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가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되고있다.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가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되고있다. ⓒ 이정민


라디오는 약속의 매체다. 사실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약속한 그 시간, 익숙한 그 목소리를 약속이라도 한듯이 들려준다. 당장 내일이라도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음에도 우리는 어제 그 목소리가 들렸으니 오늘도 들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정 붙이고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개편하며 사라지거나 혹은 진행자가 바뀌었을 때 이것이 주는 '싸한 허전함'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모두 한 명 이상의 디제이를 가슴 속에 품고 살지 않나.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라디오의 경우 프로그램 수명이 길다. 진행자 역시 자주 바뀌지 않는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주는 내밀한 속성 탓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여성시대>는 단연 압도적이다. 1975년 <여성살롱>으로 시작한 라디오 <여성시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41년째 지키고 있다. 이 방송을 매일 듣는 청취자들은 <여성시대>가 없는 자신의 삶은 이제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전 9시 5분 전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시그널 음악과 함께 <여성시대>는 41년치 방송에 하루를 계속 더해간다.

지난 5일과 7일 차례로 <여성시대> 프로그램 연출을 맡은 박정욱 피디와 22년을 <여성시대>와 함께 해온 박금선 작가, 그리고 진행자 양희은과 서경석을 만나 라디오 <여성시대>에 대해 물었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면 진작 바위를 뚫고도 남았을 <여성시대>가 오랜 시간 동안 청취자들의 생활의 일부가 돼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전달"이 최우선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의 양희은과 서경석이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의 양희은과 서경석이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여성시대>의 제작진과 진행자가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 건 '전달'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연 중심으로 구성되는 방송이니만큼 최대한 그 사연을 "내 것을 보태지 않고 그 사람이 느낀 그대로"(양희은)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편지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박금선)

"어떤 프로그램이든 진행자에 의해 어느 정도 색깔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여성시대>만큼은 청취자의 사연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쓸데없는 기교나 욕심으로 청취자의 사연이 잘못 전달되지 않게 하려고. 얼핏 생각하면 청취자의 사연을 그대로 내보내는 게 더 편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오히려 날 것 그대로 온전히 사연을 전달하는 건 쉽지 않다. 그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서경석)

"청취자들이 보내준 사연의 힘으로 <여성시대>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그게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이고 진행자나 제가 연출하는 것도 그 사연을 가장 잘 풀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박정욱 피디)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의 박정욱 PD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의 박정욱 PD ⓒ 이정민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가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되고있다.

<여성시대>는 생방송 중! ⓒ 이정민


더 정확하고 재미있는 전달을 위해 양희은과 서경석 두 사람은 사연을 읽으며 역할을 배분한다. 대화 상대가 여성일 경우 진행자 양희은이 대신 그 여성의 감정을 살려 읽는 식이다. 서로 주고받기를 하는 이 호흡을 양희은은 '피겨 스케이팅 복식조'에 비유했다.

"내가 춤을 출 때 공중에서 돌면 밑에서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점프해서 올라가는 거지. 라디오 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부라면 차라리 이혼이라도 하지' 서로 적대시하면 그 두 사람의 호흡이 청취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71년부터 99년까지 혼자만 진행을 해와서 '멕이고 받고 던지고 받고'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혼자 하면 허전할 것 같다. (웃음)" (양희은)

"나보다 경력이 오래 되고 인생 선배이신 분과의 진행은 최초였다. 사실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고 잘 맞출 수 있을까 싶었다. <여성시대>가 이미 40년 넘게 진행돼 온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인데 병아리로 들어와서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잘하더라고. (웃음) 워낙 누님의 내공이 뛰어나기도 하고." (서경석)

"에이이이." (양희은)

"나름대로 성공적인 진행자 합류라고 생각한다." (서경석)

"그래 맞다. 우리 참 좋다." (양희은)

듣기의 힘

'남의 일'을 자기일처럼 듣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여성시대>로 오는 사연들은 차마 들을 엄두가 나지 않는 무거운 사연들인 경우가 많다. <여성시대> 청취자들은 그 '사람 사는 이야기'가 삶을 살아가는데 배움을 줄거라고 믿는다. 박금선 작가는 <여성시대> 속 무거운 이야기를 태교로 듣는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여성시대>로 태교했다는 젊은 엄마들이 많다. 아기에게 이야기하는 거다. '이게 인생이야'라고. 우리 아기도 결국 부대끼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지금은 은퇴하신 정신과 선생님이 출연해서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듣고 울거나 웃으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더라."

