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나라. 우리나라를 설명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말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낮은 문맹률을 기록한 데는 한글의 우수성과 학령기 모든 국민을 공교육으로 끌어안은 잘 짜인 교육제도를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말 그럴까?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책을 잘 읽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6살 때 한글을 이미 터득했으니 국어 시간을 통해 책 읽기 연습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현실은 달랐다. 한글 문해와 관련한 교육 차시는 10차시 미만이었다. 한글을 모른 채로 학교에 오면 7시간 정도 만에 한글을 깨쳐야 한다는 말이 된다.

국어 교과서 내용도 어려웠다. 첫 단원부터 문해력이 필요한 제법 긴 지문이 나왔다. 1학년 국어 교육과정은 이미 모든 아이가 한글을 유창하게 읽고 이해한다는 걸 전제로 구성돼 있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창의력이 대세라며 1학년 수학문제에도 독해력이 필요한 문제가 나왔다. 읽기가 부진하면 수학이나 통합교과목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 우리 아이 학급에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아이는 없었다. 담임선생님도 모든 아이가 읽고 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수업을 했다. 똑같이 모든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시켰고, 1학년 권장독서라는 걸 뽑아 독후감을 쓰게 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 책 표지
 학교 속의 문맹자들 책 표지
ⓒ 교보문고

관련사진보기

독해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제공되는 일대일 프로그램 같은 건 없었다. 방과후 프로그램도 천편일률적이었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우리 아이는 1학년 겨울방학이 다 되도록 책을 잘 읽지 못했다. 아이가 책을 읽어도 이해를 못 한다는 점에서 까막눈이나 다름없는데도, 담임선생님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글을 아니까 문맹은 아닌 거고 그 이상의 문해력을 키우는 건 개인의 몫이라고 여기는 듯 했다. 큰 아이는 나와 함께 2년 동안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은 뒤에야 기능적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직장도 그만 두고, 재미있는 책을 찾아 함께 읽었던 엄마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매 년 한글날이 있는 10월이 되면 몇 년 전 내가 겪은 고생(?)이 떠올라 씁쓸하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우연히 이런 내 마음을 안 지인이 읽어 보라고 소개한 책이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우리교육, 2012)이다.

이 책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임한 공교육의 민낯을 고발한 책이다. 저자 엄훈은 강산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시절 학교 속의 문맹자인 창우를 발견하고 크게 충격을 받는다. 읽지만 읽지 못하는 창우라는 아이를 만난 놀라움도 잠시, 또 다른 창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의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실행 연구라는 새로운 길(저자의 말 참조)에 들어서게 된다. 이 책은 그가 수 년에 걸쳐 읽기 부진아들과 1:1 교육을 행한 실행 연구를 1차 결과물로 내놓은 책이다.

급속도로 낮아진 문맹률의 실상

이 책의 주인공인 읽기 부진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학교 속의 문맹자들이란 누구를 말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자.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문맹률은 1945년 78%에서 1958년 4.1%로 급감했다. 이러한 정보가 사실이라면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문맹을 퇴치한 나라다. 지금까지 우리는 별 의심 없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여 왔다.

우리나라 문맹률 추이
 우리나라 문맹률 추이
ⓒ keaffairs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한국교육개발원의 2002년도 연구 보고서인 <한국 성인의 비문해 실태 조사 연구>란 보고서를 보면 문맹률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19세 이상인 우리나라 전체 성인 인구의 24%는 생활하는 데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성인 인구의 8.4%는 완전 비문해자에 해당한단다.

4.1%에서 24.8%로. 40년 사이에 한국 문맹률이 오히려 올라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학교속의 문맹자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해력을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를 쫓아가야 한다(P.18)고 말한다.

문해력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이해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에서 전개해온 문맹 퇴치 신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료의 신빙성이다. 당시 문맹률 조사는 군 단위의 조사 결과를 집계하여 도에 보고하면 도에서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조사 과정에 대해 조사 주체인 문교부조차 의심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전국적인 문맹자 조사를 실시하여 왔는 바, 이 문맹자 조사의 정확 여부는 문맹 퇴치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간의 조사결과를 보면 그때그때 숫자가 변동하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혼란을 빚어냈다. 문맹자의 거주지 이동 및 사망 등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숫자가 중앙에 보고되어 당무자를 당황케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일선 종사자의 불성실과 기술적 결함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앞으로 이 점에 있어서는 철저한 반성과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P.19)

1950년대 문맹 퇴치 신화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을 문맹으로 보았는가' 정의와 관련된다.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읽고 쓰며 1에서 10까지 수를 읽고 쓸 수 있으면 문맹에서 벗어났다고 봤다. (P.20)


그러나 이러한 단순 문해는 진정한 의미에서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 책의 저자 엄훈의 주장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인 기능적 문해력 즉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읽기 및 쓰기 능력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이러한 단순 문해는 기능적으로는 문맹에 해당한다.

