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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는 길 각오를 단단히 했다. 엄마를 그냥 집에 두었다간 큰일을 치르게 될 것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팔순의 엄마는 2년 전부터 한여름에 식사를 잘 못했다. 소화가 안 되면 굶었고 기운이 떨어지면 영양제를 한두 대 맞으며 더위를 버텼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위가 길었다. 7월 말부터 밥을 못 먹고 다섯 차례의 영양제로 간신히 버티며 굶고 있던 엄마를 집에 그냥 둘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틀 전에도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선뜻 나서지 못하셨다.

8월 16일 화요일, 언니와 나는 엄마를 설득하러 친정에 갔다. 엄마는 전기 옥매트에서 뜨끈하게 자야 하고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언니가 아침저녁 출퇴근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엄마도 얼떨결에 동의했다.

친정과 우리 집은 안 막히면 택시 타고 고속도로 20분 거리로 출퇴근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하자는 말은 진심은 아니었다.

엄마를 모시고 집에 와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식욕 당기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피를 뽑고 영양제를 맞았다. 엄마 몸무게는 34kg으로 엄마 팔엔 거죽만 남아 있다. 영양제를 맞아 기운이 난다는 엄마에게 미음을 드렸다. 잘 드시니 한 시름 놓였다.

"나 집에 갈래."

오후 다섯 시가 넘었을 때 엄마가 한 말이다. 간신히 모셔왔는데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다.

"엄마, 나 아침에 일찍부터 엄마 모셔오느라 너무 힘들었어. 데려다드리진 못할 거 같아. 데려다 드리는 건 큰 애가 하기로 했으니까 이따 들어오면 모셔다드리라고 할게."

엄마는 알았다고 하셨다. 대학생인 첫째에게 늦게 들어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이내 잠이 들어서 밤이 늦도록 깨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니 그간 엄마는 배가 고파서 밤에도 잠을 편히 들지 못했을 거다. 이렇다 죽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드셨겠지. 옆에서 잘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며 홀로 외로움도 느끼셨을 거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잠들던 일이 생각났다. 이불을 막 덮었을 때 느껴지던 찬 기운에 몸을 움츠리면 엄마는 팔과 다리로 내 몸을 감싸 주었다. 어린 내가 잠들 때까지 품어주던 엄마가 이젠 팔순의 거죽만 남은 몸으로 내 품에서 곤히 잠이 들어있다. 왈칵 눈물이 솟는다.

한참 잠을 자다가 말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인가 보니 엄마가 거실에서 통화 중이다. 아버지가 단속은 잘하고 주무시는지 걱정되어서 전화하셨단다. 무선 전화기를 쓸 줄 모르는 엄마는 거실서 자는 둘째를 깨워 전화했다.

새벽 두 시다. 둘째가 얼마나 놀랐을까? 아버지는 또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는 배려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언제 저렇게 변하신 걸까? 엄마가 낯설다. 다시 잠들었는데 엄마가 "어멈아" 하고 깨웠다. 화장실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고.

새벽 5시에도 엄마가 불렀다. "배고파. 미음이라 배가 빨리 꺼져." 죽을 끓여 가져다 드렸다. 다 드시고 집에 가신다고 했다. 미치겠다. 이유는 아버지 혼자서 전기렌지에 밥을 못한다는 거였다. 옆에서 엄마가 잔소리해야지 안 그러면 위험하다고. 친정에 전화했더니 다행히 남은 밥이 있단다. 오후에 가는 걸로 타협을 보았다.

사용기한 지난 안약을 보니 자책감이 들었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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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식사량이 늘면서 그간 못보던 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보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염증 생긴 눈은 치료해야 했다. 몇 년 전부터 엄마 눈은 백내장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석 달에 한 번씩 영등포의 A 안과에서 처방전을 받아 오셨다.

그런데 이번 여름엔 눈에 염증이 생겼지만 A 안과에 가지 못하고는 동네 한의원에서 침만 맞은 모양이다. 침을 맞아서 그런지 눈두덩이가 거무스름하게 되었다.

