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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번호로 썼습니다.

LG팬인 둘째, 팀이 이겨서 기쁘긴 한데...

둘째와 막내가 각기 응원하는 야구 팀 모자 그리고 류현진 책
▲ 두 팀 모자 둘째와 막내가 각기 응원하는 야구 팀 모자 그리고 류현진 책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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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 드디어 LG가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승리했다. 우리 집 2번은 LG 팬이다. 그래서 엄마인 나도 LG 팬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그런데도 LG의 승리가 기쁜 이유는 남자 중학생인 2번과 원만한 모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특히 이런 중요한 경기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낸다.

"어머~ 어제 LG 역전했네."
"응. 엄마 이제 플레이오프 진출이야!!"

스마트폰을 보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선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는다. 혼자 보기 아까운 백만 불짜리 미소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엄마에게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이건 좀 슬프지만 현실이다.

저런 미소를 보려면 맨입으로는 잘 안 되고 돈이 들어가야 한다. 옷을 사주든가, 용돈을 주거나. 물론 엄청 맛난 걸 해줘도 가능하지만 그건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아이가 좋아할 야구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와 사이도 돈독해지고 아이의 웃는 얼굴도 보고 엄청 좋다.

사실 LG의 우승이 엄청 기쁜 것처럼 반응하지만, 속마음은 복잡하다. 정규 시즌 4위를 한 LG가 기아와 와일드 카드 결정전을 시작할 때만해도 '설마 LG가 1위인 두산과 맞붙는 일이 생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LG가 기아와 넥센을 차례로 이기자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유는 우리 집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2번 말고도 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3번.

3번은 초등학생이고 남자다. 3번은 안타깝게도 LG 팬이 아니라 두산 팬이다. 두산은 이미 정규 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따 놓은 상태다. 플레이오프에서 LG가 NC를 이기면 LG와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된다.

한국시리즈 게임이 끝나고 나면 둘 중 한팀은 1위를 하고 한팀은 2위를 할 것이다. 7차전이 열리는 동안 우리 집은 형제 간 싸움의 장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 그나마 우리 집 1번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형제 간 전쟁 막으려고 한 아이에게 이적을 권유했지만....

아이들이 갖고 있는 야구용품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야구용품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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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미리 막으려고 나름 애를 썼다. 3번은 세 살 때부터 글러브를 잡고 형들에게 야구를 배웠다. 삼형제의 막내라 또래보다 야구를 일찍 접했다. 우리 집 3번이 본격적으로 야구의 세계에 입문하였던 것은 바야흐로 4년 전, 3번이 여섯 살 때이다.

유치원에서 마침 야구가 유행이었다. 그런데 야구놀이를 이끄는 대장 형이 바로 두산 팬이었던 것. 그래서 유치원의 모든 꼬맹이 동생들은 단체로 두산 팬에 가입이 되었다. 아무리 자기 형이 LG 팬이라고 해도 3번은 두산만 좋다고 했다.

유치원 야구를 함께 했던 형이 졸업을 했을 때 LG 팬으로 이적시키려고 내가 선물로 매수를 하였으나 친한 친구가 두산이라며 이적을 거부했다.

유치원 졸업을 할 때도 이적을 권했다. 하지만 2번은 "야, 넌 LG 팬하지 마. 필요없어"라고 했고 3번도 "나도 LG 팬 하기 싫거든" 하며 거부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3번은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야구를 시작했다. 형이 아끼던 글러브를 끼고 동네 친구들과 매일 야구를 한다.

친구들과 비만 안 오면 거의 매일 야구를 한다. 일기도 온통 야구했다는 이야기뿐이다. 장래희망도 당연히 투수가 되는 거다. 두산 모자를 쓰고 두산 유니폼도 입고 다닌다. 그뿐 아니라 친구가 송진 가루 샀으니 자기도 송진 가루 사 달라 난리를 부렸다. 그래서 송진가루 사 주었다.

야구장 갔을 때도 선수들 사인볼 받고 싶다며 선수들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성화를 부리기도 했다. 내년엔 두산 어린이 야구단에 가입하게 해 달라고 하고 동네 리틀 야구단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는 <who 류현진>이란 책을 읽고는 류현진 선수가 나온 창영초등학교로 전학을 보내 달라고 한다. 인천으로 전학이라니?

우리집 세째 장래희망은 투수,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두산 투수 니퍼트

막내가 3살 때 야구를 하던 모습
▲ 막내가 3살 때 야구를 하던 모습 막내가 3살 때 야구를 하던 모습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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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담임선생님과 면담이 있어서 학교를 방문했다.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3번이 그린 그림이 어디 있나 찾는데 우리 아이 이름이 쓰여 있는 그림을 찾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투수가 되고 싶다고 그린 그림을 보고는 이게 3번 그림이라고 찾아 주셨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우리 집 3번의 꿈이 투수인 것은 다 알고 있다.

자신의 장래희망인 투수가 되기 위해 매일 친구들과 훈련을 하고 있고 투수 되는 꿈을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두산의 투수 '니퍼트'다.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인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이 얼마나 기쁠까?

물론 2번의 야구 사랑도 만만치 않다. 2번도 초등학생 때는 매일 야구를 하고 매일 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쓰던 글러브가 너덜너덜해져서 소가죽 글러브를 사 준 적이 있다. 그 글러브를 끼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새 글러브를 길을 들여야 한다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2번이 초등학교 때 야구 가방 매고 야구 하러 다니는 모습.
 2번이 초등학교 때 야구 가방 매고 야구 하러 다니는 모습.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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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글러브 위에 두꺼운 책을 잔뜩 올려놓고 잠을 자고 주말에 외출할 때도 글러브와 공을 들고 다녔다. 식당 주차장에서도 틈틈이 캐치볼을 하면서 놀았다. 놀이터에 놀러 나갈 때면 LG 가방에 공과 글러브 방망이를 넣고 다녔다. 일기도 야구 하고 논 거랑 야구 시청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각기 다른 팀을 응원하며 한국시리즈를 같이 시청하게 될지도 모른다니. 경기 시청하다가 분위기가 살벌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평소 남자아이치고는 차분한 편인데 야구가 시작돼 중요한 시점이 되면 심각하게 싸운다. 

안 싸우고 경기가 끝나더라도 이긴 팀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 녀석은 자기 팀이 이겼다고 좋아할 게 뻔하다. 그럼 다른 녀석은 자기 팀은 져서 속이 상한데 형제가 이겼다고 펄쩍펄쩍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속이 뒤집힐까? 엄마인 나는 좋아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할 거다.

두산은 이미 진출했으니 어쩔 수 없고 LG가 NC에 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 있지만. 그건 절대 2번에겐 비밀이다. 각기 다른 팀을 응원하는 아들을 둔 엄마로서 두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딱 맞붙는 최악의 상황만은 진짜 피하고 싶다. 우리 집 평화를 위해서.

야구 좋아하는 아들을 둘이나 둔 엄마가


태그:#가을 야구, #프로야구, #두산, #엘지, #코리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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