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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낼 것 하나 없어요. 전쟁이 난다고 해도 우리가 이겨요!"

정부의 느닷없는 사드 배치 결정과 입지 선정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 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던진 말이다. '이러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몇몇 친구들의 호들갑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듣고 있던 많은 아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북한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뉴스가 아이들의 전쟁 이야기로 비화된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멈추지 않는 데다 정부가 연일 북한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데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천진난만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했다. 수업시간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공부도 했고, 당시의 영상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을 텐데도, 금세 잊힌 것인지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전쟁을 입에 담았다.

우리는 불과 60여 년 전에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고,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쓰라린 역사가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02년에는 코앞 서해 바다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여러 병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 어떤 대의와 명분을 들이댄다 할지라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절대 악'이다. 더욱이 핵무기를 앞세운 전쟁은 순식간에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미국 형님" "쿨하게 붙어야죠"... 심지어 "우리도 핵무장"

 사드 발사 장면
 사드 발사 장면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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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에게 전쟁이란 승부를 내야 하는 둘 사이의 경쟁이거나 무슨 인터넷 게임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부 아이들은 전략가를 자처하며 사드 배치에 따른 동북아시아의 패권 경쟁을 마치 경마 중계하듯 설명하기도 했다. 그들의 날카로운 '분석'은 너무나 호전적이어서 듣는 것조차 섬뜩했다. 전쟁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그깟 트럭에 매달려 있는 사드 한두 개 정도로 어떻게 핵무기를 막을 수 있겠어요. 그저 우리 뒤에 미국이라는 든든한 형님이 계시니,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일 뿐이죠. 적어도 군사적으로만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민지가 틀림없죠. 하긴 가져가라는 작전권조차 여태껏 손사래 치고 있잖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도 이젠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드를 배치한다면서 '찌질하게' 북핵 방어용이 뭐예요. 그들이 핵이면, 우리도 핵으로 맞서야죠. 일본도 공공연히 핵무장을 한다는데, '공평하게' 주변 국가들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다면 힘의 균형이 이뤄지는 셈이잖아요."

"여기저기 눈치 볼 필요 없이 북한이 시비를 걸면 '쿨'하게 한 번 맞붙어야죠. 중국은 국력이 비슷한 미국이 상대하고, 러시아는 일본이 커버하면 되죠. 그렇게 되면 두 번째 러일전쟁으로, 한 세기를 넘어 '리턴매치'가 되는 셈이죠. 그리고 경제력이 월등한 우리나라에 지지리도 가난한 북한이 핵만으로 상대가 되겠어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이들의 '겁 없는' 이야기들을 듣노라니, 10여 년전 호국보훈의 달 글짓기 대회 때 한 아이가 제출했던 표어 구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의 '무덤덤함'에 적잖이 놀랐다. 처음엔 그저 장난말처럼 여겼던,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글귀는 이랬다.

"6.25는 무효다. 다시 한 번 겨뤄보자."

그 아이에게 이렇게 적어낸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시 그는 전쟁 전 그어진 38선이 전쟁 후 휴전선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남과 북이 무승부였다면서 다시 한 번 결판을 내야한다고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그에게 전쟁이란 한낱 내기 같은 것일 뿐,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불러오는 참혹한 재앙이라는 사실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남의 이야기처럼 언급되는 한국전쟁

불과 그의 할아버지가 살던 시절의 역사임에도 6.25 전쟁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의 얘기'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에게 역사란 배워야 할 수많은 교과목 중의 하나일 뿐,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고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안목을 키우는 데에는 하등 보탬이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의 역사 점수는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우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매번 새삼 깨닫게 되는 거지만, 역사 과목 점수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추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차피 아이들조차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은 오로지 수험용일 뿐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탓이다. 역사 지식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내면화시키느냐가 역사 공부의 본령일 텐데, 예나 지금이나 그걸 아이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메시지조차 현실성이 없다고 단언하는 아이도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매순간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전쟁을 통해 평화가 찾아오는 경우는 있어도, '공짜'로 주어지는 평화의 시대는 없었다면서. 전쟁은 필요악이라는 주장을 청산유수처럼 내놓기도 했다.

평화를 전쟁의 부산물 정도로 이해하는 그들 앞에서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책을 통해 깨달은 것도 아닐 테고, 가정과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받았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들의 '호전성'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나 분명한 것은, 전쟁을 한낱 인터넷 게임처럼 여기는 '전쟁 불감증'은 폭력에 대한 아이들의 감수성이 그만큼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쟁불감증 불러일으키는 게임 광고

 게임 <해전1942> 광고 중 한 장면.
 게임 <해전1942> 광고 중 한 장면.
ⓒ Sincetime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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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문인지, 요즘 들어선 15초짜리 모바일 게임 광고조차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새벽에 중계하는 해외축구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틀 때마다 피해갈 수 없는 광고다. '해전 1942.'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태평양 한복판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의 실제 전쟁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최근에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라고들 한다.

역사를 소재한 대하드라마도 있고, 영화도 속속 만들어지는 마당에 모바일 게임이라고 해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것이 역사 공부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권장할 일이지 결코 몽니부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통해 만든 게임이라 하니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한 나름의 학습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상을 보면, 위문공연 중 현란한 음악이 멈추고 다급하게 비상벨이 울린다. 동시에 전투기가 바다 위 전함을 폭격하는 장면이 고화질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지금 바로 다운로드 받으라는 안내가 이어지기까지 고작 몇 초에 불과하지만, 광고 모델의 선정적인 춤사위와 선명한 화질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광고다.

"진짜 쇼는 지금부터야."

이 짤막한 멘트에 순간 움찔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전쟁이 '쇼'일 순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만 명의 군인들과 수십만 명의 양민들이 무참히 희생된 태평양 전쟁을 두고 '쇼'라니. 주지하다시피 실제 '해전 1942'는 전쟁의 판도를 바꾼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해전을 지칭하는 것으로, 하마터면 우리 제주도까지도 전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릴 뻔했던 대사건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게임은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선지 다운로드를 받았다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정작 게임의 모티프가 된 태평양 전쟁에 대해선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 벌어졌던 전쟁을 게임으로 만들어 '쇼'처럼 즐기다 보면, 아이들의 전쟁에 대한 감수성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면 기우일까. 하긴 이 이야기를 슬쩍 꺼냈더니, 말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내게 '진지충'이라며 키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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