안과의사인 지인에게 엄마 안약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사진을 찍다가 보니 약 중 하나의 사용기한이 넘은 걸 알게 되었다. 저 약을 넣어 염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안과의사가 다음 날 출근길에 들른단다. 고맙다.

사용기한 지난 안약을 보니 자책감이 들었다. 잘 사시겠지 편하게 생각하다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닌까? 이제부터는 꼼꼼하게 무슨 약을 드시는지 어느 병원에 다니는지 챙기고 살펴보아야 한다. 바쁘더라도 꼭 그래야 한다.

그런데 나와 우리 형제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제 인구 중 노인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데 언제까지 자식들이 이런 일까지 챙겨야 하나? 노인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큰 글씨 설명서'가 약에 첨부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도 배려하는 사회는 진정 불가능한 걸까?

오후에 집에 가겠다던 엄마는 안과 의사가 온단 말을 듣고 걱정을 했다. 의사가 왕진 오는데 엄마가 집에 가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나. 덕분에 수요일 밤도 엄마는 우리 집에서 잘 수 있었다.

목요일 아침 안과 의사가 엄마 눈을 보러 들렀다. 염증 약을 저녁에 가져다준다니 눈도 좋아질 거다. 엄마는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변을 누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힘을 주느라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식사만 잘하면 변도 잘 볼 수 있을 것이란 내 예상이 틀렸다.

단식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전화해서 장운동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복숭아 갈아 먹이기, B 효소 먹이기를 권했다. 효소를 주문하고 복숭아를 사다 갈아드렸다.

오후에 병원에서 엄마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 갑상선 수치 빼고는 다 좋았다. 갑상선 수치도 정상은 아니지만 약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세 끼 식사 챙겨드리고 먹는 약 드리고 안약까지 두 가지 넣어드리다 보니 하루가 정신없이 짧다. 물론 방학이라 집에 있던 아이 셋의 밥도 챙겨야 했다.

기침하는 10살 셋째, 축농증 초기라며 의사에게 꾸중을 들었다

금요일, 기침하는 10살 셋째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의사는 축농증 초기라며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고 꾸짖었다. 머리가 멍했다. 엄마 오신 뒤, 아이 기침 소리를 자각하지 못했다.

저녁에 약속이 있다. 죽 끓여두고 첫째에게 할머니 돌봐 드리라 하면 될 거 같았다. 엄마도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두 시간 뒤 엄마가 집에 가겠다고 했다. 잘 드시고 눈도 좋아지고 있는데 지금 친정에 가면 나빠질 거 같았다.

"엄마, 내가 약속 있다고 하니까 그러는 거지? 나 안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내일 가."
"아니야. 허리 아파서 그래. 전기 옥매트에서 뜨겁게 자야 안 아프다고. 너희들은 젊으니까 내 마음 몰라."

오빠가 엄마 뵈러 온다고 했는데 엄마는 오빠 차 타고 친정에 가겠다고 했다. 내가 괜히 약속 있다는 말을 꺼내서 이 사달을 만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더는 말릴 방법이 없다. 허리 아프다고 했던 엄마가 걱정돼서 정형외과에 가자 권했다. 물론 엄마와 또 실랑이를 했다.

"엄마, 의사가 수술하라고 해도 엄마가 싫다고 하면 내가 절대 수술하라고 안 할 테니 그냥 진단만 받고 오자. 응 알았지?"

병원 다녀온 엄마와 오빠 표정이 밝았다. 디스크 조금 있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니 다행이다.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여섯 개의 장바구니에 짐을 바리바리 싸서 친정으로 갔다. 며칠 뒤 더 나빠지면 어쩌지.

생각해 보니 내가 참 엄마를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던 엄마는 안 아픈 엄마일 뿐이다. 배려심 많고 사려 깊은 엄마는 과거다. 늙고 아픈 엄마에 대해선 나는 아는 게 없다. 한발 한발 엄마에게 걸어가고 있다.


태그:#부모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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