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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9월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고3은 기말고사가 끝났다. 지난 8월 말,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중간고사를 치렀고, 꼭 한 달여 만에 다시 기말고사를 치르게 됐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수험생에 대한 학교 나름의 배려인 셈인데, 시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비슷한 편법을 쓴다. 내신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수능 준비에 매진하라는 뜻이다.

아이들에게는 명색이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마지막 학교 시험인데, 놀랍게도 여느 때와 같은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믿기 어렵겠지만, 몇몇 아이들은 기말고사가 치러진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며 당일 아침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시모집 원서접수 기간이었던 지난주, 자기소개서 쓰느라 경황이 없다 보니 정작 며칠 뒤 있을 기말고사는 뒷전이었던 것이다.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기말고사... 답안지는 난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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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MR 용지
ⓒ 한국산업인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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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기말고사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입시에 들어가는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대학교 등 일부 대학의 정시모집 때 반영되는 경우가 더러 있고, 무엇보다 향후 재수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라면 3학년 2학기의 내신 성적이 발목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대학입시에 '올인'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아예 재수를 작정하고 내신 등급을 올릴 기회로 삼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장 별 필요도 없는 시험에 최선을 다할 오지랖 넓은 아이는 없다. 외려 다들 지난주 내내 수시 원서 준비하느라 고생했으니 기말고사가 치러지는 이 사흘간을 '보상 휴가'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받은 시험지를 아예 들춰볼 생각조차 않고, 시작종과 함께 책상 위 쿠션에 머리를 파묻고 자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런 마당에 그들이 적어낸 오엠아르(OMR) 답안지가 멀쩡할 리 없다. 일일이 마킹하는 게 번거로워선지 한 줄로 죽 그어버린 아이, 답안지에다 마름모나 하트를 그려놓은 아이, 그런가 하면 엉뚱하게 좋아하는 연예인과 걸 그룹의 이름을 적어놓은 아이도 있다. 심지어 학년, 반, 번호조차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고, 만사가 귀찮았던지 그냥 백지로 제출한 답안지도 더러 있다. 이는 감독 교사 역시 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때라면 답안지를 읽는데 10분이면 족할 일이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카드가 판독기를 통과할 때마다 수시로 오류를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뜨기 때문이다. 순간 답안지에 '장난질'을 해댄 아이들에게 화가 치밀다가도, 굳이 이런 시험을 치러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한편으론 대학입시에 종속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비루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이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에선 3학년 2학기는 아예 '없는 학기'나 마찬가지다. 수업도 없고, 시험도 없고, 학교생활도 따로 없다. 사실상 수업은 3학년 1학기로 모두 끝나고, 이번처럼 교내 시험도 있으나 마나다. 또,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 활동 등도 기록으로만 운영되는 교육과정일 뿐이다.

더욱이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되면서, 담임교사는 아예 3학년 1학기 때부터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만 온 힘을 쏟게 된다.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분주하게 지원 대학과 학과에 맞는 전형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나름 수능 기출문제를 풀며 정시모집을 준비한다. 대학입시 전형의 시간표대로 교사와 아이들이 '각자도생'하는 게 고3 교실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 까닭에, 3학년 2학기 때 최고의 수업은 '자습'이다. 아이들마다 지원하려는 대학이 다르고 준비하는 전형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수업 자체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교실 내 40명 가까운 아이들의 다양한 진로에 대해 일일이 맞춤 상담을 한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담임교사의 개인별 진학 지도란 오로지 학력고사나 수능으로만 대학 가던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개인별 진학 지도는 고사하고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챙기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고3 담임교사의 사전엔 여름방학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특히 국어 교과를 담당한 경우라면 학년 전체 아이들이 가져오는 자기소개서까지 일일이 첨삭 지도하느라 주말까지 반납하는 지경이다. 아이들도 이즈음엔 손에 연필을 쥐는 대신 컴퓨터 자판을 더 열심히 두드려야 한다. 가방마다 교과서나 문제집 대신 개인 노트북이 들어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무기력한 3학년 2학기, 대책은 없을까?

 9월 고1, 2 전국연합학력평가 및 고3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3 교실 모습 (이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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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파행'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예전 같으면 수능이 끝난 이후에 벌어졌을 일이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대학별로 수시 전형 합격자 발표가 빨라지면서 고3 교실은 더욱 어수선해졌다. 이미 '대학입시가 끝난' 아이들부터 코앞에 닥친 수능을 위해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야 하는 아이들까지 한 교실에서 공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대학에서는 입시제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선 고등학교의 구태의연함을 우선 탓한다. 반면, 고등학교에선 정규 교육과정을 무시한 대학의 '갑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나무란다. 말하자면, 대학입시 전형 방식은 날로 다양해지는데 학교의 프로그램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대학의 지적에, 정규 교육과정이 대학입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맞서는 형국이다.

해마다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교사와 아이들 누구도 무기력에 빠진 3학년 2학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막상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중에는 차라리 일찍 하교시켜 달라고 공공연히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대학입시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대학이 쥐고 있다. 진학 실적에 목매단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대학의 요구가 무엇이든 간에 늘 '을'일 수밖엔 없는 탓이다. 대학은 '학종이 대세'라고 떠들어대지만 말고, 그것이 일선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할 의무가 있다. 나머지는 고등학교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방치해선 곤란하다.

하다못해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도 시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강구해야하지 않을까. '고등학교는 2년만 공부하고 나머지 1년은 대학입시를 위해 서류 챙기는 시간'이라는 조롱은 이제 그만 사라질 때도 됐다. 정규 교육과정 위에 군림하는 대학입시 전형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하나. 아직 3학년 2학기는 석 달도 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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