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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가는 길목에서 만난 태권 소년
 룸비니 가는 길목에서 만난 태권 소년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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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 도착해 룸비니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터미널을 다시 찾아가야 했다. 택시를 이용하면 쉽게 찾아 갈 수 있지만 여비를 아끼기 위해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카트만두에서 모한이 적어 준 종이쪽지를 버스 차장에게 내밀어 가며 룸비니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터미널을 찾아 헤맸다. 중간에 버스를 잘못 타서 다시 다른 버스를 갈아타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모한 말로는 이곳 라트나 파크 버스 터미널에서 룸비니 가는 '퍼블릭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한은 '퍼블릭 버스'를 'government'(정부) 버스라고도 불렀다. 두 버스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동안 내가 주로 이용해 왔던 우리의 시내버스처럼 곳곳에서 정차하는 로컬버스에 비해 '퍼블릭 버스'가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았다.

히말라야에서 멀어질수록 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룸비니는 카트만두보다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무척 더울 것이었다. 다친 무릎을 끌고 벌써 한 달 넘게 강행군하고 있다 보니 체력도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찌는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숨이 턱턱 막혀오는 장거리 로컬버스는 자신이 없다.

현재 시간 오후 3시. 룸비니 가는 '퍼블릭 버스'는 아침 저녁 두 차례 운행하는데 저녁 7시 30분차를 타야 했다.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4시간 이상을 보내야 한다. 식당을 찾아가자니 모한과 함께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뭐든 먹고 싶지 않다. 어디에서 4시간을 보낸단 말인가. 영화를 보러 갈까. 터미널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영화관은 카트만두로 다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어쩔 수 없이 터미널 주변을 구경삼아 빙빙 돌았다. 크고 작은 식당과 모바일 가게가 가장 많이 눈에 띄고 옷가게나 일상용품점들도 즐비하다. 혼잡한 버스 터미널이지만 인도의 복잡한 도심처럼 구걸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내게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끌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없다. 2개월 반을 떠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긴 머리에 긴 수염, 검게 그을린 얼굴, 두 벌로 번갈아 입고 다닌 옷은 배낭을 멘 어께 부분이 찢어져 있다.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으니 누가 호객행위를 하겠는가 싶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걸인. 사람들이 먹다 남기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내게 웃으며 다가왔을 때 나는 자리를 피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걸인. 사람들이 먹다 남기는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내게 웃으며 다가왔을 때 나는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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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과 외떨어진 식당 주변의 나무 그늘 밑에 앉았다. 아주 착하게 생긴 걸인이 히죽거리며 식당 주변을 끼웃거리다가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료수를 집어 든다. 그러다가 빗자루를 들고 호통을 치는 식당 주인에게 쫓겨난다. 걸인은 그 짓을 멈추지 않고 식당 주인 또한 마찬가지다. 식당 주인은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지만 걸인은 실실 웃으며 물러선다. 그는 누군가 남긴 것을 먹으려 하고 있었지만 구걸하지는 않는다.

그의 손에는 작은 몽당연필이 들려 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나처럼 글을 쓰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림을 그리려는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지만 나는 차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고만 있다. 순간 나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히죽 웃는다. 나도 웃어 줬다. 그의 허리는 꺾여 있다.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자 식당 앞에 서 있던 주인이 배낭을 조심하라고 눈치를 준다.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식당 주인의 말이 거슬려 나는 슬그머니 배낭을 챙겨 자리를 피한다. 그가 아쉬운 듯 제자리에 우뚝 서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초점이 없다.

나는 그의 초점 없는 눈빛을 피해 다시 터미널 상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터미널 상가를 뱅뱅 돌다가 배낭을 놓고 적당히 쉴 곳을 찾았다. 하지만 차나 음료수만 취급하는 카페가 보이지 않아 식당을 찾아 들어가 발효 음료 '라씨'를 시켜 놓고 앉았다.

이곳 터미널 상가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다. 내가 여행 내내 값싸게 즐겨 먹고 있는 모모나 자오민을 시켜먹는다. 간혹 술을 시켜 마시는 사람도 있다. 네팔에서는 한국처럼 식당과 점포 모두 술을 팔고 있다. 식당은 고사하고 점포에서 조차 술을 구하기 쉽지 않은 인도와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라씨 한잔 시켜 놓고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미안해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는 손님들이 뜸한 식당을 골라 짜이 한 잔을 시켰다. 세 명의 남자 종업원이 지키고 있는 이 식당은 비교적 외진 곳에 있어 단골이 아니면 손님들이 쉽게 찾아오지 않을 듯싶다.

세 명의 종업원 중에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종업원에게 짜이 한 잔 시켜 놓고 계속 앉아 있어도 되냐 물었더니 상관없다며 '노 프러블럼'이라 말한다.

