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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화장품 판매점 직원의 말에 무안해졌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화장품 판매점 직원의 말에 무안해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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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한 달 전이었다. 그녀는 반복되는 내 물음에 같은 말만 하다가 날 흘겨보며 자리를 떠났다. 무안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난 그저 내 피부톤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물어봤을 뿐이고, 스물일곱 살 먹은 남자였을 뿐이다. 바로 나오고 싶었지만 오기가 나서 다른 직원에게 다시 물어봤고, 이번에는 다행히 제품을 추천을 받아 구매할 수 있었다.

난 10대 때부터 따라다닌 피부트러블 때문에 평소에도 선크림을 바르고 다닌다. 지인에게 파운데이션이 커버력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들뜬 마음으로 쇼핑을 갔는데 찝찝한 기분으로 가게를 나와야 했다. 내가 내 돈으로 화장품을 사겠다는데 왜 그런 시선을 받아야 했을까. 어째서 난 거부당한 기분을 느껴야 했을까. 남자가 화장품 하나 사려고 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

이런 일이 비단 나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닌 듯싶다. 요즘 경복궁과 인사동 근처에 가면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다. 주로 10, 20대고 외국인들도 있다. 한복을 입고 궁을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다. 문화재청은 2013년 10월부터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등 주요 문화시설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가 목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한복, 마음대로 입지도 못한다. 지난 5일 <여성신문>의 기사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고궁 한복 무료입장 젠더차별 논란에 따르면, 한복을 입고 궁에 무료로 입장하려면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경복궁에 들어가려 했다가 '조상님이 보면 노하신다'는 말을 들으며 입장을 저지당했다고 한다. 단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옷 혹은 원하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입장을 거부당한 것이다.

무료 이벤트인데 무슨 차별이냐고?

 한복을 입고 궁에 무료로 입장하려면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사진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가이드라인. 해당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어있다.
 한복을 입고 궁에 무료로 입장하려면 남성은 저고리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 사진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가이드라인. 해당 내용이 빨간색 글씨로 강조되어있다.
ⓒ 문화재청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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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무료입장인데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인 성 정체성/성 지향에 따라 혜택에 차등을 두는 것은 성별, 인종, 장애에 근거해 차등을 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차별 행위다.

그저 오래된 것이 전통이라면 조상님이 주신 소중한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는 예의 없는 사람들도 입장을 금지할 일이다. 전통은 단순히 옛것을 좇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성별에 따라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고 복장을 강요하는 건 고정된 성 역할을 강요하는 폭력일 뿐이다.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라는 이분법적 구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바다 건너 영국에 있는 유구한 전통의 브라이튼 공립학교는 올해 1월부터 교복에 대한 규정을 바꿨다. 트렌스젠더 학생들을 위해서다. 남학생들도 치마를 입을 수 있고, 여학생들도 바지를 입을 수 있다. 이는 영국 정부의 '성 중립(gender neutral)'정책에 따른 것으로 영국의 많은 학교가 교복에 대한 규정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성별 고정관념 강요하는 전통, 거절합니다

 위스퍼의 '#여자답게 멈추지마' 캠페인에 출연한 태권도 선수 김소희. 그는 여자 태권도 선수로서 온갖 편견에 부딪혀야 했다. 이처럼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고방식은 단지 내가 입는 것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스포츠, 음식, 심지어 개인의 감정까지 옭아맨다.
 위스퍼의 '#여자답게 멈추지마' 캠페인에 출연한 태권도 선수 김소희. 그는 여자 태권도 선수로서 온갖 편견에 부딪혀야 했다. 이처럼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고방식은 단지 내가 입는 것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스포츠, 음식, 심지어 개인의 감정까지 옭아맨다.
ⓒ 위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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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해'라는 사고방식은 단지 내가 입는 것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스포츠, 음식, 심지어 개인의 감정까지 옭아맨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초기에는 복장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의 항의가 있고 나서 규정을 바꿨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말하는 '전통'을 어겼을 때 무엇이 훼손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부정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지 짐작할 수는 있다. 앞서 말했던 브라이튼 공립학교의 교장 리처드 캐언은 "학생들이 그들의 타고난 다양한 성정체성을 인정받음으로써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을 보장해주는 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지향과 타고난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이 전통이라면, 그런 전통은 필요 없다.

덧붙이는 글 | [참고기사]
- , dailymail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3408027/Top-public-school-allow-transgender-children-choose-wearing-skirt-blouse-trousers-shirt.html)

-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고궁 한복 무료입장 젠더차별 논란>, 여성신문 (http://m.womennews.co.kr/news_detail.asp?num=98341#.V_ZDjIbu7Y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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