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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해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채택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한국어를 보전하고 발전시켜야 할 정부나 공공기관이 외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이나 시설을 국민들에게 알릴 때 사용하는 공공언어가 대표적이다. 한글날 570돌을 맞아 공공언어의 외국어 남용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 기자 말

 10월 6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모습이다
 10월 6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모습이다
ⓒ 홍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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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외국어를 많이 쓰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한국어 학당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고 있는 스웨덴인 질 루수크(20)씨의 말이다. 그는 "한국어를 보존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많이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라면서 "자국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할 한국 정부가 왜 굳이 외국어를 많이 쓰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어이 없다는 표정과 함께.

옆에 있던 스웨덴인 안나 스텔라 에릭슨(20)씨는 "스웨덴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공공장소를 제외하고는 외국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라며 "정부도 기본적으로 외국어를 잘 쓰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국제기숙사에서 만난 프랑스인 꽁세(24)씨 역시 정부의 빈번한 외국어 사용에 대해 "창피한 짓"이라고 짚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외국어를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라며 "특히 외국인이 아닌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문서나 정책명의 경우 외국어로 표현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영어 투성이 공공언어, 외국인 유학생은 어찌 생각할까

한국 정부는 그동안 우리말 우리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전 세계 54개국 138곳에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한 세종학당을 세웠고, 매년 외국의 한국어 교사들을 초청해 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한글날 축사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의 표현대로 "한글이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문화자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말과 우리글이 문화융성의 시대를 여는데 소중한 밑거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공공언어에 외국어를 많이 섞어 쓰는 데 대해(관련 기사 : "외국어 수준에 따라 국민 권리가 달라진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9월 9일부터 9월 13일까지 서울 신촌지역에서 만난 10개국의 외국인 학생들은 거의 모두 자신들의 나라 정부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정부의 외국어 사용을 비판했다. 취재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외국인 유학생은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스웨덴, 스페인, 일본, 콜롬비아, 프랑스 등 10개국의 유학생들이었다.

정부가 외국어를 자주 쓴다고 대답한 유학생은 일본인 유학생 뿐이었다. 다음은 그들의 이야기 중 일부다.

▲ 스페인인 아우웹씨 (20세, 연세대 한국어 학당)
"정책이나 법과 같은 경우 시민들이 이해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외국어는 자국민들 로 하여금 이를 어렵게 한다. 정책명이나 공문서에서 외국어를 혼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스페인은 두 가지의 공식 언어로 소통하는데 정부는 그중에서 스페인어만 쓴다."

▲ 중국인 다유챙씨 (27세, RWTH공대의 이화여대 교환학생)
"언어는 그 나라 정체성과 문화의 일부다. 영어 말고는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경우라면 몰라도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한국어로 쓰는 것이 옳다. 중국에 영어가 이미 많이 스며들어 있지만, 정부가 굳이 영어나 외국어를 쓰지 않는다."

▲ 콜롬비아인 카탈리나 로메로씨 (22세, 연세대 한국어 학당)
"외국인들을 위해 외국어를 사용하는 건 좋지만, 한국어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애초에 자국민을 위한 공공언어에 쓰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콜롬비아의 정부도 우리의 자국어인 스페인어만 쓴다."

▲ 말레이시아인 파티씨 (20세, 이화여대 한국어 학당)
"말레이시아에서는 정부가 영어와 중국어인 두 공식 언어를 따로 써서 문서를 만든다. 그 문서 안에서도 두 언어를 섞어 쓰진 않는다. 문화와 종족 보존을 위해 언어를 제대로 보호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누리집, G20 국가 중 한국과 일본만 외국어 사용

자신들의 정부는 공공언어로 외국어를 섞어 쓰지 않는다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세계의 주요 국가인 G20의 정부 누리집을 모두 찾아 비교해봤다. 그 결과, 외국어를 섞어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단 두 나라뿐이었다. 독일, 러시아,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프랑스, 호주 등 나머지 18개국의 정부 누리집은 자국민들을 위한 자국어판에서 외국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먼저 한국 정부 누리집(http://www.korea.go.kr/main)의 첫 화면을 보자.