"걱정 마세요. 나의 아버지가 식당 주인입니다. 그냥 앉아 있어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룸비니를 가려는데 출발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3시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올해 열여덟이라는 소년의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고 아버지는 잠을 자고 있다고 한다. 소년은 열여덟 나이답지 않게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다. 자신도 나처럼 수염을 길게 기를 거라며 내게 묻는다.

"당신의 수염을 만져 봐도 됩니까?"
'노 프러블럼!"

소년은 히죽거리며 내 수염을 쓰다듬더니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나도 소년의 수염을 만져본다. 올해 열여덟 살 치고는 제법 꺼칠꺼칠하다. 우리는 낄낄거리며 그 어떤 '수염 부족'의 인사법이라도 되는 양 서로의 수염을 만져가며 친구가 되었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는 소년의 손등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태권도를 통해 싸움 잘하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소년은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는 소년의 손등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태권도를 통해 싸움 잘하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소년은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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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도 없는 식당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기가 미안해 간판에 꼬치구이가 보이길래 저거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물소 고기란다. 나는 네팔 모한네 동네에서 네팔 전통술 창을 마시면서 물소를 씹었던 기억이 떠올라 손을 내저었다. 치아가 흔들릴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체력 보충을 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물소는 너무 질겨 먹기가 힘든 고기였다.

메뉴판에 찍혀 있는 닭을 시키려 했더니 닭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나는 만두 종류인 모모를 시켰다. 식당 안에서 소년의 아버지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온다. 그와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더니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한다. 소년과 머리를 맞대고 낄낄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다.

6시 40분, 식당 내부는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내부에 불을 밝힌 식당이 거의 없다. 그만큼 네팔 사람들은 절전에 대한 기본 개념이 서 있다. 불필요하게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다녀온 소년이 내 앞에 바싹 다가와 앉으며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니까. 자신은 지금 한국의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를 할 줄 압니까?"
"예전에 했었지요..."
"나는 태권도를 통해 강한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누구하고 싸워도 지지 않는 강한 사내가 되고 싶습니다."

저 나이 때 나 또한 그랬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모래주머니를 차고 동네 뒷산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와 날렵한 발차기는 물론이고 새끼줄을 칭칭 감아 놓은 나무에 대고 손마디 마디에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박히도록 정권을 단련했다. 누군가와 맞장을 떴을 때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주먹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소년에게 어렸을 때부터 8년에 걸쳐 태권도를 연마했고 한때는 사범도 했다고 했더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 말에 바싹 귀를 기울여가며 이것저것 요구한다. 요청에 따라 몇 가지 절제된 동작을 보여주고 소년의 아랫배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말했다.

"여기 아랫배를 단전이라고 합니다. 기운은 이 아랫배에서부터 나옵니다. 아랫배의 기운으로 힘을 발산해야 합니다. 그 힘은 당신의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하여 그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소년은 서툰 내 영어를 알아들었는지 그 큰 두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고개를 까닥인다. 소년은 내면의 힘이니 기운이니 보다는 기합 넣는 방법에 더 관심이 많았다. 소년은 목구멍으로 기합 소리를 내질러가며 몇 차례에 걸쳐 시범을 보여 달라고 했다.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소년의 요청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아랫배에서부터 나오는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주변에 있던 네팔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내 기합소리가 생각 외로 컸던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소년이 그들에게 네팔어로 뭐라고 하자 그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소년이 그들에게 내가 태권도 사범 출신이라는 말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서툰 영어로 일장연설을 했다.

"태권도를 비롯한 그 어떤 운동이든 싸움을 위해 배워서는 안 됩니다. 운동은 당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같은 감정을 조절하여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절대로 싸움을 위한 운동을 하지 마세요. 결국은 당신이 당하게 됩니다."

소년이 내 말 중간 중간을 끊어 재차 물어가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소년의 손에는 폭력의 흔적들이 보인다. 손 등에 깊은 상처가 보인다. 주먹으로 유리창 따위를 후려친 모양이다. 소년은 내 말뜻을 신중하게 받아들여가며 나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듯했다.

눈빛에 장난기가 자글자글한 소년은 참 영특하게 생겼다. 평생 식당에서 일하기에는 안타깝다. 공부를 하면 아주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왜 공부하지 않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대학 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식당을 물려받기를 바랍니다."
"공부하고 싶어요?"
"물론입니다. 난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요?"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랬었다, 소년의 손등에 난 상처며 강한 힘을 기르고 싶어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공부 하고 싶은 욕구가 아버지의 반대로 틀어지자 태권도와 싸움질로 그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의 상처는 폭력에 길들여져 온 내 청소년기의 상처이기도 했다.

