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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온 그 어느 누구도 증오를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모두가 입 모아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일어나리라. 그러나 우린 그때까지 우리의 삶을 즐기리라." 파리 사람들의 머릿속을 관통한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 <당신에게, 파리> 중

2015년 11월 13일 일어난 2차 파리 테러. 전세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 '프레이 포 파리(pray for paris)'로 뒤덮일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는데도 '2016년 2월 86%의 파리지앵들은 테러 전과 테러 후의 삶에 아무런 태도의 변화도 없었다고 답했'단다. 뿐인가.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헤밍웨이의 파리 기행문 <파리는 날마다 축제>였다.

목수정
 목수정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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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12년째 프랑스에 거주, 글을 쓰며 살아가는 목수정 작가는 '기도 대신 파리라는 축제를 계속 즐기는 것, 그것이 파리를 사랑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말했다. 19개의 국적을 가진 130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테러의 한복판에서 '사랑'이라니, 지나치게 낭만적인 거 아닌가. 목 작가의 책 <당신에게, 파리>를 보며 든 이 같은 의문은 그의 또다른 신간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을 읽으면서 조금씩 풀렸다.

"고맙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최다 조회를 기록했던 <리베라시옹> 기자 뤽 르 바이양이 쓴 글의 일부다. 목 작가는 '감히 하기 힘들었을, 그러나 많은 파리지앵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며 다음 글의 전문을 인용해 실었다.

시네아스트 조안 스파르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더 이상의 종교는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믿고 포옹을 믿으며 삶을 믿고 샴페인과 기쁨을 믿습니다". 그러니 자,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하기보다 근본주의자들을 향해 잔을 듭시다. 어둠을 지향하는 자들을 향해 우린 축제의 폭죽을 터뜨립시다."

테러 이후 슬픔과 비통에 잠겨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건 대단한 착각임이 분명했다. 대체 프랑스인의 이런 행동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목 작가의 눈으로 본 두 도시(서울과 파리) 이야기 <당신에게, 파리>(꿈의지도)와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생각정원)에는 그에 대한 힌트가 담겨있다. 비슷한 시기에 두 권의 책을 낸 목 작가를 지난 14일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것

작가 목수정의 두 도시 이야기 <당신에게, 파리>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작가 목수정의 두 도시 이야기 <당신에게, 파리>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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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당신에게, 파리>는 목 작가가 12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 보고, 듣고, 가 보고, 맛본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다. 

가령 이런 것. 손님에게 좀처럼 친절한 법이 없는 파리에서 "무엇이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직원들이 있는 현대판 보물창고 '메르씨', 단 한 잔의 황홀한 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하는 와인 바 '윌리스', 폐쇄되었던 시장이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되살아난 '붉은 아이들의 시장', "여긴 죽는 순간까지 예뻐야 하는 거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죽인 이들의 마을 '페르 라셰즈', 루브르 박물관 안마당을 돌진하는 버스 69번을 타고 여행하는 방법 등등이 담겼다.

한눈에 봐도 첫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이후 <월경 독서> <파리의 생활 좌파> 등 그동안 쓴 책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다.

"출판사 꿈의 지도가 이런 책을 내자면서 그동안 만든 책을 보내왔다. 그 책에서 받은 느낌이 좋았다. 각각의 책들이 저자에 따라 색깔이 다르더라. 자기네 틀에 저자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주어진 테마 즉, 도시에 작가의 색깔을 다 입히게 해주는구나 생각했다. 파리에서 산 지 12년인데, 내 속에 남은 파리의 공간들은 뭔지 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정리를 이 책이 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책 작업을) 하면 나한테도 좋겠는 걸, 그런 생각으로 응했다."

목 작가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동숭아트센터와 한국관광공사에서 기획 일을 하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때는 1997년 IMF 직후, 대학로 전체에 걸리는 공연보다 취소되는 공연이 더 많던 시절이었다.

"이런 폐허 속에서 문화는 우리 인간에서 무엇인가 생각했다. 우리 문화란 그저 심심할 때 여흥을 즐기는 도구였던가, 그렇지 않게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걸 찾으려고 유학을 떠났다. 학생으로서 4년 반을 살다 다시 귀국해서 민주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했는데... 당이 분화되고 진보신당으로 옮겼지만, 당이 쪼그라들어서 '정책연구원'이란 직함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됐다."

