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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의 나는 성공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알려주는 길을 차곡차곡 밟아 어른들의 '길' 안에서 그들의 삶을 따라갈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성공적이었고, 어긋남도 낙오도 없었다. 시험도 그럭저럭 넘어갈 만 했고,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으나 좋은 학교에서 좋은 스승들을 만나, 좋은 학위를 가진 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때의 나이가 스물 여덟이었다.

서른 살 때의 나는 '역시' 성공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러웠으며 회사가 원하는 것을 해내는 것이, 내 삶의 보람과 일치되고 있다고 여겼다. 회사의 성취가 나의 성취이니, 저녁에도 주말에도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부딪힘은 있었으나, 성공적이었고 나름대로 인정받은 것에 뿌듯해했다. 나는 내가 하는 방식으로 내 삶의 '성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나의 믿음을 굳건하게 한 것들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에서부터 전해온 '자기개발서'들이다. 21세기 초반의 '살만한' 대한민국은 자기개발서의 전성시대였다. 지옥같았던 IMF를 넘어온 우리는 모두가 성공을 꿈꿨고,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민주 정부의 10년을 보내며 강화된 '개인의 독립성'은, 삶의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자신감을 한껏 고무시켰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세계로 뻗어가는 회사의 '비전'과 함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아주 잠시, 꿈처럼 말이다.

모든 자기개발서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누군가의 성공담이고, 성공할 수 있는 인간형과 조직관리에 대한 다양한 소개가 이어진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상적'인 일터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책들을 즐겨 읽으며, 나에게 부족한 그들의 모습을 베껴오고자 애를 썼다. 노력을 해도,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자신의 미숙함을 부끄러워하며, 비관했고, 스스로를 증오하기도 했다. 그랬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며 성공하고 싶었고,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무엇이 성공인가'에 대한 답이 없었다. 승진을 하고, 조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글쎄. 나의 인생이 삐걱거린 것은 그때부터였다. '성공'의 정의가 모호해지고, '나 자신의 삶'이 조직이 추구하는 성공과 거리를 두며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의 삶'을 거울삼아 나의 것을 만들려던 계획마저 틀어져 버렸다.

회사의 성공은 나의 것이 아니었고, 그들은 조직의 구성원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개개의 인간을 '써버리고' 마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이후 고치 안에서 '매트릭스'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자기개발서'의 이야기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얘기가 얼마나 허무한가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사이, 마흔이 되었다.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생각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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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장황한 서두를 꺼내 놓은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에 대한 변명 때문이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한 것의 후회를  포함해서 말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와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S급 인재의 조건>, 이 두 권이다. 이들 두 권의 책에는 이상적인 조직과 이상적인 조직에서의 성공적인 조직원들이 갖춰야 할 것들이 400페이지가 넘게 아주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은 긍정적인 소통, 신뢰, 상호 인정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각 조직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극대화되는 '상승(Win-Win)'을 얘기한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이런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이에 대한 대구라도 되듯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S급 인재의 조건>은 글로벌한 '문화적인 인식의 차이'를 고려하여 소통하려 노력하는 최고의 인재들이 어떻게 세계의 유수한 기업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지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외국으로 나갔어야지! 이 나라는 너같은 괴짜에겐 안 어울려' 하는 자조섞인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책이 말하는 '조직'이나 '개인'이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도 괴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런 조직을 만나는 것은, '3대가 쌓은 공덕'으로 얻어진 '크나큰 행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안하지만,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실망할 것은 없다.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S급 인재의 조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S급 인재의 조건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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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조직이라는 실체조차 불분명한 존재의 하위 구성품으로써 무시되기 일쑤이고, 조직의 위계는 그들의 위계에 충성하지 않는 것을 '잘못'으로 규정하기 쉽다. 나는 다양한 조직에서 '월급'을 받은 지 15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조차 '솔직하게' 내뱉으며 살고 있지 못하다.

이쯤에서 인정하고 포기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누군가가 좋아할 법한 가면을 쓴 채 세상에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기개발서가 알려준 '성공한 리더'의 가면이 훨씬 낫다. 슬프다.

얼마전부터 무척이나 거슬리는 공익광고가 있다. 한국산업인력 공단이 주관하는, NCS기반 '국가 직무능력 표준'에 의한 인재 채용을 장려하는 광고인데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직무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이는 내게 예전 삼성에 취업하기 위한 시험이었던 SSAT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생들이 삼성 입사에서 필수적이었던 SSAT에 매달리던 때가 있었다. 서점들에는 해당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수험서가 평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학생들은 딱 봐도 천페이지는 되어 보이는 무거운 수험 대비 책들을 가방 가득 채우고 다녔다. 당시에도, 우리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서, 어떤 사람을 세상으로 내보내는 집단인가 정체성이 궁금했는데, NCS 직무기반 표준에 의거하여 '자신의 직무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겹쳐져서 씁쓸해진다.

'사회 생활을 책으로 배웠어요. 그런데, 왜 현실은 책이랑 하나도 똑같은 게 없죠? 역시, 책은 이상일뿐이고, 현실은 진흙탕인가요? 그동안 배운 것은 다 뭐죠?'

아마, 실패한 연애의 고백처럼 들리겠지만, 이는 자기개발서가 가르쳐준 대로 살다가 결국 사회생활에서 여전히 좌충우돌 중인 마흔 살, 나의 고백이다. 나는 절대 수많은 자기개발서의 이야기가, 그저 '책을 팔기 위한 미담' 정도로 소비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그런 책들에서 그리는 '이상향'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닮아가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부장님, 지시하신 내용은 잘 알아들었습니다만, 조직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사항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위에서 하라면 해야지 나라고 뭔 수가 있냐? 그냥 가자.'

적어도 이런 식의 대화가 구성원들에게 심어주는 무기력감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거나, 아니면, 저런 식의 의사표현마저 '항명'으로 받아들여지는 '절대 복종의 문화'를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긍정 조직'도 'S급 인재'도 모두 남의 나라 얘기다. 아니지, 어쩌면, 모든 문화적, 지리적, 언어적인 제약을 감내하더라도 이 나라를 떠나려는 청년들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겠지?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대학을 채울 학생은 고사하고, 국민 총생산에 기여하는 '생산 가능 인구'의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나이 먹은 장년들이 노년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역삼각형의 인구 구조인데 말이다.

우리의 청년들의 꿈이 '헬조선 탈출'이어도 괜찮은가? 이 나라가 그들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같이 읽어본 책들이 가르쳐준 이야기가, 이 땅에서도 '사실'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의 청년들을 모두 '다른 나라'와 '다른 조직들'에 빼앗기고 말 텐가? 그들에게 꿈을 꾸게 한 이상, 우리는 그들의 꿈에 책임이 있다.

책 정보 :
1.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 긍정 리더십의 실천> 킴 캐머런 저/박래효, 오근호 번역 (생각사랑)
2.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S급 인재의 조건> 아쓰미 이쿠코 지음/승현주 옮김 (한울)


긍정 조직 어떻게 만들 것인가? : 긍정 리더십의 실천 - 탁월한 고성과 일터를 창조하는

킴 캐머런 지음, 박래효.오근호 옮김, 생각사랑(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긍정조직, #S급 인재의 조건, #현실과의 괴리, #성공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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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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