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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겨울왕국>으로 부활한 문화왕국 디즈니. 이 디즈니사가 지난 10일 공식적으로 '현대식 공주님'의 10원칙을 발표했다. 20세기는 물론 21세기까지 그간 금발이 대다수인 백인 중심에다 예쁘고 메마른 어린 여성으로 표상되던, 그리하여 보수적이며 반여성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고 비판을 받아 왔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상을 변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원칙을 나열하면 이러하다.

"타인을 배려하라 / 건강하게 생활하라 / 외모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 / 정직하라 /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라 / 자기 자신을 믿어라 /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라 / 최선을 다하라 / 충실하라 /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러니까, 외모보다 내면을 중시하라는 메시지가 되겠다. 20세기는 물론 현재까지도 전세계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디즈니의 변화가 반갑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들썩거리게 만드는 두 명의 공주님은 이러한 원칙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멀어 보인다. 그렇다. 부끄러움은 항상 우리 몫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권 실세로 드러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말이다.

디즈니 '공주님' 원칙 따르면...

 최순실(최서연)-정유라 모녀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이 인수한 호텔 비덱-타우누스 호텔 전경. 3성급 호텔로 독일 헤센지방에 있으며 16년 6월 23일 재개장했다.
 최순실(최서연)-정유라 모녀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이 인수한 호텔 비덱-타우누스 호텔 전경. 24실 규모의 3성급 호텔로 독일 헤센지방에 있으며 16년 6월 23일 재개장했다.
ⓒ 비덱-타우누스 호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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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현대식 공주님' 10원칙 항목을 보자. 타인을 배려하라? 세월호 유가족도 매몰차게 외면하는 박 대통령은 타인배려와는 멀어보인다. 외모로 남을 판단하는지 여부는 정확지 않지만, 본인 의상에는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인다. 정직? 대선 공약 팔 할이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뢰를 주기엔, '박근혜 화법'에서 볼 수 있듯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어디 이 뿐인가. 자기 자신만큼이나 최태민 일가를 더 믿는 듯 보인다.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는커녕 나라 전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침몰시키는 중이다. 또한 최선을 다해 '새마을 운동'이 창궐했던 유신 시대로 시계를 돌리고 있다. 그것도 꽤나 충실하게. 지지율이 20%대 최저치를 찍어도,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여도,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디즈니의 '공주님' 원칙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공주님 자격이 없다. 그런데 또 한 명의 공주가 나타났다. 이번엔 진짜다. 변혁을 선포하기 전, 디즈니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할 법한 철없고 물려받은 것만 많은 '공주'. 스스로도 자신을 공주라고 인식하는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 상위 1% 세계 속 공주님. 정유라라는 이름의 공주. 

"돈도 실력이다, 부모나 원망해라"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경희 총장이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관련 학내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학생들이 행사장밖에서 총장 사퇴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경희 총장이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관련 학내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가운데, 학생들이 행사장밖에서 총장 사퇴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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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신경 안 써요. 공주라는데 기분 좋죠 뭐. 호호."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인터뷰를 가진 정유라는 그해 4월 이후 불거진 공주승마 특혜 배경 논란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것도 아주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목소리로, 여유와 웃음을 담아. 심지어, "진짜 공주(태국 선수)를 이겨서 기분 좋다"고도 했다. 공주들은 태생적으로 '논란' 따위는 간단히 무시하는 게 법도요, 본분인 듯 싶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역시나 단단한 특권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19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정씨의 SNS 게시글 중 일부다. 2014년 3월, 국가대표 발탁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지던 시기 정씨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SNS 글은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이게 대학 리포트냐"고 했다던 그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요약하면 이렇다.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
"말 타는 사람 중에 친한 사람 없어. 나 친한 사람 딱 네 명 있어. 너희들은 그냥 인사하는 애들 수준이야. 뭘 새삼스럽게 병이 도져서 난리야"
"내가 만만하니? 난 걔들한테 욕 못해서 안 하는 줄 알아? 놀아나주는 모자란 애들 상대하기 더러워서 안 하는 거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수준의 글이다. 맞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정몽준 후보가 홍역을 치르고 공개 사과했던 막내아들의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던 글과 수준이 대동소이하다. 다른 점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은 유력 정치인이자 재벌가의 아들이지만, 정유라는 일개 개인인 최순실의 딸이란 점이다.

순식간에 전통의 이화여대를 '순실여대'로 둔갑시키는 그 힘의 원천이 어디일까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정유라는 자신이 공주란 사실도 숨기지 않았고, 그 힘과 돈의 원천과 배경이 불분명한 부모의 힘을 스스로 인식하고 과시하기까지 했다. 시위에 나선 이대생들과 교수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 허탈하고 분노케 만드는 공주님 되시겠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이를 두고 자신의 SNS에 이렇게 일갈했다.

"민중의 99%는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나향욱)
"돈도 실력. 너 네 부모를 원망해라." (최순실 딸)
둘은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이 말들이 명료하게 드러낸 것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공주정치의 실체, 공주가 공주에게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 관련 학내구성원 대상 설명회를 마친 뒤 브리핑없이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의혹’ 관련 학내구성원 대상 설명회를 마친 뒤 브리핑없이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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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공주에게'.

결국, 지금의 정유라를 만든 건 팔할이 '공주' 박근혜 대통령의 힘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그 연결고리는, 연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의 중심에 선 최순실씨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공주는 "단순한 의혹제기"라고 묵묵부답이고, 한 공주는 그 엄마와 함께 행적이 묘연하다. 

그 와중에 정체불명의 실세에게 수백억을 갖다 바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과 전경련)은 난처하다기보다 자업자득의 곤란을 겪는 중이다. 더불어 그 공주에게 충성하는 검찰 수사는 언제 제대로 개시될지 기약이 없다. 공주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의 수준이 현재 이 정도다.

18일 오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한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최순실과 차은택 감독 이외에 K스포츠재단을 좌지우지한 핵심인물이 더 있다고 밝혔다. 진정이지,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이 양파 같은 박근혜 정부의 실세 비리가 주는 피로감과 불법의 연쇄야말로 공주 정치가 보여주는 궁극의 타락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19일 오후 논란의 중심에서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사임을 표명했다. 이화여대 측은 "최근 체육특기자와 관련하여, 입시와 학사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지만, 전형적인 '손가락으로 하늘 가리는' 격이다. 

당사자든 공범이든,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그 와중에 범죄 유무가 가려질 것이고, 도덕적 책임론도 불거질 것이다. 이게 다 지난 2014년 불거진 비선실세 논란이 여당과 청와대, 언론과 검찰의 합작으로 유야무야 넘어간 탓이 크다. 대선을 1년여 앞둔 지금, 공주 정치의 실체와 폐해를 국민들 앞에 낱낱이 까발려야 한다. 나라를 망치고 국정은 물론 경제계와 문화, 체육계까지 뒤흔든 주범들을 단죄하지 않으면, '헬조선'의 미래는 암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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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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