목 작가는 다시 프랑스로 갔다. 프랑스 남편과 당시 세 살 난 딸 칼리와 함께. 남편은 고향을 그리워했고,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며 글은 프랑스에서도 쓸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홀로 유학 때와는 또 다른 프랑스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그가 기록한 삶 곳곳에서 내 눈에 띈 건 '가치'였다. 우리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중요하게 여기는 '국영수'가 아닌, 삶의 가치. 프랑스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이 가치가 어릴 적부터 어떻게 학습되는지 궁금했다. 그만큼 부러웠다는 말이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빨리"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부드럽게 하라고 말한다. 모든 프랑스 아이들은 이 두스망(doucement)이라는 말을 수천 번 들으며 자란다', '프랑스 아이들은 복종하는 당신이 우매한 독재권력을 키운다는 진실을 배운다', '자유, 평등, 박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부르짖은 세 가지 이념은 프랑스의 모든 학교, 공공기관 입구에 새겨져 있다' 이런 대목은 <당신에게, 파리>와 신간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프랑스는 승리의 경험 즉 '혁명'을 이뤘다. 그러나 혁명을 하자마자 왕의 목을 친 건 아니었다. 왕의 목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왕권신수설'은 하나의 경전처럼 그들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오랜 논의 끝에 왕의 목을 쳤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왕권신수설'은 구라였던 거다. 그 순간, 그 후로 많은 금기가 타파됐다.

우리에겐 그런 가치가 없을까. 목 작가는 단호했다. "없다"고.

"프랑스는 온 국민의 슬로건이 있다. 자유, 평등, 박애. 여기 저기 다 써 있다. 우리는? 없다. 우리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 가치로 크게 일어난 게 동학혁명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게 성공했다면 우리에게도 어떤 가치가 오래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혁명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후 그 힘을 장악해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체계를 갖고 있었던 동학농민운동은 충분히 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일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좌절감을 맛봤고 지금의 너무나 많은 자발적 복종의 태도를 낳은 것 같다. 지금 전국 어디나 공장에서 갓 뽑은 듯한 초록색 새마을 깃발이 펄럭인다. 그걸 박근혜가 지시하진 않았을 거다. 잘 보이고 싶었겠지.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자발적 복종인 거다. 어떻게 하면 잘 보여서 콩고물을 더 얻어 먹을 수 있을까. 이게 모든 삶의 방편이 된 것이다."

'가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목 작가는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에 썼다. '돈 몇 푼 축적하기 위해 산천을 온통 파헤쳐 놓는 사람들, 추한 가문의 위장된 영광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사람들, 권력과 자본을 위한 종 노릇에 앞장서는 기레기들, 부패한 검사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저버리고 오히려 유족들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새누리당과 그 주변 사람들, 이들은 바로 영혼을 상실한 부류'라고. 거듭 물었다. 우리는 왜 이런 거냐고. 프랑스는 왜 그런 거냐고.

"우리의 어른들은 그렇지 않은(자발적 복종이 아닌) 삶의 방편을 알지 못한다. 독립운동을 했는데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존경이라도 받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 처세의 방법이 납작 엎드리는 것이다. 군인이었던 드골은 해방 후 나치 부역자들을 다 처단했다. 특히 기자들부터. 씨를 말렸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점령을 당하더라도 부역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그런데 이 드골 정부를 뒤엎은 게 바로 '68혁명'이다. '당신의 가부장적인 국가 주도의 경제 시스템을 거부한다, 기본적인 민주주의만을 허락하고, 개인적인 민주주의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구시대다'를 외치며 프랑스 국민들이 일어난 거다.

68혁명은 한 달간 일어나고 진압했지만 드골 내각은 실각했다. 해방 이후 국가적 영웅인 드골을, 공항 이름을 샤를 드골을 허락해줄 만큼 국가적 영웅이었지만, 또 다른 혁명으로 실각했다. 프랑스는 이런 나라다. 또 다른 혁명의 기운으로 프랑스를 계속 새로 업그레이드 하는. 아마 (프랑스를 업그레이드 시킬) 그런 게 또 올거다. 그렇게 저항하는 힘으로 세상이 바뀌는 걸 계속 봐 왔는데, 왜 저항하지 않겠나."

프랑스에 '집회시위'가 유독 많이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목 작가가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에 '이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가운데 그 무엇 하나 사람들이 피 흘리고 싸워서 얻어내지 않은 것이 없다'고 쓴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다.

"경찰도, 판사도 파업을 한다. 근무 조건이 나쁘다는 이유로도 파업을 하지만, 때로는 '시민들이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 이런 이유로도 파업한다. 파리 시민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자라기 때문에 커서도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다. 파리 시민들이 불친절하다는 말도 하는데, 그들에겐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너와 나는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하니까.

