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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40대 후반이었다. 작은 체구에 기분 좋은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자신을 '프로'라고 칭했다. '전화바리'라 불리는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전화바리'란 전화방에 연결된 라인을 가진 업주가 운영한다. 그녀는 업주가 관리하는 사무실(주로 여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성매수자가 있는 곳으로 일종의 출장을 나간다.

그녀는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손님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몸이 약하고 아무런 자원이 없는 그녀가 연로하신 부모님과 그녀의 반려견을 보살필 수 있도록 '돈'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그녀가 우리를 찾아왔다. 경찰의 단속에 걸려서 조사를 받으러 가야하는데 무섭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경찰이 성매수 남성을 검거했는데 그의 전화 목록에 그녀의 전화번호가 있었고, 경찰은 성매수자가 그녀와 성매매를 했다고 진술 했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 성매수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놈'이었다. 전화를 받고 약속한 모텔로 찾아갔었다. 그는 그녀가 들어가자 바로 문을 잠그고 그녀를 위협했다. 한참 동안이나 그의 완력에 그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어야 했다. 그녀가 그 때 느낀 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포였다. 한동안 놓아주지 않던 그가 조금 느슨해진 틈에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알몸으로 방을 뛰쳐나왔다.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고서야 수치심이 찾아왔다. 고소하고 싶다는 그녀에게 업주는 재수 없었다 생각하라며 말렸다.

그녀는 자신이 성매매로 버는 돈의 절반을 떼어가는 업주나, 자신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전혀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억울함과 부당함이 있긴 하지만 그녀가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성매수자는 꼭 처벌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운이 좋았다. 경찰은 그녀가 겪은 일에 공감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처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법의 판단으로 그건 '폭력'이 아니라 그냥 돈을 주고 거래한 '성매매'였을 뿐이었다.

막 성인이 된 20살, 그녀는 알코올 중독으로 어린 딸을 때리는 아버지를 피해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가출했었다. 그리고 거리를 떠돌았다. '고마운'오빠들이 그녀를 재워주고 용돈을 주었다. 하지만 그건 단 몇 달일 뿐 오빠들은 그녀를 오래 거두지 않았다. 그녀에게 성매매는 그녀를 재워주고 용돈을 주고, 위안을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빠들이 싫거나 밉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보상이 주어지는 섹스행위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성폭력'이라고 이름 붙이는 행위가 있었다. 그건 돈을 주지 않거나, 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경우였다.

노래방 업주는 손님들에게 받은 돈을 주겠다며 그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성폭력으로 고소당한 그 업주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행동에 반항하지 않아서 괜잖은 줄 알았다고 했다. 티켓다방에서 시간을 끊고 성매매를 한 세명의 남성은 친구사이였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에게 폭행한 시간을 정확히 기억했다. 텔레비전에 제야의 종소리를 타종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고 그들은 돈을 주고 부른 그녀와 한방에서 세시간을 함께 있었다. 업주와 성매수자들에게 너무나 당연했던 그 행위들이 그녀에게는 폭력이었다. 그녀의 판단으로는 아무리 업주라도 돈을 주지 않고 하는 것이나, 아무리 돈을 주었어도 세명이 동시에 하는 것은 '성폭력'이었다.

성매매여성을 상담하고 지원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례를 거듭거듭 마주하는 일이다. 경찰조차 답답해하는 사건조차 '성매매'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성매수자는 너무도 당당하게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성매수 행위를 일상적이고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지금의 사회가 만든 모습이다. 어딘가 부러지고 피를 보지 않았다면 성매수 행위에 '폭력'은 없는 것이다. 

2016년 10월 3일  'UCLA 뉴스룸(UCLA Newsroom)'기사에 의하면 2015년 8월 31일 <the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인간간폭력저널)>에 실린 연구에서 성매매여성에 대한 성구매자 남성의 공감능력이 성을 구매하지 않는 남성보다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UCLA 교수인 닐 맬러머스(Neil Malamuth)가 공동 집필한 이 연구는 또한 성구매 남성의 시각이 강압적으로 성을 행사하는 남성의 시각과 유사하며, 강간 및 기타 강제적 성행위를 시도했다는 보고가 성구매 남성에서 더 높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성노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매매를 합법적 계약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폭력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계약조건은 첫째, 콘돔을 낀다, 둘째 입에 사정하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지키고 정해진 체위만 할 것 등을 미리 약속한다 해서 성매매는 안전하고 할 만한 것, 폭력이 아닌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계약조건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마치 여성이 이 모든걸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건 환상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매매여성이라고 하면 강남의 '텐프로'업소 여성들을 떠올린다. 손님을 가려가면서 받고, 원하지 않는 행위는 거절할 수 있는 까칠한 태도로 모든 남성을 눈아래 둘 수 있는 여성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성매매는 거래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완벽한 상품은 없다. 돈을 많이 낼 수 있는 고객에게 상품은 늘 그만큼의 가치를 지녀야하고, 그렇지 않을 때 가차없이 비난받고 버려진다.

십대에 조건만남을 하는 여성조차 손님에게 거절당하고 모욕당할 걸 두려워한다. 여성들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매기는 조건을 '사이즈'라고 부른다. 30대만 되면 끝물이고, 조금만 살이 쪄도, 또는 말라도, 키가 작아도, 커도 가슴이 작아도, 커도 그 모든 조건이 손님이 원하면 좋은 것, 원하지 않으면 필요 없는 것이 된다.

계약조건은 '돈'이 만드는 것이다. 돈에 따라 서비스의 내용은 달라진다. 또 잘 팔리지 않게 된 상품은 한없이 할인을 해주고, 서비스의 강도는 높아진다. 마사지 업소에서 일했던 여성은 성매수자가 베게로 얼굴을 누르며 '너같은 거랑 섹스를 하다니'라는 말을 했다. 치욕은 고통보다 질겨서 오래도록 그녀에게 남아 아직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성매매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그 순간부터 팔려져야 하는 '상품'은 그저 물질이다.

성매수자의 인격은 이미 '돈'을 지불하는 순간 사라진다. 돈도 많이 주고, 친절한 성매수자, 키다리아저씨는 어디까지나 친절한 성매수자일 뿐이다. 노예주의 성품이 노예주를 정당화해주지 않듯이 성매수자 또한 그렇다. 성매매와 성폭력은 동일한 어법을 가지고 있다. '힘에 의한 성적 지배'가 그것이다. 그 '힘'이 돈에 의한 권력일 수도, 완력에 의한 권력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인 현상은 돈으로, 완력으로 대상을 굴복시키고 지배하는 것이다.

성매매 필요의 이유로 삼는 돈 없는 남성을 위한 '성욕 배출'의 기회는 허황되다. 그것은 단순한 '성욕의 배출'이 아니라 내 성욕을 위해 지배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또한 얼마나 허무한지. 결국 '돈'에 의해 가질 수 있는 권력이 '돈'이 없는 이들을 배제한다. '돈'이 없어서 성매수를 자유로이 원하는 횟수만큼 할 수 없고,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충분한 '돈'이 없는 이들은 분노한다. 그 분노는 '왜 돈 없다고 무시하냐고' 성매매여성들을 겨냥한다.

"그녀는 사실 거기 없는 거나 같아요."

성매매 현장에 '그녀'는 없다. 팔리는 상품이 있을 뿐, 그래서 그것은 성폭력이 아닌 그 무엇이 된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신박진영 시민기자는 대구여성인권센터 성매매피해상담소 '힘내' 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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