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세월호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세월호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절망감이 밀려든다. 자식을 잃고 남의 자식 돌잔치에 온 사람이 된 것처럼,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팍에 날아와 박힌다. 어쩌면 이리도 다를까. 한겨울 허드슨강 위에 내려앉은 비행기, 그 안에 든 155명의 생존자. 미국은 그 모두를 살렸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엔딩크레딧이 오르다 실제 사건 생존자들이 카메라 앞에 나와 사건 당시 자신들의 좌석을 말할 때, 그러니까 "전 2A요", "3B요" 하고 말하던 바로 그 장면에서, 2년 반 전 사건을 떠올리지 않기란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겐 그렇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 다룬 이야기는 실화다. 2009년 1월 15일 뉴욕 허드슨강 한 가운데에 US항공 1549편이 미끄러지듯 착수했고 승객 155명 전원이 구출된 믿기 어려운 사건이 배경이다.

설리는 주인공 이름이다. 백발의 톰 행크스가 연기한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가 그다. 경력 42년의 베테랑 비행사 설리는 이날 155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륙 직후 항공기 양측 엔진이 새떼와 충돌해 모두 정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설리와 부조종사 제프는 기수를 돌려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허드슨강 위로 비상착수를 시도한다.

미국은 그 모두를 살렸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기장 설리 역을 맡아 연기한 톰 행크스와 부조종사 제프 역의 아론 에크하트.

기장 설리 역을 맡아 연기한 톰 행크스와 부조종사 제프 역의 아론 에크하트.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불과 96분의 러닝타임이 전부지만 영화는 이조차 채우기 벅찰 만큼 단순하고 간결하다. 전례 없는 대형 항공기 비상착수에도 탑승객 전원이 생존했고, 이는 기장을 포함해 부기장과 승무원, 승객, 구조에 참여한 인력 등 모두가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 말 그대로 사건이 있었던 미국과 뉴욕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게 영화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당대 최고의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탁월한 이야기꾼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같은 목적을 위해 구성을 비트는데 집중한다. 부족한 이야기를 만회하고 영화의 후반부까지 의문을 남겨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영화는 속임수와 극적 장치를 적극 활용한다.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청문회가 실제보다 설리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그에 따라 설리가 받는 심리적 불안도 강조되는 식이다. 이로 인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동안 설리가 잘못된 판단으로 탑승객들을 괜한 위험에 빠뜨린 건지, 그의 잘못으로 멀쩡한 항공기만 잃어버리게 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영화는 장르영화적 장치들도 곳곳에 배치했다. 미담을 재현하는 전형적인 실화영화로 만들기엔 등장인물이 제한되고 풀어갈 이야기 역시 태부족했던 탓이다. 비행기에서 탈출할 때 골프여행을 가던 부자가 따로 떨어진다는 설정, 승무원이 다리에서 피를 흘리는 장면, 기장이 모두 빠져나간 비행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생존자를 찾는 모습 등은 실화의 반영인 동시에 드라마의 부족을 장르적 요소를 통해 만회하려는 고민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설리와 제프가 청문회 조사를 받는 과정에 무려 5번의 플래시백, 2번의 악몽, 1번의 환영을 삽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의 부족은 일종의 카운터펀치로 작용하는 영화의 반전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설리가 준비한 비장의 한수는 청문회 조사위원들을 녹 아웃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관객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질문인 나머지 당혹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이 질문을 안 했단 말이야?'

설리는 기적?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한 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청문회.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탑승객 155명 전원이 생존한 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청문회.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영화의 원제는 <SULLY>로 뒤에 붙은 '허드슨강의 기적'은 본래 홍보에 들어간 선전문구다. 영화를 국내에 들여온 수입·배급사가 제목으로 끄집어내 붙였다. '기적'이란 단어의 힘 때문일까, 한국에서 설리라는 이름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까.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제목을 문제삼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일이 없다.

하지만 난 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정형화되고 흔해 빠진 미담일 것 같은 인상이 들었고 원제와 달리 한국에서 붙였다는 점도 거슬렸다. 무엇보다 영화 안에선 개연성 없는 기적이며 한 명의 영웅을 강조하는 대신 있어야 할 곳에서 제 역할을 한 사람들과 그들이 그럴 수 있게끔 한 사회·문화적 구조가 돋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설리>는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이 없었음을, 그 날의 사건은 결코 기적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위기의 순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이 제 자리에 있었고 그래서 모두가 살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96분의 러닝타임을 통해 영화가 전하려는 말이다. <영웅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영화가 강조하는 건 설리나 구조대의 영웅적 행동이 아니다. 그들이 제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사실, 그 사실만이 거듭 강조될 뿐이다. 설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판단에 시간이 필요했으나 전문가다운 침착함으로 내릴 수 있는 현명한 결단을 내렸다. 부조종사 제프는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하게 규정에 따라 행동했고 그건 승무원과 승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허드슨강에 착수한 이후 구조대와 통근여객선 선장 및 승무원들도 저마다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규정은 지켜졌고 책임 있는 자들은 위기상황에서 제 책임을 다했다. 시스템이 제 역할을 했으므로 모두가 살았고, 모두가 살았음에도 청문회는 일말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치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그들과 같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오늘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빅이슈>와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클린트 이스트우드 김성호의 씨네만세 빅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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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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