관광객이든 아니든 하대하면 바로 기분 나빠 한다. 물을 갖다주면 '메르시'라고 인사해야 하는 이유다(목 작가는 책 <당신에게, 파리>에서 '두 배 행복한 여행을 보장하는 세 개의 단어'로 봉쥬르('어딘가에 들어가거든 먼저'), 메르씨('종업원에게 난 당신을 대등하고 예의 있게 대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러 번 해도 상관없다)', 실 부 쁠레('주문할 때는 반드시, 이 말을 붙임으로써 내가 그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 된다')를 꼽았다, 꼭 기억하자 - 기자말)."

목 작가의 글에 파리 예찬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말대로 '권력을 쥔 자들은 항상 이상한 짓을 하기 마련이니까' 파리도 예외는 아닐 터. '연 5주 유급휴가를 35년 전에 쟁취하고 휴식에 포커스를 맞추어 살아갈 수 있었던' 파리 시민들도 폭탄급 '노동법 개악'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기존의 35시간 근무 원칙을 없애는, 기업인 입장에서는 '해고는 쉽게 노동시간을 길게', 노동자 입장에서는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법안이 2016년 6월 통과된 것이다.

"프랑스 테러가 일어난 이후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잘 말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불평등'이었다. 이를테면 2015년 가을 에어 프랑스가 2900명을 대량해고하기로 결정했을 때다. 그때 회의에 참석한 두 임원이 와이셔츠가 찢어진 채로 담을 넘어 도망가는 장면이 한 방송사 화면에 포착됐다. 일부 언론은 노조를 공격할 수 있는 빌미로 삼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좌파전선의 공동대표 장뤼크 멩랑숑은 말했다. '폭력적인 사태가 아니다. 이게 뭐가 폭력적이냐? 누가 죽었나? 다쳤나? 옷이 찢어졌을 뿐이다. 반면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가족 자체가 무너진다. 난 그 노동자들이 너무 잘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이 문제를 드디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 언론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노선에 아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그 사람들의 부를 극대화 시켜주는 길로 가고 있다. 이번 노동법을 개악이라고 하는 것은 '긴 노동시간, 쉬운 해고, 노동조합 파괴'를 담고 있어서다. 기업이 좋아할 것만 다 넣고 있다. 테러가 일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외 계층이 점점 많아지고 점점 더 그 사람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펴서다."

목 작가는 최근 연달아 일어난 프랑스 테러 역시 '불평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정부 스스로 조장한 사회적 불평등과 그리하여 거리 곳곳에 번져가는 비참함이 바로 테러의 직접적인 배후'라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캬프'라는 주택보조금 지원 기관이 있다. 그 줄이 너무 길고 하루에 몇 번씩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더라. 프랑스 정부가 지원 요건을 강화해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버티고 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다. 이민자들 상당수가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알제리, 튀니지 사람들, 과거 프랑스 식민지를 겪었던 지역의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불안한 이런 계층에게 필요한 이런저런 복지 수단을 없애고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그들의 분노를 사고, 결국 갈 곳 없는 이들이 IS같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위 현장에서 부르카 쓴 사람들은 없었는데 지금은 더러 나온다.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거다.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걸 아는 거지. 문제를 직시한다면, 정말 테러를 정말 막고 싶다면 소외계층이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뒷받침해줘야 한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교육부가 소외계층에게 지원해주던 예산이 있었다. 교사당 학생 수를 줄이고, 소외 지역은 더 잘 케어할 수 있게 하며 성적이 뒤처지는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교사들을 배치하는 데 쓰는 돈이다. 정부가 예산을 줄여 그 대상 학교를 줄였다. 해당 학교(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가 한 달 동안 파업을 했다. 그런데 인근 초등학교와 유치원도 같이 파업했다. 그게 이 나라의 연대다. 당장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곧 닥칠 일이라는 거다. 성공하든 못하든 연대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우는 거다. 파업을 해도 세상 안 무너져, 이런 걸 아는 거다."

대한민국 서울에 없는 것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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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작가가 2년여 동안 한 달에 두 번 꼴로 써나간 <당신에게, 파리>와 달리 신간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은 지난 3년간 그가 블로그와 언론, 카페 등에 기록한 글을 모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과 때를 같이 한다.