하지만 직접 이런 사연을 읽는 진행자들 마음은 어떨까. 작년 <여성시대>로 온 진행자 서경석은 그래서 방송 중에 많이 운다. 진행자 서경석은 "한 번 도저히 너무 슬퍼서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며 "구석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서경석은 "지금은 너무 슬픈 사연이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마음속으로 미리 울어둔다"고 한다.

 MBC 표준FM의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의 양희은과 서경석이 7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시대>는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 가벼운 사연부터 주변인들에게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무거운 사연까지 아우른다. ⓒ 이정민


"참 어두운 사연들이 많다. 내가 아침에 이 사연을 읽어준다고 해서 그 사람 인생이 뭐가 달라질까. 때리는 남편이 때리지 않기를 하나 그렇다고 빚을 누가 확 갚아주기를 하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 짓거리란 말인가 싶었다. 훅훅 씻어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모두 간직하고 있다가 상담소 소장님들이 출연하면 그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이 모든 사연을 듣고 대체 어떻게 살고 견디느냐고. 그 분들도 각자 상담 선생님이 있어 모여서 상담을 하고 지나간다더라. 한 5년 정도 발광을 했다. 나 이 프로그램 안 한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전유성 선배와 같이 방송을 하는데 전유성 선배가 그러더라. '왜 식전 아침부터 이렇게 칙칙하게 매 맞는 여자들 사연을 우리가 배달해야 하지?' 그때 얼결에 '이런 사연 안 올 때까지 해야해!'라고 답했다. 나는 '여성시대'라는 타이틀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는 것들 또 부당한지조차 모르는 것들. 우리 세대만 해도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하고 틀이 있지 않았나. 그래서 '여자들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자'고 '여성시대'라 붙인 게 아니겠나. 아직도 편지가 오는 걸 보면 조선시대 말기에 사는 것 같은 분도 계시고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나 싶다. 하지만 놀라운 건 방송에 사연이 나가면서 그 사람 삶을 흔들고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조용히 혼자 준비해 애를 데리고 집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살는 사람도 있고 물론 그 사연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고.

이들이 자기 삶을 무대에 놓고 객관화시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거대한 어깨동무가 만들어지는 거다. 세상에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고 혹은 나도 일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고. 분연히 스스로 결심하고 삶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연을 쓰는 사람들은 경품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아무데도 털어놓을 수가 없기에 그래도 매일 듣는 목소리가 있으니 저 사람들 앞으로 (보내는 것이다). 가슴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28년 동안 <여성시대>를 해오면서 마음을 다해 하는 인사를 받게 된다. 내 손을 한 번 잡고 눈을 보고 또 <여성시대> 이야기를 한다. 그 인사는 참 다르다." (양희은)

이 어깨동무. 세대 별로 혹은 사안 별로 성별로 자신이 공감 가는 사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자꾸 마음이 쓰인다. <여성시대>가 사연만으로 운영되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인 것 같다고 말하는 박정욱 피디의 말에서는 안타까움과 자부심이 동시에 드러난다. 박정욱 피디는 "사연만으로 전체 프로그램이 유지된다는 점이 <여성시대>의 매력"이라며 "자신의 사연을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 또 문자를 보내 공감을 해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했다.

"상당수의 청취자들이 익명으로 사연을 보낸다. 그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이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섭섭했다 만족했다 고마웠다 사랑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는 거다. 그 자체로 <여성시대>는 소중한 프로그램이 아닐까. 슬픈 사연이 방송되는 날에는 실시간으로 '저 지금 운전하다가 차 세워두고 울고 있어요'라는 문자가 온다." (박정욱 피디)

 MBC 장수 라디오 프로 <여성시대> 앞으로 청취자가 보낸 자필 편지.

MBC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 앞으로 청취자가 보낸 자필 편지. ⓒ 이선필


 MBC 장수 라디오 프로인 <여성시대>의 박금선 작가가 5일 오후 상암동 MBC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났다.

<여성시대>의 박금선 작가가 청취자가 보내온 손편지를 들고 있다. ⓒ 이선필


"종이를 꺼내서 진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손편지도 줄고 우표 붙여 오는 편지는 더 많이 줄었다. 시대의 변화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연 중심 방송이 다른 방송사에도 있었는데 많이 사라졌다. 편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은 <여성시대>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오래오래 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금선 작가)

양희은은 10년 전 인터뷰에서 음악보다 라디오가 더 즐겁다고 답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그에게 오랫동안 라디오 진행을 할 수 있는 동력을 물었다.