소년은 내 청소년기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 또한 저만한 시기에 내면에 쌓인 불만을 싸움질로 풀어내려 했었다. 다만 소년과 달리 나는 학교에 가기 싫었고 공부하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툭하면 폭력을 일삼았던 선생들, 억압적인 학교가 싫었다. 학교는 자유가 없었다.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학교 그만 다닐 겁니다. 제발 그만두게 해주세요."
"공부 안 하면 뭘 할 건데."
"트럭 운전이라도 배워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싶어요."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안돼!"

아버지는 단호했고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가기 싫은 학교에 대한 불만을 싸움질로 분출했다. 툭하면 싸움질을 했다. 얼굴에 멍자국 가실 날이 드물었다. 누구든 시비를 걸어오면 싸움질을 했다. 오랫동안 태권도를 연마했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만약 태권도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싸울 때마다 얻어맞았다.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 보면 설령 내가 이기는 싸움이라도 얻어맞게 되어 있다.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쌈꾼이라도 얻어맞지 않고는 싸울 수 없다. 일대일로 이긴 싸움이라 할지라도 여러 명에게 보복을 당하곤 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여러 명에게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고 짓밟혔다.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각목 사례를 당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싸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쌈박질을 일삼기 때문에 싸움을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얻어맞게 되어 있다. 싸움을 못하는 사람은 싸움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늘 싸움판을 벌여 상처투성이가 되기 마련이다.

소년은 자신만 사진 찍히는 것이 미안한지 지칠대로 지쳐 있는 내 모습도 찍어줬다. 소년에게 손짓 발짓 동원해 폼나게 폭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지만 거지꼴로 다니며 걸인을 피해다닌 나는 여전히 폭력적이고도 이중적인 인간이었다.
 소년은 자신만 사진 찍히는 것이 미안한지 지칠대로 지쳐 있는 내 모습도 찍어줬다. 소년에게 손짓 발짓 동원해 폼나게 폭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지만 거지꼴로 다니며 걸인을 피해다닌 나는 여전히 폭력적이고도 이중적인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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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네팔 소년의 주먹에 난 상처를 보면서 한동안 잊혀져있던 내 안의 폭력성을 떠올렸다. 그 어떤 싸움이든 결국에 가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녀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태권도를 싸움을 위한 격투기로 연마한 덕분에 상대는 물론이고 내 자신에게도 많은 상처를 입혔어요. 절대로 폭력을 사용할 목적으로 태권도를 하지 마세요. 폭력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전쟁이 그렇듯이 폭력은 승자든 패자든 모두에게 고통을 남기게 됩니다."

소년이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수긍하는 눈빛을 보인다. 나는 소년이 내 엉터리 영어를 알아듣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비폭력은 그 어떤 폭력보다 강합니다. 폭력은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당할까봐 그 두려움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폭력 앞에서 비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두려움 없는 강한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은 여전히 폭력성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소년에게 서툰 영어와 함께 손짓 발짓으로 주절거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아까 그 걸인이 얼쩡거리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나는 걸인이 내 앞으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걸인은 제자리를 빙빙 돌면서 자꾸만 뒷주머니를 까뒤집고 있다.

나는 왜 저 걸인을 피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왜 귀중품이 들어있는 천 가방을 움켜쥐었던 것일까. 나에게 아무런 해코지도 않고 그냥 웃으며 다가왔던 그에게 다른 네팔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나마스테' 인사를 건네지 못한 것일까.

나는 여전히 이중적이었다. 저 걸인이 내게 뭔가의 피해를 주거나 난처한 상황을 만들 것이라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혐오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불평등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에게 비폭력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폭력적이었다.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 또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소년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간다. 소년이 돌아오면 작별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데 좀처럼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소년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배낭을 챙겨 식당을 빠져 나와 장거리 버스 여행을 대비해 화장실을 찾아갔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마스터!"

소년이었다. 나를 마스터라고 불렀다. 걸인을 피해 다니는 내게 마스터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그냥 '송'이라 기억하라 했다. 소년은 서운한 표정으로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군요'라고 짧게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다. 잊지 않을게. 그리고 아까 했던 말 잊지 마라. 절대로 싸우지 마라. 먼저 마음을 다스려라. 태권도를 싸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연마해라."

소년이 슬며시 웃으며 내가 한 말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한다. 나는 소년에게 '사부'라 부르지 말라 했지만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나는 어느새 소년의 사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두려움 없는 마음자리를 강조했던 나는 조금 전과는 달리 허리춤에 찬 전대를 확인하고 룸비니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전히 전대에 집착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그:#네팔, #버스터미널, #태권 소년, #폭력과 비폭력,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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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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