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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백남기 분향소  독일인이 베를린에 설치된 백남기 분향소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 베를린의 백남기 분향소 독일인이 베를린에 설치된 백남기 분향소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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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8일 오전 11시 18분]

"여기까지 나와서 왜 이런걸 합니까?"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한분이 짜증 섞인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10월 15일, 가을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날임에도, 베를린의 대표적 상징물인 브란덴부르거 토어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바글거립니다. 그 뒤편에 누가 봐도 한눈에 띄는 고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한국인 관광객이 짜증을 낸 이유입니다.

나는 다시 되묻고 싶어졌습니다.

"여기까지 나와서 왜 이런 걸 하게 만드는 겁니까?"

한국 정부 덕에 독일어가 늘었다

맞습니다. 저는 이른바 헬조선을 탈출한 탈조선인입니다. 한국을 떠나면서 앞으로는 한국 뉴스나 신문 따위는 안 보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정확히 2014년 4월 16일 이후로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한국뉴스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소위 '탈조선'을 한 후 저는 외국어울렁증이 있음에도 독일어실력이 조금 늘었습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쉽게 독일 TV에서 세월호 참사부터 백남기 농민에 대한 뉴스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살면서 한국문제에 더 이상 관심 갖고 싶지 않았는데, 독일 TV에서 조차 한국이야기를 하니 별 수 있나요.

덕분에 나는 내가 외우지 못한 수천수만가지의 아름다운 독일어 중에, 

참사
죽음
희생자
유가족
진상규명
공권력

같은 독일어 명사들은 단어장에 적지 않아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일부러 뉴스를 안 보려고 노력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내가 찾아보질 않아도 주변 독일친구들이 한국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너무나도 친절하게 질문공세를 하더군요.

대답할 수 없었던 독일인의 질문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외국관광객들이 백남기농민에 대한 인쇄물을 보며 질문하는 모습
▲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외국관광객들이 백남기농민에 대한 인쇄물을 보며 질문하는 모습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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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수만 Km 떨어진 베를린에 세워진 백남기 농민의 영정사진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동시에 한 독일인이 다가와 묻더군요.

"한국의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시게 된 것은 매우 슬픈 일이군요. 그런데 '세월'은 무엇인가요? 세월도 사람 이름인가요?"

이 독일인은 백남기 농민 분향소 주변에 '리멤버 세월'이라고 영문으로 쓴 노란 우산과 노란 종이배를 보고 '세월'이 사람 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한 모양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곧바로 물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순간 저는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한국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바리케이드 너머에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독일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장소인 3월 18일 광장에 백남기 분향소가 설치된 모습
▲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독일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장소인 3월 18일 광장에 백남기 분향소가 설치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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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이번에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가 설치된 곳은 독일 민중투쟁의 기념비적인 장소인 3.18광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68년 전인 1848년 3월 18일, 독일의 하찮은 농민, 노동자, 학생들이 인간대접도 못 받으며 탄압을 받았던 시절, 바로 이곳에서 민중시위대와 독일 군대가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유혈 시가전을 치렀습니다. 결국 독일 군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25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희생됐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이름 모를 시민들이었습니다.

문득 '3월 18일 광장'이라고 쓰인 독일어 안내판을 보니 한국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던 종로의 아스팔트 거리가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자그마치 무려 168년 전에 이곳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된 후, 독일 국왕은 독일군에 철수명령을 내리고 사망자에 애도를 표한 뒤 제헌의회를 구성은 물론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보장했다지요. 2016년의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결말입니다.

그 이후로 일명 '바리케이트 투쟁'은 독일뿐만이 아니라 유럽사회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민중들의 저항이었습니다.

하찮은 사람들의 저항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사진을 들고 있는 교민
▲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사진을 들고 있는 교민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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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백남기 농민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집회가 끝난 후, 이날 참석했던 한 한국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냥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가만히 있는 스스로가 싫어서 그래서 오늘 나온 거예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저 역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 밀란 쿤데라 책 <무의미의 축제>에서 읽은 문장들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중략) 여기, 이 공원에서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한국의 많은 시민들이 앞으로 240시간동안(10월 16일부터 부검영장 집행 시한 만료인 26일 0시까지)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강제 집행을 막기 위해 서울대 장례식장을 지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렇게 하찮은 사람들의 저항은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지금, 저 역시 낮은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전하고자합니다.

"지치지 말아요. 우리도 여기에서 싸우고 있어요."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한 국화꽃을 들고 있는 모습
▲ 베를린 백남기 분향소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한 국화꽃을 들고 있는 모습
ⓒ Tsukasa Yaj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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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독일해외통신원. 한국에서 공공미술가로 활동하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서 대안적이고 확장된 공공미술의 모습을 모색하며 공부하고 있다. 주요관심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 공동체안에서의 커뮤니티적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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