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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 2권 <시집가고 장가가고> 책표지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 2권 <시집가고 장가가고> 책표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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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4일 오전 8시 18분]

내가 소속되어 있는 '역사도서 연구회'에서는 매달 주제도서 한 권과 신간 한 권을 읽는다. 2016년 주제도서는 서울대 송기호 교수의 '우리역사읽기' 시리즈 6권이다. 이 중 2번째 <시집가고 장가가고>를 읽으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다. 이 책의 '끼니와 상물림' 부분에 있는 '퇴선'에 대한 설명이다. '퇴선'은 물린 수라상을 의미 한다.

창덕궁에 있는 왕비님 처소인 대조전 남쪽 행각에는 퇴선간이 있다. 퇴선간은 지밀에 부속되어 있는 중간 부엌으로 수랏간에서 운반해온 음식을 다시 데워서 수라상에 올리거나, 간단한 설거지를 하거나, 수라상 물림을 담당하던 곳이다. 또한 임금님이 물린 수라상을 받아서 궁녀들이 나누어 먹거나, 총애하는 신하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퇴선'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인용된, 유희춘의 <미암일기>에는 "왕이 술을 내려 주시고 퇴선도 주셨다. 미시(오후1시~3시)에 일을 끝내고 물러났다. 또 경연청에서 부수라를 하사받아 여러 신하들이 먹고 파했다"라 적고 있다. 부수라는 수라에 딸려 나오는 두 번째 수라이다. 우리나라에 아랫사람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다. 영조실록에는 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임금이 수라상을 밀어 이광좌에게 주니 그는 동료 신하들과 나누어 먹기를 청했다. 임금이 "경이 먼저 먹고 난 다음에 우의정에게 주고 또 나머지를 싸서 좌의정에게 전해주라. 경들이 이 밥을 먹으면 어찌 차마 잊겠는가? 그릇을 자손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리하여 오늘 음식을 하사하고 그릇을 나눈 일을 알게 하여 대대로 내 자손을 보필하게 하라"고 일렀다."(영조실록 13년 8월 14일)

이 기록을 보면 영조가 음식과 그릇을 신하에게 나누어주며 대대로 후손들을 잘 보필하라 부탁하고 있다. 음식을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상물림 문화는 있었다. 상물림은 네이버 사전에 '윗사람이 물린 밥상을 아랫사람이 다시 받아서 먹던 것을 이르는 말'이라 정의되어 있다. 내가 어릴 적엔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손님의 상에는 좋은 반찬이 하나, 둘 더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윗사람의 식사가 끝나면 남은 맛난 반찬을 먹으려 어서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맛난 걸 다 드시고 남는 음식이 없을까 초조해 하면서 말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남은 것으로 식사를 하고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배려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남겨 주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주인과 종이 같은 그릇을 사용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병조에서 '모든 관리가 대궐 안에서 밥을 먹고는 남은 밥을 종에게 주는데, 이 때문에 그릇을 잃게 되고 주인과 종이 같은 그릇에 먹는 것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지금부터 종들은 각각 자기 그릇을 가져와서 남은 밥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고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4년 1월 18일)

종은 주인이 물린 상의 밥을 먹기 위해서는 자신의 그릇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신분의 차별이 존재하던 조선시대엔 어쩌면 당연한 조치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의 상물림과 같은 풍습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있다. 사우디의 전통음식은 '만디'와 '캅사'이다.

만디는 땅에 큰 구덩이를 파고 스팀으로 쌀과 양고기를 익히는 음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밥 위에 양고기가 올라가면 양고기 만디, 물고기가 올라가면 생선 만디, 닭고기가 올라가면 닭고기 만디이다. 밥은 핫소스에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다.

사우디에 살 때 만디가 먹고 싶으면 식당에 반드시 예약을 해야 했다. 만디는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야 제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예약하지 않고 식당을 찾으면 요리가 될 때까지 한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기에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은 반드시 예약을 하고 식당을 찾곤 하였다.

만디가 요리시간이 긴 반면 캅사는 요리시간이 짧다. 캅사는 쌀을 기름에 볶은 후, 물을 부어 쌀을 익힌다. 이 밥 위에 바비큐로 구운 육류를 올린다. 밥 위에 육류를 올려놓기에 외형상으로는 만디나 캅사는 구분이 안 된다.

만디와 캅사는 손님접대를 위한 잔치음식이다. 예전에는 주로 양 만디를 많이 만들었는데 유목민들은 데리고 이동하기 쉬운 양을 키웠지 닭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님상의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손님 수에 비해 아주 많은 양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이렇게 넘치도록 준비하는 것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고, 자신의 부와 강함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우디의 원주민은 베두윈이라는 유목민이다. 이들은 사막을 가족단위로 움직이기에 안전을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 강함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과장되게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얕잡아 보이면 바로 공격을 당하여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막에서는 죽임을 당해도 범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목민이기에 텐트를 걷고 어딘가로 이동해 버리면 누가 그랬는지 밝혀낼 방법이 없다. 그 너른 사막을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사우디에서는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서 3, 4가족이 같이 움직인다. 혹시라도 사막에서 차가 고장이 나면 차를 버리고 다른 차에 동승해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차가 없어 사막에 고립되어 있다가 발생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이다. 요즘도 사막에서의 안전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커다란 쟁반에 아주 많은 양의 고기와 밥을 담아서 내어 오는데 남자들이 먼저 손으로 식사를 한다. 사우디는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 오른손은 식사용, 왼손은 화장실용이다. 음식은 항상 오른손만을 사용하여 먹는다. 혹시 고기가 너무 커서 나누어야 할 경우라면 두 사람이 오른손만을 사용해 자른다. 음료수를 마실 때에도 오른 손만 사용해야 한다. 커피 잔도 왼손으로 받으면 안 된다. 왼손은 불결하다고 생각하기에 왼손으로 받으면 예의에 어긋난다.

음식은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 나오기 때문에 남자들은 자기 앞부분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 여기저기 손을 대 놓으면 나중에 먹는 부녀자들에게 실례이다. 혹시 다 먹을 수 있어도 남기는 게 예의이다. 다 먹어버리면 부녀자들은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들 식사가 끝나면 그 쟁반은 그대로 여자들 방으로 보낸다. 사우디는 남녀칠세부동석을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여서 집집마다 남자 거실과 여자 거실이 따로 있다. 어린 아이를 제외하곤 외간남자가 있을 때에 남자거실에 여자가 들어가는 일은 없다. 심지어는 식당도 남자들이 식사하는 곳과 가족들이 식사하는 곳이 따로 있다. 성인여성은 절대로 외간남자와 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

남자 거실에서 들어온 음식 쟁반을 받아 여자들도 둘러 앉아 손으로 식사를 한다. 여자들의 식사가 끝나면 하인들에게 그 쟁반이 옮겨져 하인들이 식사를 한다. 하인들 식사가 끝나고도 남은 음식은 "하디스"라 불리는 문지기 차지가 된다. 참고로 사우디의 노예제도는 1960년대에 없어졌다.

사우디에서는 같이 식사를 하는 사람은 친구보다는 가족에 더 가깝다.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배신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합의이다. 음식을 공유함으로 서로의 결속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다.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유목민에게 이웃과 결속을 단단히 하는 것은 어쩌면 생존이 걸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동쪽과 서쪽 끝에 있는 서로 다른 두 나라에 음식의 공유로 유대감을 강화하는 같은 문화가 있다는 게 흥미롭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 가족과 의식주, 개정증보판

송기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015)


태그:#상물림, #퇴선, #문화비교, #사우디 전통음식 , #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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