실제로 우리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쓸 뿐 만 아니라 한글을 모두 읽고, 대부분의 글자를 쓸 수 있었지만 책을 읽지 못해 학습을 따라가지 못했다. 읽기가 안 돼 학교 시험을 제대로 못보니 학습부진아가 됐다. 그런데도 1950년대식 문맹률 조사라면 우리 아이도 한글해득이 되는 사람으로 됐을 것이다. 이렇게 2002년에 조사된 <한국 성인의 비문해 실태 조사 연구> 결과는 문해력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얼마나 겪었는지 이해해야 납득이 되는 통계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우리 사회가 문맹 문제에 대해 지녀 온 편견 하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해독 수준의 문해력만 있으면 문맹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글자를 읽고 쓸 수는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글을 활용할 수 없는 이들을 문해자라고 할 수 없다. 문맹의 판별 기준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기능적 문해력에 두어야 한다. (P.28)


학교 속 문맹자들이란

그렇다면 학교 안에서는 기능적 문맹 문제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학교 안에서라면 일상적인 수업 장면을 새로운 기준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이 일상적인 수업에서 읽기나 쓰기를 통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면 그 학생은 학교 수업에서 기능적으로 문맹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P.29)


전문가들에 따르면 학생의 읽기 발달 지연 정도에 따라 정상적인 발달에 비해 1년 지연된 경우를 교정 읽기의 대상으로, 2년 이상 뒤처진 경우를 치료 읽기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이러한 구분법을 따르지 않아도 수업 장면에서 정상적인 읽기 수준보다 2년 이상 뒤처진 학생들은 그 수업 장면에서 읽기와 쓰기 활동을 통해 정상적으로 상호작용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의 기능적 문맹은 성인의 기능적 문맹과 다르게 정의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년 수준에서 읽기 능력이 2년 이상 뒤떨어지면 교실 수업에서 실질적으로 문맹자가 된다. (P.30)


이 책에 나오는 강산중학교 창우, 두리, 규태, 은주, 은철과 민수, 안골초등학교 정환, 미경, 다희, 남훈, 혜민, 민주, 인보, 의준, 원범, 주원, 강현, 태진, 건호, 영학, 지선, 병학 등 수많은 아이들이 기능적 문맹자들인 것이다. 우리는 학교는 읽고 쓰기를 배우는 곳이라는 관념 때문에 그곳에 읽기와 쓰기를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관념과 현실은 다르다.

문제 해결의 길, '읽기 부진 실행 연구 프로젝트'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읽지만 읽지 못하는 창우를 본 뒤 그는 충격을 받았다. 더 놀라운 점은 또 다른 창우가 많이 있었다는 것. 학교 속의 문맹자들을 돕기 위해 그는 강산중학교에서 하교 후 읽기 보충학습반을 운영했다. 재미있고 수준에 맞는 그림책을 활용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개별적이고 친밀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1:1 수업 방식을 택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창우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형성되어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1:1 읽기 지도를 받으면서 읽기 수준이 향상됐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고 말한다. 읽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거의 없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의 특성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보고되어 온 학생과 학생 사이의 또래 상호작용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보충 읽기반 운영을 통해 이러한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P.396)

그는 중학생인 창우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읽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의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외국의 질적 읽기 평가 방법을 조사하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익혀 나가기도 했다. 러닝 레코드, 비형식적 읽기 검사, 오단서 분석 등의 방법을 활용해 창우와 그의 친구들의 읽기 수준을 입증 가능한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P.397)


그러나 그가 청주교육대학교로 직장을 옮기면서 1:1 읽기 보충반의 실험은 끝나게 된다. 개인적인 결단으로 시작됐기에 개인의 상황 변화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렇다면 개인의 결단을 넘어서서 안정적인 프로그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협력과 연대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P398) 더구나 중학생이지만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었던 창우를 통해 읽기 프로그램의 조기지원 필요성을 깨닫고 있는 터였다.