목 작가는 '머리와 심장 사이로 피가 들끓고, 솟구치고, 역류하던, 잠들 수 없던 그 밤들이 시작된 건 2012년 12월의 대선이었다'고 고백한다. '진실을 찾고 싶은 마음에 세상과 미친 듯 소통한' 그 시간. 목 작가는 글이 아닌 행동으로도 자신의 '화기 어린' 마음을 토해냈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목 작가는 텔레그램의 여러 단톡방을 보여주며 말했다.  

"집회를 너무 많이 했다. 하기 싫은데...(웃음) '박근혜 부정선거'라는 초유의 사태로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이 네트워크에 전세계 30여 개국 동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게 세월호 때 확대됐다. 이후로도 국정원 문제, 교과서, 위안부 문제, 총선 등등 외국에 있는 동포들이 계속 네트워크해서 싸울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많은 걸 제공해줬다(웃음). 이들은 박근혜 정권 이전에는 없던 네트워크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3·1운동하는 느낌? 독립운동하는 느낌이랄까.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 동포들이 돈 모으고, 쌀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고 오직 그 목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나. 운동권에 전혀 굳은 살이 없던 분들이 아주 화력 좋은 전투력을 발산하면서 이런 네트워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들의 이러저러한 활동들이 해외 동포들의 정치 의식을 바꿔놓았다고 본다. 선거 결과를 보면 그런 걸 조금씩 알 수 있다."

목 작가를 인터뷰한 날은 <한국일보>가 12일 보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으로 논란이 계속 되던 때였다. 이 블랙리스트 인사들은 지난해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한 문화인과 2014년 6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또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그리고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사람들 등으로 총 만여 명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예상 외로 목 작가는 없었다.

"딱히 문학 작가가 아니라 그런가? 나는 없는 것 같더라(웃음).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너무나 반이성적이라 싸울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순실과 싸울 맛이 나나? 너털웃음만 난다. 프랑스라는 나라의 매력 가운데 가장 큰 건 '사상의 다양성'이라고 본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읽는 책이 스탕달, 19세기 문학도 있고...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읽는 게 정말 제각각이다. 한국은 어떤가. 책을 읽는 사람들도 별로 없지만, 어제 본 건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었다. 베스트셀러 아닌가. 뜬금없는 옛날책, 이런 거 읽는 사람 별로 없다. 프랑스는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개의 취향이 있는 것 같은, 그걸 허락해주는 나라다."

목 작가가 프랑스에서 12년이 넘도록 살 수 있었던 '매력'도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전세계에서 통계가 시작된 이래 프랑스는 관광국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나는 쌀쌀 맞고 저 잘났다고 하는 '프랑스 사람들'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사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잘난 척으로 보일 수 있는 거다.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느껴진다. 그걸 보러 오는 게 아닐까. 사실 뭐 얼마나 대단한 풍경이 있나. '프랑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석구석의 풍경들이 나를 자극시킨다. 그 핵심에는 움츠러들거나 복종하지 않고 우리를 계속 무릎 꿇리려고 하는 세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자아가 있어야 그 다음에 멋이 있는 거다.

한국에서 한 화장품 매장에 갔더니 이런 말을 한다. 매장에 오는 90% 여자들이 하는 말이 '제일 잘 나가는 립스틱이 뭐예요?' 묻는 거라고. 결국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그 사소한 것마저도 '내'가 없는 거다. 다 똑같아 지려고 돈을 쓰는 거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아'가 존재하기 쉽지 않다. 우리의 역사적 조건이 이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모난 돌이 정 맞기 좋은 시스템인 거다. 그게 만 명이면 리스트에 못 들어가는 것이 좀 창피한데, 모난 돌이 십만 명쯤 되면 모난 돌이어도 괜찮다. 그게 연대고, 그 힘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우리 안에서 '십만의 모난 돌'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나는 목 작가가 프랑스에서 만난, 박정희가 만들어낸 대규모 간첩단 동백림 사건으로 삶이 파탄난 이응로 화백의 조카 이희세 선생의 말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다.

이희세 선생 역시 동백림 사건 여파로 프랑스로 망명해 지난 3월 숨을 거두기까지 박정희 독재 정권과 싸우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다고 한다. 생의 목표였던 평화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박정희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화가 이희세 선생의 말 속에서 '십만의 모난 돌'을 꿈 꿔 보는 건 무리일까. 목 작가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희세 선생을 언급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닐 테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정의로운 길을 택하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승리라고. 그 길에 서 있어야만 기쁘고 당당하게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길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를 찾으라고. 한 사람이면 족하다고.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당신에게, 파리

목수정 지음, 꿈의지도(2016)


태그:#목수정, #당신에게, 파리, #에세이, #파리,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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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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