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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깝게 지내는 미국인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지 십 년이 다 됐습니다. 그 전에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연극 지도를 한 선생님이었지요. 유수한 대학에서도 알아줄만큼 잘 나갔다고 합니다. 오랫만에 저녁을 같이 하면서 근황을 얘기하다가 그가 대뜸 물어왔습니다.

"Richard, 네 인생의 목표는 뭐냐?"
".... 엄....내 주변에 사람들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거. "^^
"..... ? 그럼 그 목표를 잃어버리고 열정마저 없어지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래?"


올해 60인 이 양반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이 자기 얘기를 하고 있어 보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힘들어 보입니다. 점점 심각해지더니 이내 속을 털어놨습니다. 노후를 위해 필리핀에서 주유소 사업을 하려고 그간 모아둔 돈을 거의 다 투자했는데 앞이 안보인다는 거였습니다. 앞서 투자했던 곳에서는 이미 2년간 한푼 건지질 못한 상태라네요. 그래서 인생의 목표와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거지요.

40대 중반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살아난 그였습니다. 무일푼으로 혈혈단신 한국에 와서 십년을 애써 모아 노후를 준비하면서 나름 삶의 동력을 삼아온 것인데 그 일로 의욕을 상실한 듯 보입니다. 젊어서야 그러려니 하련만 늘그막에 맞는 인생의 상실감이 경제적인 문제일 땐 이만저만 불안한 게 아니지요.

사는게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걸립니다. 하지만 돈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힘이 있습니다. 풍족함이지요. 이 세상의 돈은 온 우주가 다 누릴 수 있을 만큼 풍족합니다. 인간의 끝간데 모를 탐욕이 그 근원적 풍족함을 가립니다. 그 풍족함을 누릴수 있는 방법이 돈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돈이 가진 지극히 단순한 진실, 나누면 풍족해집니다. 움켜쥐어도 항시 모자른데 나눠야 한다니 어려운 거지요. 나누는 사람의 마음만 풍족해지는게 아니라 그 양 자체가 풍족해집니다. 흐르는 물은 맑고 양이 풍부하지요. 끊임없이 흘려보내도 비가 와서 골짜기마다 쏟아져 수량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그 풍족함은 하늘이 주는 선물인 듯 합니다. 

일각에선 부를 하늘의 선물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부자다운 부자를 못봐서 그렇지요. 나누면 더 풍족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나누어 함께 풍족함을 누리는 사람을 '부자'라고 하지요. 저는 저커버그를 '부자'라고 부릅니다. 개미들의 한숨과 땀을 그러모아 그리 많이 갖고도 모자른 듯 움켜쥐는 재벌들은 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없습니다. 부자가 아니라 욕심쟁이겠지요.

부자와 욕심쟁이는 양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적게 가지고도 나눌줄 모르면 욕심쟁이일 수 있고 많이 가지고도 나누는 법을 알면 부자가 될수 있을 듯 싶습니다.

톡토독 톡. 톡. 톡.

사무실 뒤뜰 아름드리 높은 키 상수리나무에서 가을만 되면 도토리와 꼭 닮은 열매를 떨굽니다. 아침마다 뒤뜰을 울리는 그 소리가 자못 정겹습니다. 세그루나 돼서 꽤 많이 떨어지기에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연신 줍기 바쁩니다. 묵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랍니다.

고개를 들어 가을빛  타는 가지들을 바라봅니다. 

톡토독 톡톡.
무엇을 그리 떨구느냐.

한여름 따가운 볕을 가리느라 그늘이 되어주고 가을 너머 키큰 나무 오르기 어려우니 스스로 떨구나 봅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몸짓이겠지요. 비우고 내어주어 가벼운 몸으로 앙상히 시린 겨울을 납니다.

상수리 진액을 찾아 날아오던 말벌들도 이제는 모습이 뜸합니다. 벌이 위험하다 해서 누군가 진액을 막으려고 상수리 허리마다 두터운 천으로 감아놨습니다. 상처를 싸매놓은 것처럼 보기가 안쓰럽습니다. 허리를 동여매고도 떨구어줍니다.

톡토독 톡톡

살아가는 일이
그늘을 내어주고
진액을 내어주고
열매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톡토독 톡톡톡.

뒤뜰에 있는 상수리나무입니다. 지난해 앙상한 가지로 혹독한 겨울을 난 것이, 저리 푸르러 풍족히 내어주기 위함이었나 봅니다. 열매를 다 내놓으면 곧 가지마다 잎을 떨구어냅니다. 상수리는 우리네 어머니 같습니다.
▲ 상수리나무 뒤뜰에 있는 상수리나무입니다. 지난해 앙상한 가지로 혹독한 겨울을 난 것이, 저리 푸르러 풍족히 내어주기 위함이었나 봅니다. 열매를 다 내놓으면 곧 가지마다 잎을 떨구어냅니다. 상수리는 우리네 어머니 같습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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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상수리나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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