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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활동가 두 명이 시작한 동자동 사랑방

동자동 사랑방 마을은 얼마 전 추석 잔치를 성황리에 치렀다. 주민활동가들이 밤새 음식을 장만하고 각종 민속 놀이판을 벌였고 온 동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점심을 나누어 먹고 숨은 노래 실력을 기똥차게 뽐냈다.
▲ 마을 잔치 동자동 사랑방 마을은 얼마 전 추석 잔치를 성황리에 치렀다. 주민활동가들이 밤새 음식을 장만하고 각종 민속 놀이판을 벌였고 온 동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점심을 나누어 먹고 숨은 노래 실력을 기똥차게 뽐냈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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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가 한창이다. 나는 세상에 알려졌으나 여전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동자동 쪽방 마을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난 4월, 지나는 길에 한번 들르는 거다 생각하고 첫 방문을 하게 된 동자동 사랑방. 들르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오는 길이 아쉬워 계속 찾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번 10월부터 반상근을 하게 되었다.

동자동 사랑방 마을에서 일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한편으로 이런 저런 걱정거리가 생기고 마음이 무겁다. 공동주방 식도락에서는 평일에 점심나눔을 하는데 장보기부터 부엌살림까지 처음부터 하나 하나 배워가야 한다.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는 성격도 아니고 뭐 잘한다고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런 내가 동자동에서 일하기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가난으로 인한 상처에 대한 편견에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하나 때문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밀려나고 밀려난 사람들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편견이 없다는 것이 사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거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므로 자칫 오만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자꾸 그리로 가는데 내가 과연 주민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 주민들 말에 의하면 동자동 사랑방이 생기기 전에 동자동은 술 먹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많아 우범지대였고 주민들 대부분이 오랜 지병을 가지고 살면서 옆방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외롭게 지냈다고 한다.

동자동 사랑방은 2008년 두 명의 활동가가 쪽방에 살면서 주민들을 만난 것이 시초가 되어 2011년에는 동자동 사랑방 마을 공제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주민들이 한 달에 몇 천원씩 모아가며 앞날을 계획하고 어려움을 준비할 수 있는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노숙생활하다 들어오는 분들, 임대주택에 당첨돼 떠나는 분들

동자동 쪽방 마을에는 병이나 자살로 돌아가시는 등 부고가 자주 붙는다. 연고를 찾을 수 없는 고독사가 많고 마을 주민들은 이웃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 추석 명절이 되면 이웃들의 가난하고 외로운 죽음을 함께 기억한다.
▲ 마을 장례 동자동 쪽방 마을에는 병이나 자살로 돌아가시는 등 부고가 자주 붙는다. 연고를 찾을 수 없는 고독사가 많고 마을 주민들은 이웃의 장례를 함께 치른다. 추석 명절이 되면 이웃들의 가난하고 외로운 죽음을 함께 기억한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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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을 추석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졌는데 나는 어떻게 행사를 홍보하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동자동 주민센터에서도 행사를 참관하고는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졌던 모양이다. 이처럼 가난한 동네에서 어떻게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겨운 잔치를 벌일 수 있을까?

동자동 사랑방 마을은 여러 주민활동가들이 움직인다. 살림꾼들은 추석행사를 위해 장을 보고 성치 않은 몸이 저리고 아프도록 하룻밤을 세어 음식을 장만하고 회의를 통해 역할분담을 하여 놀이판을 준비한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우리들에게 1만원은 아주 큰 돈이에요"라고 후원금함을 지키는 이가 강조한다. 아마도 그는 주민들 정성과 마음의 크기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추석행사 한 편에는 동자동에서 고독사하신 20여 분들의 차례상도 마련되어 있다.

동자동으로 새로 이주해 오는 주민들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이사왔다는 40대 젊은 층, 서울 곳곳에서 노숙생활을 하다가 연결되어 오신 분들이 있다. 주민들은 새로 온 이주자한 명 한 명을 친절히 맞이하고 동자동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돕는다.

그리고 동자동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철거로 쪽방에서조차 내몰리거나 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이사를 가기도 한다. 동자동 사랑방에는 부고가 자주 붙는다. 병이나 자살로 돌아가시곤 하는데 연고를 찾을 수 없는 고독사가 많다.

근처 공원에 빈소가 차려지며 동자동 주민들이 돌아가신 주민의 장례를 치른다. 동자동 사랑방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새로 오는 주민들 함께 맞이하며 또 떠나보내기도 한다.

동자동 사랑방 골목은 사람 사는 생기가 돈다

동자동 사랑방은 2년에 한 번씩 후원주점을 연다. 주민 대부분은 빈곤과 함께 고질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으나 비급여 항목이나 수급대상자가 아닐 경우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의 생계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병을 방치해서 큰 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동자동 사랑방 후원주점 동자동 사랑방은 2년에 한 번씩 후원주점을 연다. 주민 대부분은 빈곤과 함께 고질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으나 비급여 항목이나 수급대상자가 아닐 경우 병원비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의 생계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병을 방치해서 큰 병을 얻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류허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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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말썽을 부리는 주민들이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한 대처능력이 없는 나는 마음이 쪼그라 들기도 하지만 동자동 사랑방 골목은 사람 사는 생기가 돈다. 점심시간 즈음 맛있는 음식 냄새를 폴폴 풍기는 식도락 주방을 궁금해서 한번 들여다보기도 하고 인사 나누며 지나는 골목이 나는 좋다.

안에서 사람이 일하고 있으면 숨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만히 뒷짐지고 서서 들여다 보시다 한 번 웃어주시는 어르신, 일하는 곁을 떠나지 못하시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는 어르신의 정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 동자동에 다녀가던 나는 동자동에 새로 오는 이주민들처럼 주민들 환영에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들여놓았을 것이고 마음의 위로도 받았을 것이다. 손님에서 친구로 그리고 식구가 되기를 내심 바랐지만 나는 여전히 먼 곳에서 다녀가는 외부인이다.

어리숙한 나는 주민공동체 안의 어두운 구석을 살피지 못했다. 함께 하던 주민들의 외로운 죽음을, 가족같은 주민들의 힘겨운 투병을, 주민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상처를. 쪽방안에 응축되어 있는 주민들의 지독한 가난을. 그 무게들을 품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동자동 사랑방 마을 주민들과 나는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어느 노래가사처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더 이상 쫓겨나지 않는 마을을 지켜가는 동자동 주민들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은 점심나눔에 두 번째 오셨다는 분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건너편 좀 떨어진 곳에 사는데 동자동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사랑방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야 오게 되었다.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담담하게 말을 덧붙였다.

한 이주민은 기초수급액이 나오는 날짜가 안 되어 방세를 낼 수 없다며 일세 몇 만원을 대출해 간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나는 알 것 같다. 다른 주민들처럼 그들과 한 달에 반 걸음씩 다가와 언젠가 동자동 사랑방 마을의 멋진 주민활동가로 만나게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평생 가난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사는 동네를 만들고자 하는 동자동 사랑방 마을 주민들은 사회 연대의 손길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 동자동 사랑방, 사랑방 마을 공제협동조합 후원주점(의료기금 마련) 문의 070-8973-0613
2016년 10월 19일 (토) 오후 3시~11시, 남영역 건너편 '슘' 호프 (2층)



태그:#빈곤, #주민, #쪽방, #공동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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