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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최근 4년 헌법재판소 핵심 결정 100건 목록 및 선정 기준

국가 권력은 3권 분립이 원칙이다. 입법부(국회)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정부)는 법을 집행하며, 사법부(법원)는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이 셋이 내린 결정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무소불위'의 작지만 막강한 조직이 하나 있다. 바로 '제4부'라 불리는 헌법재판소다. 최상위의 법인 '헌법' 해석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가령 국회가 만든 법을, 정당 해산과 대통령 탄핵을, 국가 기관 간 권한 다툼을, 국민이 청구한 헌법 소원을 심판할 권력을 갖는다. 무엇이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고 부합하는지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리면 제도권에서는 그것이 곧 '정설'이 된다. 그야말로 서로 다른 이념들이 '헌법'이라는 이름의 무기를 들고 진검 승부를 겨뤄야 하는 궁극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마사 누스바움은 이 무기가 사람들의 경쟁심과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세력보다는 인류애를 지키고자 싸우는 사람의 편에 설 수 있음을 일찍이 간파한 정치철학자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누스바움의 책을 읽고 "헌법을 보수파의 레토릭인 양 무시하는 한국의 일부 진보파에게도 참고가 될 접근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관련 기사: 혐오는 시대착오다). 좋다. 그럼 '헌법'을 무기로 삼는 진보가 제도권에서 최종적으로 이길 승산은 얼마나 될까?

간통죄 선고 앞 둔 헌법재판관들 2015년 2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착석 간통죄 위헌법률심판 선고를 앞 두고 있다.
▲ 간통죄 선고 앞 둔 헌법재판관들 2015년 2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착석 간통죄 위헌법률심판 선고를 앞 두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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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을 확인하고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취임한 2013년 4월부터 2016년 9월 29일까지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내린 사건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모두 1816건의 사건이 확인됐는데 모든 사건이 똑같은 무게감을 주진 않으므로 헌법재판소 측은 이중 718건을 '주요 결정' 사례로 꼽는다. 선정 기준은 뭘까. 헌법재판소 측에 문의한 결과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현행 법령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위주로 선정한단다.

새삼 당혹스러웠다. 법의 영역도 결국 완벽한 가치 중립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팩트 중 무엇이 더 중요한 팩트인지 판단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과정에는 사람의 '가치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귀중한 국가 기록이자 최고 권력 기관에서 어떤 이념들이 충돌하는지 판세를 조망할 수 있는 창과 같다.

따라서 헌법재판소 측이 임의로 선정한 718건 중 옥석 100건을 다시 가려내 헌법재판관 9인의 성향을 들여다봤다. 물론 최소한의 선정 기준도 다시 마련했다. 그 결과 김영란법, 사법시험 폐지, 간통죄, 통합진보당 해산, 한일 청구권, 셧다운제, 아청법 등 (관련 자료: 최근 4년 헌법재판소 핵심 결정 100건 목록 및 선정 기준) '뜨거웠던' 이슈가 대거 포함됐다. 재판관들은 이 핵심 사건 100건에 대해 총 140건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수와 결정 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사건의 맥락에 따라 여러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예컨대 'A부분은 각하 B부분은 합헌 C부분은 위헌'하는 식으로). 이 140건의 결정을 분석해보면 아래 [그림2]와 같이 재판관들의 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지명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국회 지명 3인이 임관해 6년간 임기를 수행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지명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국회 지명 3인이 임관해 6년간 임기를 수행한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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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판관들 사이의 화살표가 굵을수록 의견 일치도가 높다. '김창종-조용호'조와 '안창호-이정미'조는 약 89.29%의 의견 일치도를 보여 가장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재판관 평균 의견 일치도 77.72%를 크게 웃돈다. 화살표의 색은 뭘까. 헌법재판관은 9명이므로 각각의 재판관은 나머지 8명과 관계를 맺는다.

한 재판관이 나머지 8명과 얼마나 의견 일치를 봤느냐에 따라 해당 재판관의 평균 의견 일치도가 달라진다. 가령 김이수 재판관은 70.85%고 박한철 재판관은 80.80%다. 김이수 재판관보다는 박한철 재판관이 다수 의견을 많이 따르면서 다른 재판관들보다 의견 일치를 자주 보기 때문이다. 이 평균 의견일치도보다 특정 재판관과의 의견 일치도가 높으면 화살표가 초록색, 평균보다 낮으면 빨간색이다. 그럼 노란색 일방통행(→) 화살표는?

한쪽 재판관만 평균보다 의견 일치도가 높다는 뜻이다. 가령 '김이수-이정미'조는 김이수 재판관 쪽에서만 평균보다 의견 일치도가 높다. 반면에 이정미 재판관 쪽에서는 그렇지 못 하다. 이정미 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보다 서기석, 안창호 재판관과 더 잘 맞기 때문이다. 화살표 색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 의견 일치도(화살표 굵기)만으로 알 수 없는 현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 재판은 기본적으로 가치관 싸움이지만 '머릿수 싸움'이기도 하다.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의견 일치를 볼 때 그것이 곧 '법정 의견'이 된다. 재판관들은 뭉칠수록 강하다. 초록색 화살표가 많을수록 재판에서 자기의 의견을 법정 의견으로 관철할 가능성이 높다. 분석 결과는 서기석 재판관 5개, 김창종·박한철·안창호·이정미 재판관 4개, 강일원 재판관 3개, 김이수·이진성·조용호 재판관 2개로 나타났다. 다수 의견 편에 가장 많이 서는 서기석 재판관의 영향력이 높고 반대 의견을 많이 내는 김이수 재판관은 영향력이 가장 낮았다.

