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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거리 예정일이 한참 지났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지방 갈 때 생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지방에 다녀온 게 벌써 열흘 전 일이다. 임신한 걸까? 아니면 완경 오기 전에 나타나는 생리불순인가? 완경 평균 나이를 검색해 보니 만 쉰이다.

5년이 남았는데 설마? 아니지 평균이 무슨 소용이람. 몇 년 정도는 빠른 사람도 있을 거고. 완경 전 생리불순이 마흔 중반인 지금 나타나는 게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만일 완경 전 생리불순이면 나는 내 몸의 변화를 어떻게 맞아야 하나?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임신이면? 분명히 피임 했다. 피임을 잘하면 뭐 하나? 모든 상품엔 불량이 있기 마련인데. 불량률까지 소비자인 내가 어찌 막겠나? 임신이면 낳아야 하나? 내 나이 마흔 여섯에 첫째는 스물, 둘째는 열 여섯이고 막내는 열 살. 그 아래 넷째까지?

첫째랑은 스무 살 차이고 막내랑 열 살 차이다. 아마 첫째와 둘째는 창피하다며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고 할 거 같다. 넷째한테 밖에선 '형(오빠)'이라 부르지도 못하게 할 게 뻔하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무슨 홍길동인가? 무엇보다도 나는 어떤가? 올해 임신이면 내년에 출산인데, 나이 마흔일곱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내 몸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그럼 병원을 찾아야 하나? 수술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 해야 후유증이 적을 거다. 요즘 낙태는 불법인데. 아이고 고민이 끝도 없다. 지금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 일단 임신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아는 게 먼저다.

일단 임신 검사기를 사러 가자. 어디서 사지? 집 앞 약국? 약사가 남편이랑 우리 집 애들 얼굴도 다 안다. 거긴 좀 아니다. 좀 떨어진 분식집 앞 약국으로 가자. 막내랑 떡볶이 사러 가면서 약국 들러 사면 되겠다. 그런데 그 약국 약사가 여잔가 남잔가?

막내더러 먼저 분식집 가서 떡볶이 시켜 먹으라고 했다. 막내는 내가 임신 검사기 사는 거 보면 당장 뜯어서 보자고 할 게 뻔하다. 약국에 들어가니 약사가 다행히 여성이다. 그런데 손님이 둘이나 있다. 손님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임신테스트기 하나 주세요. 생리를 안 해서요. 완경이 벌써 오는 건지?"

중년의 여성 약사니 뭘 아는 게 있을까 해서 슬쩍 물었다.

"완경이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요?"

약사분은 역시 내 마음을 알고 원하는 답을 해주신다.

"그렇긴 하죠."

약사의 답변이 반가워 냉큼 받아 먹었다. 그런데 완경 전 증세가 아니라면 임신이라는 말인데 이것도 반가운 소리는 아니다. 임신 검사기가 담긴 긴 상자가 바지 주머니에 들어간다. 상자 끝부분이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상의로 가렸다. 집에 가서 당장 해야 하나? 아니지 아침 첫 소변이 제일 정확하다고 하는데 내일 아침에 해야지.

갑자기 남편 생각이 난다. 난 이리 혼자 애면글면 속 끓이는데 남편은 천하태평이겠지. 약이 오른다. 이 불안감을 남편에게도 전해 줄까? 내가 임신했다고 하면 남편은 아마 놀라 자빠질 거다. 하지만 완경 전에 오는 증상이라면 남편은 '그게 뭐가 문제야?' 하며 불구경할게 뻔하다. 미리 말해 보았자 별 도움이 안 된다.

다음 날 첫 소변으로 테스트를 해야지 마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 첫 소변을 보면서 아뿔사 임신 검사기 생각이 났다. 결국, 아이들 학교 보내고 두 번째 소변으로 테스트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설명서를 꺼내 읽었다. 이제 5분만 지나면 결과가 나온다.

테스트기 옆에 시계를 나란히 두고 보았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임신 검사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두 줄이면 임신 한 줄이면 임신이 아닌데 줄이 한 개도 안 나타난다. 이것도 불량이야? 아니면 첫 소변이 아니라 그런가? 4000원 주고 샀는데 아고 돈 아까워.

임신 검사기를 또 사느니 이번엔 산부인과로 가는 게 낫겠다. 산부인과는 어디로 가나? 답답한 마음에 아이 셋인 친구에게 카톡을 넣었다.

사연을 이야기하고 '임신 검사기까지 불량이라 병원 갈까 봐' 하고 보냈다. 친구는 재미있다고 좋아 죽는다. 어쩜 부러워하는 눈치까지 보인다.

"그렇게 좋아? 사진 보내줄 테니 남편에게 보내 봐. 뭐라 하나."
"남편한테 못하겠다.... 너무 고뇌해서 쓰러질까."

검사 결과 한 줄이 나와있다.
▲ 임신 검사기 검사 결과 한 줄이 나와있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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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 웃는데 앞에 있던 임신 검사기에 줄이 하나 흐릿하게 나타난 게 보인다. 임신 아니다. 야호. 불량이 아니다. 흐흐 불량이라고 버리려 했는데 버렸으면 병원까지 갈 뻔했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도 카톡을 보냈다. "생리 예정일 지났어. 어떡하지?" 그리고 임신 검사기 사진도 찍어 보냈다. 남편 답장은 '눈물'이다. 남편은 한 줄이 임신 아닌 걸 알 리 없다. '비임신'이라고 하고 보냈다. 다행이라는 답이 왔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어."

남편의 답글에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남편 생일이 음력이라 깜박 잊었다. 남편 입장에선 생일에 아내한테 생일축하 인사는 못 받고 넷째 임신 소식을 받았으니 얼마 당황스러웠을까? 더 미안스럽다.

무엇보다 임신이 아니라니 좋다. 완경 전 증세에 대해선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당장은 좋다. 대책이랄 것이 뭐가 있을까? 산부인과 검진, 한의원 검진, 석류 먹기, 등산 가는 횟수 늘리기. 이렇게 나에게도 완경이 다가오고 있다. 지인이 도움 될 거라고 권해 준 책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도 읽어 봐야겠다. 어차피 겪을 일 알고나 겪어야지.


태그:#완경, #임신, #테스트기, #피임,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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