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이 도시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보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빨리 편입되고 싶었던 10대였고, 그런 드라마들은 나의 소망을 간접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은 물론 환상도 키워주었다. 그 시절, 내가 생각했던 20대 후반의 삶이란 이랬다. 안정적인 직장과 거주지를 가지고 내 생활을 자유로이 통제하는 삶. 모든 일에 합리적으로 처신하고 삶의 난관이라곤 인간관계에서의 드라마틱한 갈등뿐인 삶. 나는 지루한 10대를 지나 20대에 접어든다면 자연히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 있으리라 믿었다. 흔히 말하는 '성숙'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 말이다.

물론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친다면 아마 코웃음을 칠 것이다. 막상 겪어본 그 '어른'들의 세계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으니 말이다. 일단 이 세계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어쩌다 직장을 구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출근길은 버겁기만 하다. 계획된 생활은 불가능하고, 나는 일이나 공과금 납부처럼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요구에 등이 떠밀려 사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일들을 아무리 겪어도 나는 계속 미숙하기만 하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삶에 더해 고난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피곤하다. 생활은 전혀 정돈되지 않고, 집은 난장판이 아닌 날이 드물다.

갑작스레 맞이한 '어른들의 세계'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사진

ⓒ 소니픽쳐스코리아


아마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의 생활'에서 이런 사실을 빠뜨렸을 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20대 후반의 도시 노동자로서, 나는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요구받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 아니 사실은 생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는 점. 그리고 홀로 도시로 뛰쳐나오기까지 나는 그런 것들을 준비해 본 적이 없다. 드라마에서 보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생활은 그 세계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밀려드는 책임과 의무 사이에서 백기를 들고 싶은 마음이 가끔은 굴뚝같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얻어서 이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는 허황된 꿈을 아주 자주 꾼다.

요구하지도 원하지도 않던 책임 앞에서 방황하는 인물, 내겐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인공 마리가 그런 사람으로 다가왔다. 2007년 개봉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적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다룬다. 감독은 <처녀 자살 대소동>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통해, 삶의 부침을 겪는 어린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낸 소피아 코폴라가 맡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 영화는 당시 역사적 풍랑에 휩쓸린 프랑스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대신 영화는 갑작스레 낯선 이국땅에서 황태자비가 되어버린 10대 소녀 마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리의 불가피했던 선택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사진

ⓒ 소니픽쳐스코리아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갑작스레 '어른의 세계'에 떨어져 버린 나의 것과 유사했다. 아니, 사실은 마리 쪽이 더 가혹했다. 그녀는 겨우 14살이 되던 나이에 프랑스로 보내져 결혼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이랬다. 베르사유는 지켜야 할 것도, 참석해야 할 자리도 가득한 답답한 곳이었다. 이런 궁궐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바쁜데, 그녀의 어깨 위에는 당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우호 관계를 만들어 내는 막중한 짐도 지워져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계속 편지로 그녀가 빨리 아들을 낳아 그 임무를 다해주길 요구하지만, 이에 무관심한 루이 16세 탓에 일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다. 갑자기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황태자비였으며 돈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궁궐 생활의 답답함과 이런저런 요구로부터 오는 피로함을 파티와 소비로 해소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리를 차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녀에게, 이는 현실을 고단함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처럼 묘사된다. 말하자면 자기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그녀가 그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제한된 선택지였던 셈이다. 왜 평판이 나쁜 사람들과 계속 어울리냐는 지적에 대해, 마리는 "그 사람이 나를 웃게 하니까"라는 답을 한다. 물론 파티와 소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새벽까지 이어진 생일 파티 이후, 욕조에 몸을 누인 그녀의 표정에서 피곤과 불안, 불만이 언뜻 비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마리를 둘러싼 다소 부당한 불명예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사진

ⓒ 소니픽쳐스코리아


하지만 그런다 한들 그녀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겠는가. 그것은 지금의 나도 비슷하다. 규모나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마리가 책임을 견디던 방식과 나의 방식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사실 소피아 코폴라가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도 마리의 행보는 그렇게 납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10대였다. 이제 자기의 삶도 막 익숙해지기 시작한 그녀에게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들과 이로 인한 책임과 요구들은 어떻게 다가왔겠는가. 그리고 그 앞에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달리 무엇이 있었을까. 유일한 문제는 마리가 어쩌다 보니 프랑스의 왕비가 됐고, 이미 그녀가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프랑스의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 가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녀가 잠시나마 혼란을 겪을 기회도, 조금이라도 철이 없을 기회는 시간이 흐르고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당시 마리의 소비 생활이 과장된 측면이 있었고, 실제로 프랑스의 엄청난 재정난은 미국 독립 전쟁에 대한 무리한 지원 때문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도 쉽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의 아이콘이나 향락에 빠진 악녀로서 소환되곤 한다. 잊을 만 하면 들려오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와 같은 말이 그 사례다. 영화 속에서도 그녀가 적극적으로 항변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여성의 소비가 손쉽게 사치로 치환되고, 욕망이 허영으로 매도되는 사회에서 이런 식의 낙인은 여전히 큰 힘을 가진다.

모두가 동등하게 '철 없을' 사회를 바라며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사진

ⓒ 소니픽쳐스코리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찍혔고, 여전히 유효한 그 낙인은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 또한 유흥을 즐기거나 합리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곳에 돈을 쓰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당장 휴지 한 장 살 돈도 없는 주제에 빚을 내서라도 가지고 싶은 옷을 사기도 한다. 출근이 싫다고 일요일 새벽까지 술을 먹곤, 다음 날 아침에 숙취해소제를 마시며 회사를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놓고 누구도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낙인을 찍은 일은 없다. 오히려 관대하다면 매우 관대했다. 사람들은 내 또래 남자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 남자라면 누구나 지날 철없는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혹은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아이라는 식으로 변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래의 여자들은 달랐다. 그 친구들이 조금만 무리해서 소비하거나, 혹은 그런 소비를 꿈꾸면, 때로는 조금만 비싼 커피를 마시거나 화려한 옷을 입으면 금세 돈을 헤프게 쓰는 사치스러운 여성이라는 낙인이 따라왔다. 이 친구들에게는 남성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설명이 더해졌다. 여자들은 원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어서 그런 식으로 돈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남성의 일탈은 변호를 받지만, 여성의 소비는 낙인을 얻는다. 그리고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다.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상은 모범적인 '사회인'의 기준을 한치의 이탈도 없이 따르며, 매 순간 합리적인 선택과 소비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각자 스스로에 대해서 만큼은, 가끔은 무책임하고 철없이 굴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그런 순간을 누렸으면 한다. 그 때, 마리 역시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스틸 사진

마리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소니픽쳐스코리아



마리 앙투아네트 평등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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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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