[그림3] 헌법재판관 의견일치도 높은순/낮은순 9명의 헌법재판관은 36가지의 짝을 이룬다. 이중 호흡이 가장 잘 맞는순으로 12개, 가장 안 맞는 순으로 12개를 나타냈다. 나머지 12개는 중간 그룹이다. 참고로 전체 재판관의 평균 의견일치도는 약 77.72%다.
▲ [그림3] 헌법재판관 의견일치도 높은순/낮은순 9명의 헌법재판관은 36가지의 짝을 이룬다. 이중 호흡이 가장 잘 맞는순으로 12개, 가장 안 맞는 순으로 12개를 나타냈다. 나머지 12개는 중간 그룹이다. 참고로 전체 재판관의 평균 의견일치도는 약 77.72%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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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재판관은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지명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홀로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라 평가받는다. 결국 [그림2]는 김이수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에서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진성 재판관은 한때 언론이 보수로 예상했다.

이진성 재판관은 다수 의견을 따라갈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반대 의견을 많이 내며 자기 소신을 밝히고 있어 다소 의외다. 김이수 재판관과도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한편 조용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은 아니지만 보수적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강성이라 다수 의견 그룹 외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 [그림3]은 재판관들의 의견 일치도를 표로 정리한 것이다.

예상대로 김이수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은 가장 사이가 좋지 않다. 물론 인간의 가치관이란 생각보다 깊고 복잡하다. 김이수 재판관이라고 매번 진보적 의견만 내는 것도 조용호 재판관이라고 매번 보수적 의견만 내는 것도 아니다. 또한 같은 결정문도 보는 사람에 따라 김이수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조차 덜 진보적 혹은 덜 보수적이라 느낄 수 있다.

다만 재판관들의 의견 일치도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지명 주체의 성향대로 재판관들이 그룹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다. 이점은 분명 참고할 만하다. 아래 [그림4]는 서로 평균보다 의견 일치도가 높은 재판관들끼리 다섯 그룹으로 나눠 묶은 것이다. 이진성 재판관이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과 한 그룹을 이룬 것은 흥미로운 변수다. 후속 기사에서 헌재 결정문의 이진성 재판관 의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호기심이 동한다.

하지만 이정미 재판관이 '비교적' 보수 그룹과 함께 하는 건 놀랍지 않다. 이정미 재판관을 지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반기문이 참여정부 성향과 어울리는 외교부장관은 아니었듯 이 전 대법원장도 삼성 에버랜드, 기업은행 사건을 수임하는 등 친 기업적 성향도 있다. 지명자 성향과 재판관 성향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실제로 이정미 재판관은 김이수 재판관과도 가끔 함께 반대 의견을 낸다) 납득 못할 결과도 아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비교적 중도 그룹과 비교적 보수 그룹 양쪽 모두에 속하되 김창종 재판관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비교적 중도 그룹과 비교적 보수 그룹 양쪽 모두에 속하되 김창종 재판관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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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진보의 평균적인 스코어는 3:6이다. '비교적' 진보 그룹에 강일원 재판관까지 넓게 포함해도 그렇다. 이 만성적인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는 최소 7년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대통령 임기보다도 긴 6년이다. 우선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3월에 임관했고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난다. 공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스코어의 변동은 없을 것이다.

다음은 2018년 9월 임기가 끝나는 강일원, 안창호, 김이수, 김창종, 이진성 재판관의 공석이다. 이 자리는 여야 합의,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할 차기 대법원장이 채운다. 이진성 재판관과 같은 변수가 또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따라서 스코어는 2:7로 낮아질 것이다. 다음은 2019년 4월에 임기가 끝나는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자리다. 이 자리는 차기 대통령이 지명한다. 물론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사 '진보' 대권 후보가 당선돼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의 공석을 진보 재판관으로 채우는데 성공해도 스코어는 여전히 4:5다. 변수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다. 박 소장은 2011년 3월 재판관으로 임관했지만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내년 3월에 재판관 잔여 임기가 끝나는지 헌법재판소장으로서 6년의 임기를 다시 시작한 걸로 간주해 2019년 4월까지 채워야 하는지 국회에서 논란이 있다.

만약 내년에 임기가 끝나면 박 대통령이 차기 재판관을 지명하고 2023년에 차기 대통령이 차차기 재판관을 지명한다. 7년 뒤의 일이다. 진보가 박 소장의 공석을 잡으면 그제야 5:4로 우위를 점한다. 물론 이조차 확실한 우위는 아니다. 의결은 6:3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결국 진보가 제도권에서 '헌법'을 무기로 승리할 가능성은 암울하다.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선출된 권력보다 장기 집권하고 '대권'을 장악한 정파가 이 권력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아예 이 길을 포기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현실을 보는 눈은 바로 떠야 한다. 당장 진보는 진보적인 헌법 제도를 확립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차라리 평범한 사람들이 헌법에 대한 상상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변화의 토대를 다져두는 건 어떨까. 가령 엘리트주의 대신 대중이 헌법적 가치를 고민할 수 있는 상향평준화 교육 정책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헌법은 단순한 기계적인 팩트가 아닌 인류애적 '가치'를 다루는 영역이다. 따라서 정치철학과 윤리학의 문제와 맞닿는다. 상식을 배우는 중고등학교에 철학 교사가 꼭 필요하고 헌법적 가치를 토론하고 논증하는 훈련의 기회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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