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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바라본 경찰

하 수상한 시절이다. 사드 문제부터 시작해서 아직 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참사, 검찰 나리들의 비리, 경주 지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의혹, 전무후무한 여당 대표의 단식, 그리고 이번 백남기 농민의 죽음까지.

우리 집에서 이런 어지러운 정국에 가장 불만이 많은 이는 바로 아이들이다. 예전에는 저녁 먹은 뒤 설거지가 끝나고 씻고 나면 자신들과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었는데, 최근 들어 아빠가 뉴스 앞에 앉는 횟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빠의 별명을 하나 지어줬는데 '뉴스대장'일까. 게다가 아빠는 종종 조용히 하라고까지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 아빠가 책 읽어주기를
▲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 아빠가 책 읽어주기를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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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아빠의 뉴스 시청이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다. 평소 같으면 아빠가 8시 반에 잠자리에 들라고 하는데 뉴스를 보고 있을 때는 별소리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슬며시 아빠 옆에 앉아 함께 뉴스를 보는 아이들. 엊그제도 그렇게 뉴스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둘째가 물었다. 뉴스에서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서 쓰러지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빠, 지금 저 사람들이 경찰하고 싸우고 있는 거야?"
"응."
"저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 뭘 잘못한 거야?"
"응? 나쁜 사람들 아닌데.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건데 경찰이 그걸 막는 거야."
"그런데 경찰이 왜 사람들을 때려? 경찰이 때리면 나쁜 사람들 아냐?"
"항상 그렇지만은 않아. 저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경찰이 막으니까 싸움이 난 거야."
"이상하네. 경찰은 싸움이 나면 말리는 사람 아닌가?"

거리를 막은 경찰들 아이들에게는 보호로 보일려나?
▲ 거리를 막은 경찰들 아이들에게는 보호로 보일려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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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 경찰관이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는 아이에게 경찰이 때로는 무자비한 공권력이 되어 국민들을 제압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린이집에서도 경찰관은 좋은 직업 중 하나 아니던가. 게다가 녀석의 할아버지는 전직 경찰관으로 현재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재직 중이시기도 하다.

"아빠, 우리 예전에 저기 가지 않았어?"
"예전에 너희들과 몇 번 갔었지. 기억나?"
"그럼. 삼촌들도 만나고, 유모차 타고 그랬는데. 그럼 그때도 경찰이 우리 때리려고 했던 거야?"
"아니야. 엄마, 아빠 맞은 적 없잖아. 그때 경찰 아저씨들은 우리가 길거리 행진할 때 차 조심 하라고 지켜주고 있었잖아. 기억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뜨끔했다.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이나 청계천 광장을 갔을 때도 경찰은 항상 차벽을 만들고 살수차를 앞세운 뒤 도로점거는 불법이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요즘 현 정부가 보여주는 무모함을 볼 때 우리가 그때 무사했던 건 순전히 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추모 집회 아이들이 본 청계천 광장
▲ 세월호 추모 집회 아이들이 본 청계천 광장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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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아이들 광화문에서
▲ 촛불 든 아이들 광화문에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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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번에는 첫째가 물었다.

"아빠, 그럼 시신 탈취는 뭐야? 경찰이 와서 죽은 사람을 데리고 가?"
"응? 아냐. 죽은 사람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뉴스에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거야."

녀석은 여전히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듯 뭔가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서둘러 TV 채널을 돌렸다. 더 이상 TV를 보다가는 절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갑작스레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라고 종용하는 아빠와 뭔가 꺼림칙한 아이들. 어쨌든 난 그렇게 위기를 모면했다.

경찰을 경찰이라 부르지 못하는 비극

그렇게 아이들을 잠자리에 들여보냈지만 나 역시 찝찝한 건 매한가지였다. 녀석들의 대답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직업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직업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항상 '공무원', '내무부 산하 공무원', '서울시 공무원'이라며 대충 얼버무리셨는데, 내가 우연찮게 아버지 월급 명세서에 박혀있는 독수리를 보고 그제야 당신이 경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아버지의 직업을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어머니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손해가 컸으면 컸지, 절대 이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예를 드셨다. 당시 북한군이 넘어와서 가장 먼저 사살했던 이들이 군경의 가족이니, 혹여 다시 전쟁이 나면 우리 가족은 주민등록증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는 우리 사회에서 경찰이라는 직업이 결코 떳떳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일제강점기 순사부터 시작해서 군사정부의 하수인까지,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경찰은 '짭새'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사람이 좋다고 하지만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어쨌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던가.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경찰이라서 겪는 고충에 대해 말씀하셨다.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곤란한 일만 있으면 부탁하는데 그것이 참으로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부탁을 들어주면 그만큼 경찰이 사적인 인연에 휘둘리는 한심한 조직이 되고, 들어주지 않으면 매몰차다고 욕을 먹게 되는 상황. 어머니는 그것을 경찰이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숙명으로 받아들이셨고 그래서 아버지를 안쓰러워 하셨다.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어머니. 그러나 나는 어린 마음에 그런 어머니의 태도가 싫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싫었다. 경찰이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니고, 어쨌든 교과서에서는 경찰이 자랑스러운 직업 아니던가.

그래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경찰임을 더욱 강조하고 다녔다. 아버지가 경찰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머리가 굵어지면서 나 역시 아버지의 직업을 굳이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경찰이 공권력의 화신으로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버지가 부끄러운 건 절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시대 경찰로서 자신의 맡은 바 최선을 다하셨고, 보수적인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셨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신촌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다가 동교동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맞닥뜨렸지만 그들의 안전을 위해 차들을 막고 박수를 받았다는 아버지를 난 존경한다. 당시 그것이 아버지의 최선이었고, 그런 최선이 모여 역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경찰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은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국민의정부가 들어서면서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경찰은 공권력의 최전선에서 국가의 얼굴을 대신하고 있었지만, 세상이 점점 변하면서 경찰도 달라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주화 이후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고 있으니 그만큼 경찰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경찰을 만들지 말기를

2008년 5월 31일 동십자각 촛불집회 최초 물대포
▲ 2008년 5월 31일 동십자각 촛불집회 최초 물대포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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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믿음은 MB정권의 등장과 함께 깨졌다. 2008년 5월의 마지막 날, 경복궁 동십자각 앞에서 그들이 쏘는 물대포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경찰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10년 전 어머니가 그토록 부끄러워하셨던 그 경찰로 돌아왔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이후 경찰은 지금까지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몸소 확인시켜 주려는 듯, 시민들이 시위할 때마다 나와 물대포를 쏘며 국가 공권력을 과시했으며, 그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고, 심지어 많은 이들을 다치게 했다. 경찰은 늘 '합법'을 주장했지만, 그것은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이젠 사람이 죽었다. 그가 폴리스 라인을 넘었든, 국가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든 어쨌든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자신들에게 죄가 없다며 부끄러움도 없이 사과는커녕 부검을 하겠다고 오히려 악귀같이 달려들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잠든 서울대병원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 백남기 농민이 잠든 서울대병원 인간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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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난 이런 상황에 대해, 그런 경찰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아버지를 시스템의 일부로 이해하게 된 건 고등학생 그 언저리였는데, 나도 아이들이 그만큼 클 때까지 기다리며 경찰에 대한 설명을 유보해야 하는 것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경찰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직업으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 모든 것은 정부의 탓이다. 경찰 역시 군대와 마찬가지로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조직인 이상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조직 역시 사람이 만들어가는 터, 경찰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예의부터 지켜야 한다. 아무리 명령이 중요하다지만 그것은 경찰이기 이전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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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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