지 기차역이었던 곳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는데, 소장 예술품은 물론 건물 자체만 구경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세잔, 쿠르베, 루소, 드가, 모네, 마네, 고갱, 고흐 등의 작품이 있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교과서나 어디에서 봤던 그림들을 직접 보는 게 신기했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재밌게 본 터라 고흐의 작품은 직접 보고 싶었다. 그 중 자화상이 보고 싶었다. 고흐는 4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내가 보고 싶었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은 다른 미술관에 대여해줘 없었다.

유럽 여행을 가기 전 많은 사람들한테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도둑을 조심하라는 거였다. 특히 몽마르트에 많다고 했는데 전날에도 문제가 없었고 대여섯 명이 같이 다녔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지하철에서 드디어 '도둑님'을 만났다.

오후 시간이었고, 승객들이 많아 좀 번잡했다. 지하철이 출발하려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서넛이 닫히는 문으로 나가려다 몸이 끼였다. 일행은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에 손으로 문을 열어 아이들이 나가게 도와줬다. 그런데 그 놈들이 일행 한 명의 가방을 열고 파우치를 훔쳐간 것이다. 다행히 귀중품이 들어있지는 않고 긴 여행의 마지막 추억이라 여기자고 말했지만 뛰는 심장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12시간 비행 후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에 도착한 후 인천공항에 9월 19일 오후 9시께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죽은 듯 잔 기억밖에 없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해 라면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달팽이, 거위 간, 피쉬 앤 칩스, 오리구이 등, 유럽의 산해진미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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