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가요 / 그대 나와 같다면 시작인가요 / 맘이 자꾸 그댈 사랑한대요."

2006년 종영한 드라마 <궁>의 주제곡 'Perhaps Love(사랑인가요)'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만큼이나 뜨거운 인기를 모은 이 달달한 러브송은 발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불리며 사랑받는다. 이 노래를 만든 주인공 박근철 작곡가를 지난 7일 오후 서울 장한동의 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드라마 OST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직업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일까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로운 인터뷰가 될 것이다.    

드라마 OST, 어떻게 만드냐고요?

 박근철 작곡가가 7일 오후 서울 장안동 HMI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철 피디는 영상을 좋아해 전문 장비로 여행지의 풍경을 직접 찍기도 한다. ⓒ 이정민


현재 GNI 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로 자리 잡은 박근철 작곡가는 음악 전반을 다루는 '피디'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드라마OST 프로듀싱과 신인가수 기획에 전념 중인 박 피디는 현재 이영애·송승헌 주연의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방영예정) OST의 프로듀싱을 끝내고 가수 더 원의 한·중 동시앨범 프로듀싱 작업에 한창이다. 제2의 마마무를 찾는 일도 병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 피디는 작곡뿐 아니라 작사·편곡, 드라마·공연의 음악감독으로서 꾸준히 활동해온 전방위적 창작자인 만큼 음악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드라마 OST 분야에서 단단한 입지를 갖고 있는 만큼 현재 OST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예리했다. 그는 "OST가 '음악장사'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가창자의 인지도나 지금까지 히트했던 곡의 공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OST가 지향해야 할 것은 영상과 음악의 조화"라고 강조했다. 박 피디는 <궁>의 '퍼햅스 러브'가 탄생한 배경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퍼햅스 러브'를 만들 때 사전 촬영된 <궁> 1회부터 3회까지 영상을 미리 보고 만들었어요. 이 곡의 인기 요인이 바로 이것 같아요. OST는 보통 프로듀서 하기 나름인데, 영상을 비롯해 대본과 인물관계도 등을 미리 꼼꼼하게 보고 만드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모든 작곡가가 그렇게 하진 않죠. 결론은 길게 보자는 겁니다. OST를 너무 장사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박 피디는 '퍼햅스 러브'처럼 사랑스러운 곡은 사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털어놓으면서 "개인의 취향을 떠나 영상에 맞는 노래를 만들 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영상과 영상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박 피디는 OST 음악 대부분을 이렇듯 영상에 매칭해서 만들어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시티헌터> 수록곡 임재범의 '사랑', <꽃보다 남자> 노을의 '눈물이 난다', <파리의 연인> 소울푸드의 '아무말도 하지 마요', <아랑사또전> 이준기 '하루만' 등을 썼고 그밖에도 <스파이> <카인과 아벨> <눈의 여왕> <어느 멋진 날> <학교> <오렌지 마말레이드> 등의 수록곡을 작곡했다.

고깃집 외도는 전화위복... '직업 음악인'으로 살아가기

 박근철 작곡가가 7일 오후 서울 장안동 HMI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철 피디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 이정민


 박근철 작곡가가 7일 오후 서울 장안동 HMI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철 피디는 자신이 만든 곡의 일부를 직접 작사했다. ⓒ 이정민


박 피디는 뮤직 디렉터로도 활동했다. 2015년 <SMTOWN THE STAGE>,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tvN 드라마 <미미>의 음악을 총괄 감독했다. 또한 가수 김종국, 서인영, 조성모, BMK, 지아, SS501, 레드벨벳, 이지훈, 테이, 김보경을 비롯해 배우 이준기, 김범, 박신양 등에게 곡을 줬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탄탄대로만 달린 건 아니었다.

