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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숲이 삶터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자나무 액으로 설탕(Gula Kelapa)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일상이 참 담백했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야자나무 숲. 그 사이의 움막들은 야자 설탕을 만들기 위한 움막들이다.
 드넓게 펼쳐진 야자나무 숲. 그 사이의 움막들은 야자 설탕을 만들기 위한 움막들이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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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마다 야자액을 채취하기 위한 플라스틱 통이 달려있다.
 야자나무마다 야자액을 채취하기 위한 플라스틱 통이 달려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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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쭉 뻗은 야자나무 숲의 담백함과 그들의 조촐할 삶이 닮아 보였습니다. 가지도 없이 원통 나무에서 바로 뻗어 나와 강한 바닷바람을 거뜬히 받아내는 질긴 잎과 야자나무 숲은 남자의 근육과 닮아 보였습니다. 통나무 끝 잎 사이에서 굵게 삐져나온 꽃대에 빼곡히 달린 단단한 야자 열매와 야자나무 숲 아낙네의 얼굴이 너무 닮아 보였습니다.

야자나무 그 촘촘한 조직 사이를 타고 올라 둥근 열매에 고인 투명한 야자나무 액, 그 미묘한 향과 맛과 그들의 마음씨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담갈색 천연설탕과 그들의 얼굴색이 꼭 닮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쪽 약 168km 지점 우중 근뗑(Ujung Genteng)지역 해안은 야자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인도양을 끼고 펼쳐진 야자나무 숲, 우후죽순처럼 솟은 것이 아니라 줄을 맞춰 펼쳐진 것이 오히려 이색적입니다. 처음부터 계획한 야자나무 숲인가 봅니다.

야자나무 숲에는 작고 허름한 움막들이 늘어서 있기도 하고 외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야자 설탕을 제조하기 위한 움막들입니다. 야자나무 숲 사람들은 야자열매를 따기 위해서, 또 야자나무 액을 수거하기 위해서 다람쥐처럼 야자나무를 오르내립니다. 

산더미로 쌓인 야자나무 열매 껍질과 움막, 그리고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야자나무를 아주 쉽게 오르내리는 야자나무 숲 사람
 산더미로 쌓인 야자나무 열매 껍질과 움막, 그리고 아무것도 의지할 곳 없는 야자나무를 아주 쉽게 오르내리는 야자나무 숲 사람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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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붉은 야자나무 열매
 속이 붉은 야자나무 열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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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꼭대기에는 나무마다 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통이 하나 둘씩 매달려 있습니다. 속이 붉은 야자열매였습니다. 당도가 높고 약성이 뛰어나다는 야자열매입니다.

채취한 야자수액을 큼지막한 플라스틱 통에 모아 맨 어깨로 지고 움막으로 옵니다.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가마솥에 붓고 다섯 시간여를 된 불로 끓이면 야자 설탕이 된다고 했습니다. 끓이고 있는 액체를 국자로 떠서 맛을 봤습니다. 달고 향이 좋았습니다. 조금 맛을 보았을 뿐인데 속을 훑는 느낌이 들 정도 진액이었습니다.

수액을 채취해서 맨 어깨로 지고 오는 사람
 수액을 채취해서 맨 어깨로 지고 오는 사람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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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액을 끓이는 아궁이와 솥 그리고 끓는 액이 넘치지 않게 하는 대나무 발
 야자나무 액을 끓이는 아궁이와 솥 그리고 끓는 액이 넘치지 않게 하는 대나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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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설탕을 만드는 부부
 야자 설탕을 만드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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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안에 발이 둘러쳐 있습니다. 이 발로 인해 아무리 센 불로 장시간을 끓여도 넘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발안에서 끓는 수액이 가마솥 테두리보다 훨씬 높이 끓어오르는 데도 수액이 발을 타고 흘러내릴 뿐 넘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것에 비해 삶의 지혜가 커보였습니다.

야자나무 열매 안 벽의 하얀 살을 긁어내 간식거리를 만드는 과정. 색소를 섞어 적당한 크기로 뭉쳐 말린다음 튀기면 맛있는 과자가 된다고 했다.
 야자나무 열매 안 벽의 하얀 살을 긁어내 간식거리를 만드는 과정. 색소를 섞어 적당한 크기로 뭉쳐 말린다음 튀기면 맛있는 과자가 된다고 했다.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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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천연 설탕, Gula Kelapa를 2~3일에 한 번씩 중간 상인이 수거해 간다고 했습니다. 여차로 수입을 물었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는 정도예요."
"그게 얼만데요?"

망설이다가 그가 말한 월수입은 270만 루삐아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부부가 함께 한 달 수고한 대가가 한화로 약 22만 원정도입니다.

팔 설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일행 네 가족이 사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었습니다. 더 모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도심의 마트에 비하면 너무 헐값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으로 확인한 천연 생산품이기에 여행 선물로 썩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자나무 숲이 삶터인 가족. 할머니와 9살 아이사 그리고 아이사의 아빠.
 야자나무 숲이 삶터인 가족. 할머니와 9살 아이사 그리고 아이사의 아빠.
ⓒ 손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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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숲 사람드이 만든 천연 설탕
 야자나무 숲 사람드이 만든 천연 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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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숲 아홉살 소녀 아이사
 야자나무 숲 아홉살 소녀 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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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무 숲이 삶터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아홉 살 소녀도 만났습니다. 소녀 이름이 아이사(Aisa)라고 했습니다. 소녀에게서 야자 설탕 향기가 났습니다.

야자나무 숲 사람들은 야자나무가 사랑스러운가 봅니다. 버릴 것이 없다고 자랑을 합니다. 나이 먹은 나무는 목재로 쓰고, 잎은 빗자루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열매의 수액은 설탕을 만들고, 껍질 벽에 붙은 하얀 살은 긁어모아 튀겨서 과자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열매껍질은 공예품 재료로 쓰기도 하며 나머지는 좋은 땔감이 된다고 했습니다.

야자나무 숲 정취와 야자나무 열매 액의 은근한 맛과 향이 오래 잊히지 않을 여행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도네시아 한인 커뮤니티 인도웹에 실은 내용을 고친 것입니다.



태그:#야자 설탕, #야자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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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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