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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을 걸어 찾아온 제자들
 한 시간을 걸어 찾아온 제자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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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관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방과후 학교 강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2번, 해당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납니다.

파주가 넓다는 것을 학교들을 방문하면서 더 실감하게 됩니다. 헤이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학교부터 1시간이 걸리는 곳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대면하면서 현재 아이들의 기쁨과 고민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저 준형이에요."
"어쩐 일이냐?"
"헤이리예요.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어요."

지난주에 한 달 과정을 끝낸 탄현중학교의 1학년 학생 네 명이었습니다. 집으로 불러 마주앉았습니다.

"학원 때문에 모두 바쁘다고 했잖아?"

요즘은 수업시간을 5분이라도 넘겨 끝내기가 어렸습니다. 스쿨버스가 때맞추어 기다리고 있고, 엄마가 주차장에서 퇴교를 기다리고 있고, 학원차가 아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3일간의 1차 지필평가시험이 끝났어요. 그래서 오늘은 학원에 안 가요."
"시험공부 하느라 고생했구나. 헤이리로 오는 차가 있었니?"
"아니요. 걸어서 왔어요.
"걸어서? 얼마나 걸려서?"
"1시간쯤이요?"

이미 과정이 끝난 탑삭나룻 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라는 언죽번죽 전화 속 말에 더해 '1시간을 걸어왔다'는 말에 마음이 시큰했습니다.

아직은 들길과 밭길이 남아 있는 파주입니다. 하지만 스쿨버스와 자가용으로 모두 학교를 오가는 이즘의 학생들에게 한 시간 개울 길을 따라 걸었던 저의 어릴 적 등굣길과는 판이해진 세상입니다.

선생을 만나러 오는 한 시간의 걷는 길 위에서 과연 어떤 대화가 오가고 어떤 생각이 꼬리를 물었을까요? 걷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니 뚜벅거렸던 그 시간이 낭비는 아니었을 것이라 유추해 봅니다.

냉장고를 뒤져 먹이고 수다를 즐기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 아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에 태워 아이들의 집 근처, 1년 만에 열린 유승앙브아즈의 풍물시장(야시장)으로 갔습니다.

장터에서 제일 먹고 싶다는 다코야키를 사서 허겁지겁 나누어먹고 나니 '보고 싶어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말의 무게에 눌린 제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멘 녀석들을 집이 있는 마을 입구에 내려놓고 손을 흔들어 헤어지니 너나들이 친구가 된 듯 뿌듯합니다.

학교교단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은 두려움이자 큰 기쁨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터치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미래에 파문으로 남는 일이므로 크나큰 두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쁨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제 경험과 재능을 나누는 일에 큰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 저로서는 강의를 가는 날, 집을 나서기 전에 오래전에 제 스스로 세웠던 스승의 덕목을 되뇝니다.

어떤 사람과 접촉해도 상대가 오염되지 않을 '순수한 영혼'과 자꾸만 뒤처지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등 떠밀며 부추겨줄 '용광로 같은 열정', 모두가 다 지쳐 쓰러져도 최후로 남아 '다시 출발!'을 외칠 수 있는 '강인한 체력', 완주까지는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야하는 '마라토너의 인내', 새벽 4시면 벌써 마당에 나오셔서 헛기침으로 가족들의 기상을 독려하시는 '할아버지의 근면', 학생을 목표한 분야에 우뚝 세울 수 있는 '깊은 전문성', 학생들이 성장의 과정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내적, 혹은 외적 갈등에 조언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확신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이 그것입니다.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구전되는 모든 사상들을 집대성한 책, <탈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벗 삼은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선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스승,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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