홍익대 재학시절 그룹사운드 블랙테트라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한 박 피디는 서울재즈아카데미 작·편곡과를 졸업했다. 그는 음악계에 데뷔하기 위해 Y2K, 핑클, 플라이투더스카이, 엄정화 등 당시 유명 가수에게 많은 데모 테이프를 보냈는데 당시 핑클의 프로듀서가 박 피디의 재능을 알아보고 연락해왔다. DSP(핑클소속사)에서 작업하게 된 박 피디는 2000년에 정식 데뷔함으로써 큰 기회를 빨리 잡은 행운아였지만, 오래도록 히트곡이 터지지 않아 마음고생도 심했다. 조성모 등 당시 유명 가수의 곡들을 작곡했지만 '대박'이 없어 시름시름 앓던 중, 비로소 2006년에 <궁> OST '퍼햅스 러브'가 세상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퍼햅스 러브'의 성공 이후 박 피디의 인생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작곡 의뢰가 쏟아졌다. 하지만 대박행진을 연이어 유지하는 건 누구에게든 쉬운 일이 아닌 까닭에, 2007년 결혼 이후 안정적인 수입원을 얻고자 고깃집을 개업했다. 하지만 고깃집은 크게 망해 그를 위기에 빠뜨렸다. 분명 불행한 일이지만 그 안에 행운이 숨어 있었다. 연예 관계자들의 사랑방이었던 박 피디의 고깃집에 손님으로 온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들과 알게 됐고, 이후 배우 보컬 트레이닝을 했다. 박 피디는 한류 열풍 대열에 합류해 박신양, 김범, 조현재, 김윤진 등 배우들의 음악 디렉터로서 해외 공연·팬미팅에 동행하며 세계를 누비며 고깃집의 악몽을 털어냈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를 낳았다. 세계를 돌며 배우들과 함께 한 작업들이 자연스럽게 '공연 음악감독'의 세계로 그를 안내했다. 박 피디는 "외도(고깃집)해서 망해보고 음악으로 돌아오니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진심으로 깨닫게 됐다"며 "내가 잘 하는 것이 음악이 맞다는 확신이 생겼고 생계를 위해 사업을 하더라도 고깃집이 아닌 음악 관련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깃집의 실패는 그에게 헝그리 정신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이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데 유용한 밑천이 되었다.

박근철이 말하는 SM, 김이나... 그리고 영감을 주는 것들

 박근철 작곡가가 7일 오후 서울 장안동 HMI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근철 피디는 발라드부터 댄스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든다. ⓒ 이정민


2010년까지 전세계를 누비며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그는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 SMTOWN THE STAGE >,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총괄 음악감독을 맡았다. 레드벨벳, 온유와 작업하기도 있다. 전문가가 바라보는 SM에 대해 묻자 박 피디는 "함께 일을 해보니 SM은 시트템화가 정말 잘 돼 있는 회사"라고 답했다. "SM은 앨범 발매부터 뮤비를 만드는 일까지 모든 일에서 수십 단계의 의사결정을 거치는데, 곡을 수집하고 선별하고 회의하는 데도 정말 많은 전문가들이 붙어 힘을 모은다"고 말했다.

'퍼햅스 러브'를 작사한 김이나 작사가에 대해서도 묻자 "재능과 열정이 많은 친구"라고 답했다. 가사 쓴 것을 가지고 회의를 할 때 "또 다른 내용을 생각해본다면 뭐가 있을까요?" 물으면 김이나 작사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혀 다른 느낌의 가사 여러 개를 써와서 제시할 만큼 열심이었다. 박 피디 역시 작사를 한다. 그는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글을 어떻게 써도 그 사람의 성향이나 내면이 묻어나는 것 같다"고 말하며 김이나 작사가의 털털하고 꾸밈없는 성격이 가사로 잘 묻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박 피디의 음악을 설명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의 세 살배기 딸아이다. 인터뷰를 나눈 작업실 안에도 앙증맞은 아기 신발이 대여섯 켤레 놓여있었다. 실제로 그걸 보면서 영감을 떠올려 곡 작업을 한다고 하니 딸아이가 음악을 만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발뿐 아니라 딸아이와 함께 여행지에 가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서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그에게 음악의 시작점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었다.

끝으로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 피디는 "옛날에는 미디어 제국을 만들고도 싶었고, 드라마 제작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세계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면서 작곡을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 가족 그리고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편안한 열정이 느껴졌다.


박근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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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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