그는 이러한 실험을 안골초등학교에서 한다. 청주교대로 발령을 받은 저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안골초등학교 방과 후 읽기 보충 학습반과 독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초등학생의 읽기 발달 과정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쌓은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학교 선생님들과의 파트너십까지 경험했다.

세 명의 안골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강 교수와 청주교대 대학생 튜터들과 함께 읽기 부진 실행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끌어가야 할 안골초등학교 선생님들 간의 파트너십이 단단하지 못했다. 이런 약점은 대학생 튜터들이 개인 사정으로 프로그램 지원을 못 하게 되자 금세 균열을 만든다.

결국 1년 만에 안골초등학교에서의 읽기 부진 실행 프로젝트는 종결된다. 초등학교 내에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놔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채 말이다.

저자가 세 번째로 택한 학교가 미송초등학교다. 미송초등학교는 청주교대 인근의 학교로서 교통의 편리성 때문에 튜터로 지원하는 청주교대 학생들이 많았다. 미송초등학교에서의 1:1 읽기 보충반 운영은 교통의 편리성과 안골초등학교 방과 후 읽기 보충학습반과 독서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면적인 소진을 겪은 엄 교수는 미송초등학교의 사례를 책이 출판될 때까지도 분석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읽기 부진프로그램에 대한 학교 내 교사들의 무관심에 대한 분노였다고 표현한다.

"정신없이 바쁜 현장 교사들의 모습에 나는 왜 공감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이 더 본질적인가에 대하여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반 아이를 가르치러 온 튜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냥 아이에게 1학년 4반으로 시간 맞춰서 가라고 지시만 하고는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사에 대하여 나는 속으로 분개했다. 바빠서라고? 물론 학예회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은 안 봐도 안다.

그런 전시 행정적인 일이 바빠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해 주고 그것을 관리하는 일에 무관심해진다면 그것이 진정 교사가 보일 태도인가? 나는 체험을 통해 안다. 교사들은 시간 외 근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모두들 5시 이전에 퇴근한다. 5시 이전에 퇴근하려니 방과 후 시간이 정신없이 바쁜 것이다. 그렇게 바쁜데 무슨 보충 지도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교육이라면 전시회 준비, 공문서 작성 등의 잡무를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업무인 교육을 먼저 챙겨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퇴근 시간이 좀 미뤄지면 가정이 파탄 나는가? 나라가 망하는가? 그래, 지난 학기에도 꼭 필요한 미팅을 하자는데 취미 활동 시간이 겹쳐서 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교사들, 퇴근 시간과 취미 활동 시간은 절대적으로 지키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적 지원은 하지 않는다."(P.413)


그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야 교사들의 무관심한 태도가 그들이 부도덕하거나 비교육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기 부진아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편견 때문일 수 있음을 성찰한다. 그리고 그의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읽기 지원 센터 연구자 모임, '달팽이의 친구들'

책이 있지만 읽을 수없는 마음
 책이 있지만 읽을 수없는 마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저자는 책을 통해 앞으로 뜻을 같이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읽기 문제 클리닉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실행 연구 조직인 '달팽이의 친구들'이라는 실행 연구 조직도 만들었다.

이 모임은 학교 현장으로부터 읽기 부진 학생 지원 신청을 받아 그 학생들의 읽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며 해결책을 찾아갈 거란다. 체계적인 평가 방법 개발, 학교 단위의 조기 지원 시스템 모델 구축, 읽기 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사업들도 추진한다.

그가 말하는 문제의 해결 원칙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아이로부터 출발하라는 것'
이와 아울러 △아이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학교 속의 문맹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교사를 양성하고 △ 조기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묻는다. 읽기가 안 되는 아이를 대하는 교사들 중에서 '읽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 그 아이들에게 맞는 독서 지도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한 실천을 가로막고 있는 학교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오늘도 교실의 어느 구석진 자리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들으며 말없이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읽기 부진아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 - 한국 공교육의 불편한 진실

엄훈 지음, 우리교육(2012)


태그:#학교속의문맹자들, #읽기부진, #문맹, #문맹률, #독해력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