"데뷔하면서부터 라디오와 인연이 있었다. 매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매일 편지를 읽고 매일 소통하고 이렇게 문자가 '즉방즉방' 올라오니까. 오로지 라디오에 대한 짝사랑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 인생이란 학교에서 배움이 있다면 이는 '여성시대'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여성시대>를 시작했을 때 48세였는데 내 딴에는 많이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도 여성시대를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

"<여성시대>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나이 꽤 먹었구나' 싶었던 나를 '아직 어린아이구나'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서경석)

내일은 내일의 수다가
<여성시대>는 계속 된다. MBC 사옥이 여의도에서 상암으로 옮겨지면서 버려진 편지들이나 한 번 방송되면 두 번 방송될 일 없는 녹음분이 아쉽지는 않을까. 박정욱 피디와 박금선 작가의 대답은 달랐다.

"이걸 왜 쌓아둬야 하지? 싶다. 수다 떤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거다. 지금의 라디오 기능은 수다에 훨씬 더 가깝다고 본다. 그 순간을 즐기고 흘려보내고. 내일은 내일의 수다가 기다린다. 라디오는 매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찾아오지 않나. 매일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라디오의 특성인데 그러면 언제든지 수다를 떨다 갈 수 있다." (박정욱 피디)

"언제 이 편지가 쓰일지 모르니 버리지를 못 한다. (여의도에서 상암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여성시대> 편지가 창고마다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한동안 "편지들을 스캔해서 타임캡슐처럼 해놓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비용은 누가 대?"라며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안타깝지만 그걸 다 감당하기는 힘드니까." (박금선 작가)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 박금선 박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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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서프라이즈> 내레이션 녹음 현장, 이거 정말 놀라운데요?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기획-장수프로①-3] <서프라이즈>의 상징, 홍승옥·최원형 성우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아래, <서프라이즈>)는 삼합이라는 말에 딱 맞는 TV 프로그램이다. 신기방기한 소재를 신통방통하게 찾아내는 제작진, 열정이 가득한 숙련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귓가를 울리는 친숙한 목소리가 얹어져야 <서프라이즈>가 완성된다.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슬금슬금 사라진 이유도 이 셋의 시너지를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승옥, 최원형 성우의 힘 있고 흡입력있는 목소리는 <서프라이즈>를 <서프라이즈> 답게 만들어주는 필수요소. 지난 8월, <오마이스타>는 두 성우의 <서프라이즈> 내레이션 녹음 현장을 찾았다. 얼굴은 낯설지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친숙한 목소리에 "아!" 싶었다. 대북 선전 아나운서와 <포켓몬스터> 냐옹이 1993년 데뷔한 최원형 성우는 <포켓몬스터> 냐옹이, <겨울왕국>의 한스 왕자 등 누구나 알만한 대표작이 많다. 특히 말끝마다 '~옹'을 붙이는 냐옹이 특유의 말투는 그의 아이디어였단다. 하지만 그가 꼽는 자신의 대표작은 단연 <서프라이즈>. 한국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기억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각기 다른 이야기의 드라마들을 <서프라이즈>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묶는 건 성우들의 힘이다. 이들이 내레이션으로 전달해주는 배경 정보는 <서프라이즈>의 이야기에 신뢰성을 얹어주기도 하고, 조금은 어설픈 영상에 긴장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성우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의 상징. 그래서 "다른 성우들은 <서프라이즈>만의 톤을 흉내 내지 못 한다"고 한다. "<서프라이즈>는 내 성우 인생의 자존심" <서프라이즈>의 시작부터 함께한 홍승옥 성우는 교양 프로그램 성우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장학퀴즈> <토요미스테리극장> <동물농장> <찾아라 맛있는 TV>등에 참여했고, 맡는 프로그램마다 10년은 거뜬히 넘겼다. 많을 때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7군데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녹음을 한 적도 있다고. 부드러움과 파워를 동시에 지닌 목소리의 홍승옥 성우에게는 "대북 선전 방송 아나운서"라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서프라이즈> 톤으로 대북 방송을 읊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서프라이즈>에 대한 홍승옥 성우의 애정은 남다르다. 케이블, 종편 채널 등에서 <서프라이즈>와 유사한 프로그램 제안이 많이 오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수락하지 않는다고. 지난 14년 동안 PD와 작가는 숱하게 바뀌어왔지만, 두 성우는 약 13년 동안 굳건히 <서프라이즈>를 지켜왔다. (첫 회부터 참여한 홍승옥 성우는 중간에 개인 사정으로 1년 정도 쉬었고, 최원형 성우는 2003년부터 참여했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의 산 증인인 셈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작가가 바뀐다거나 하면 가장 먼저 눈치 채는 것도 이 둘이다. "멘트가 입에 붙는 느낌이 달라" 알아챌 수밖에 없다고.베테랑 성우들답게, 이들의 녹음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원 샷, 원 킬.' 녹음 스태프는 "홍승옥 성우는 30분 만에 끝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서프라이즈>는 성우 홍승옥의 자존심"이라던 그의 자신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서프라이즈> 장수비결은 삼합! 사실 10년 넘게 한 프로그램을 위해 일했대도, 현장에서 녹화하는 배우들과 모든 녹화와 편집을 마친 뒤 따로 녹음 작업을 하는 성우가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서프라이즈>의 경우도 1년에 한 번, 회식 날이나 돼야 다 같이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서프라이즈>를 향한 애정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진 이들인 만큼, 1년에 한 번 뿐인 만남에도 가족같은 끈끈함을 느낀단다.최 성우에게는 작은 바람이 하나 생겼다. 배우들과 <서프라이즈> 콘셉트의 연극을 해보는 것. 익숙한 배우들이 참여하고, 익숙한 성우들이 해설을 맡는다면, TV가 아닌 무대에서도 <서프라이즈> 느낌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단다.설자리를 찾기 어려운 배우들에게는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베테랑 성우들에게는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을, 시청자들에게는 <서프라이즈>를 눈앞에서 즐길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다."배우들도 '좋은 생각'이라고 동조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힘들더라"고 전한 최 성우는 "언젠가 꼭 현실화 하고 말 것"이라며 웃었다. 아직 그저 아이디어일 뿐이지만, <서프라이즈>를 향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그대로 전해졌다.흥미로운 소재는 오늘도 밤을 새고 있을 작가진에게 발굴되어 대본이 되고, 이 대본은 열정으로 가득찬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드라마가 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서프라이즈>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성우들의 내레이션이다. <서프라이즈>는 적은 예산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이다. 제작비는 몇 년째 그대로지만, 물가와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실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의 희생과 양보가 없다면, 존속이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서프라이즈>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애정으로, 의리로, 자부심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서프라이즈>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장수프로①-1] <서프라이즈> 인기 비결? '스토리 발굴단' 7인의 비밀[장수프로①-2] 온 국민이 다 아는 이 배우들... '꼬리표' 좀 떼어주세요