 대한민국 정부 누리집 국문판의 첫 화면. '정책핫토픽', 'Help Desk', 'Open API', '배너모음' 등의 외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누리집 국문판의 첫 화면. '정책핫토픽', 'Help Desk', 'Open API', '배너모음' 등의 외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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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누리집에는 영문판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판 첫 화면에서부터 여러 외국어가 보인다.

'Help desk' 'Open API 공동활용' 'FAQ'처럼 한글이 아니라 아예 영어로 표기한 것들이 그 예다. '배너'처럼 영어 단어를 그대로 한글로 쓴 사례도 있다.

한글과 영어를 혼용한 단어들도 눈에 띈다. '정책 핫토픽'과 같이 한국어 '정책'과 영어 '핫(Hot)'을 섞어 표기한 것이 그런 사례다. '대한민국 On마을축제'의 경우처럼 '온'이라는 관형사를 발음이 똑같은 'On'으로 바꿔서 이 세상에 없는 단어를 창조해낸 형태도 있다.

 독일 정부 누리집 국문판의 첫 화면. 'Bundesregierung (연방정부, 화면 왼쪽 위 동그라미 참고)'라는 독일어로 안내하고 있다. 한국 정부 누리집이 사용한 '추천 키워드'라는 한국어 외래어 혼용 표현 대신 'Schwerpunkte(핵심, 화면 왼쪽 아래 동그라미 참고)'이라는 독일어를 썼다. 또한 'Foto(사진)'라는 독일 외래어 대신에 'Bild(사진, 오른쪽 동그라미 참고)'라는 독일어가 쓰이고 있다
 독일 정부 누리집 국문판의 첫 화면. 'Bundesregierung (연방정부, 화면 왼쪽 위 동그라미 참고)'라는 독일어로 안내하고 있다. 한국 정부 누리집이 사용한 '추천 키워드'라는 한국어 외래어 혼용 표현 대신 'Schwerpunkte(핵심, 화면 왼쪽 아래 동그라미 참고)'이라는 독일어를 썼다. 또한 'Foto(사진)'라는 독일 외래어 대신에 'Bild(사진, 오른쪽 동그라미 참고)'라는 독일어가 쓰이고 있다
ⓒ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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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 누리집(http://www.bundesregierung.de/)의 제목은 'Bundesregierung(연방 정부)'라는 독일어다. 한국 정부 누리집처럼 '포털'이라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 누리집이 사용한 '추천 키워드'라는 한국어 외래어 혼용 표현도 'Schwerpunkte(중심)'이라는 독일어로 나타냈다. 한국 정부 누리집의 '추천 키워드'는 '추천 검색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사진 표시도 'Foto(사진)'라는 독일 외래어 대신에 'Bild(사진)'라는 독일어 단어를 사용했다.

다른 나라들은 체계적으로 자국어 보호에 힘쓴다

언어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은 다른 나라들은 자국어 보호와 공공언어 순화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정부 내에 자국어 연구와 공공언어 순화를 총괄하는 기관인 '언어총괄국'을 두고 있다. 이는 총리직속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국립국어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보다 집중적으로 공공언어를 감독하고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터키에서 자국어 보호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터키어협회'는 일찍이 순터키어가 사라질 것을 우려했던 국회의원들이 만든 기관이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꾸준히 외래어를 순화하는 데에 힘써왔으며 외래어를 대체할 자국어가 없을 시 순터키어로 새 단어를 만들고 보급시켜왔다. 우리나라의 국어책임관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관련 기사 : "외국어 수준에 따라 국민 권리가 달라진다")과 다르다.

터키 이스탄불 출신의 시난 탄추(27)씨는 "현재 터키어협회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Selfie(셀피, 셀프카메라)'라는 단어까지 순터키어로 순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라면서 한국 정부가 이를 참고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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