"나라 망하는 게 느껴진다" 97년 외환위기 예견 편지들, 요즘은?

[장수프로④-2] 1975년부터 2016년까지 현대사를 관통한 <여성시대>의 힘

지금의 <여성시대>는 1975년 4월 <여성살롱>으로 처음 시작했다. (1988년 <여성시대>로 이름만 바뀌었다) <여성살롱>으로 첫 문을 열었을 때부터 여성 청취자를 대상으로 사연을 받아 진행했다. <여성시대>는 또한 남녀가 함께 진행하는 당대 라디오 프로그램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 진행자의 비중이 높은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진다. <여성시대>가 본 2016년 대한민국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예측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통해서다. 당시 <여성시대> 연출을 맡은 정찬형 피디는 사회평론 길(1998)을 통해 "연출을 맡은 것이 작년(1997) 9월이었는데 이미 그때 어음 때문에 박살나고 중소기업 부도나고 자영업자들 망하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올라왔다"며 "IMF가 닥치기 전인데 그때 이미 청취자들은 '나라 망하는 게 느껴진다'고 얘기했다"고 언급한다. 1993년부터 <여성시대> 구성작가로 일을 시작해 올해로 22년이 된 박금선 작가 역시 당시를 회고했다. 전국 각지에서 <여성시대>를 즐겨 듣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속속 오면 이들은 한자리에서 사연을 모아 읽는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사연, 차마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못해 끝끝내 익명으로 도착한 이야기. 숨죽여 사연을 보내고 또 숨 죽여서 들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 그리고 "징건하게 얹히고 답답한 게 켜켜이 쌓여 돌아버릴 것 같은"(양희은) 내밀한 일상들.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매체 중 하나인 편지는 미시사 연구에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만들어진 여성시대 속 편지들 역시 훗날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삶 속에 역사가 흐른다. 박금선 작가는 "<여성시대>가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어떤 프로그램보다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그는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필요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내용을 담는다"며 "단순히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만 쓰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라디오 <여성시대>를 통해 본 2016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어떨까. 크고 작은 사연들을 통해 세대의 풍경을 본 <여성시대>의 박정욱 피디, 박금선 작가가 입을 열었다. 20대의 취업과 결혼 전후세대의 감소 요양원으로 간 부모들 친구 같은 엄마? 세대를 넘나든 영원한 숙제 '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