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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아빠, 엄마 참관 수업을 한다는데...

"이 날 좀 유치원에 가 주면 안 될까?"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아빠, 엄마들 참관 수업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운동회 때처럼 아빠, 엄마가 같이 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교실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둘 중 한 명만 참관할 수 있다니 말이 아빠, 엄마들 앞이지 사실상 엄마들만 잔뜩 올 것이 분명한 참관 수업에 저는 당연히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와서 엄마가 안 가면 서운해 할 것인데.."
"나 그날 아침에 회의가 잡혀서 빠질 수가 없는데..."

지난 운동회 때 아들이 저를 보고도 옆에 엄마가 없는 것을 보며 실망했습니다. 그 때 일을 떠올리도록 말을 슬쩍 흘리며 아내의 마음이 동하기를 기대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날 중요한 회의가 있다며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뜻을 더 확고히 했습니다.

운동회 때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아빠인 저까지 안 가서 아들이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는등 마음이 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운동회처럼 아내가 점심 시간에 올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우러 가면서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가도 엄마가 안 왔다고 실망하면 가봐야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요.

"오늘 엄마는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못 온다는데. 그래서 아빠가 가기로 했는데? 괜찮아?"
"엄마 못 온다고?"

저는 사실 아들이 엄마가 못 온다는 이야기에 크게 실망할 것이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좋아."

그런데 의외로 아들은 실망한 기색 전혀 없이 좋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아? 진짜?"
"응. 엄마 오면 잔소리만 할 거잖아. 아빠는 나랑 놀아주고!"

아들의 대답을 들고 처음에는 실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아직 5살밖에 안 된 아들이 벌써 엄마가 걱정해서 하는 말을 잔소리로 듣고 있다는 것과 제가 너무 버릇없게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일단은 아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점에 힘을 얻어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후 유치원에 갈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멋있게 입으려 노력했지만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오히려 찌기(?) 시작한 살에 도통 맞는 옷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몸에 맞는 옷을 입자니 너무 편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바지는 몸에 꽉 끼는 것을 입고 와이셔츠는 조금 큰 것을 입은 후 카디건으로 뚱뚱한 몸을 최대한 가렸습니다.

그리고 화장대에 앉아 아내가 쓰는 선크림을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가려도 비대해진 몸을 어찌할 수 없으니 얼굴이라도 좀 더 화사하게 보여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내가 쓰는 선크림은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기능도 있으니 바르면 조금 더 화사해 보이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제 나름대로 깔끔하게 입고 화사하게(?) 꾸민 뒤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유치원 도착. 9시 5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제가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 외에 다른 학부형은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되었다'며 신나했습니다.

아마도 저만 아빠고 다른 학부형들은 다 엄마일 테니, 그 사이에서 혼자 견디려면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없으니 굳이 그런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될 듯했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 있기에 반대편 건물에 있는 성인 화장실에 가서 마지막으로 외모를 점검해보기로 했습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엄마, 아빠 외모가 멋있으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들에게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모를 점검하러 간 것입니다.

엄마, 아빠 외모가 멋있으면 아이들 자존감이 높아진다는데...

화장실에 가 거울을 보며 '결혼식 전 살이 아주 많이 빠졌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름대로 꾸미고 와서 괜찮다' 생각하고 다시 유치원 교실이 있는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곧 멍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 잠깐 사이 유치원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엄마들이 잔뜩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라 건물 밖에 서 있는 것이 추웠지만 엄마들 사이를 뚫고 교실로 들어가야 한다 생각하니 그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유치원 교실로 엄마들이 모두 들어갔습니다. 엄마들이 들어간 후 저도 유치원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유치원 교실에 가니 이미 많은 엄마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가 서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자기들 엄마나 아빠가 왔는지 보려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제 아들도 뒤를 돌아보다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혹시나 실망하면 어쩔까 싶었지만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다시 앞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중국어 수업. 사실 아들이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궁금해서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들은 졸릴 때면 머리를 긁는 버릇이 있는데, 자꾸 머리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시작한 지 한 10분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졸려 하다니...

예전에 유치원 선생님이 아내에게 아들이 수업 시간에 떠든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 떠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수업 중간에 나가서 노래도 부르고 상황극 놀이에도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관 수업인줄 알았는데 참여 수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 수업일정표 참관 수업인줄 알았는데 참여 수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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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수업 시간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진짜 오기 싫었던 이유는 단순한 '참관' 수업이 아니라 참여 수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일 처음 아내에게 유치원 참관 수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두렵기는 했으나 아들을 위해 가겠다 했습니다. 진짜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이 참여 수업 때문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참여 수업 도중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집중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참여 수업이 미술과 체육이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체육, 미술 등 예체능에 소질이 없었고 재미조차 못 느꼈기에 아들과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제게 재앙과도 같은 일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아이들과 같이 만든다이지 사실상 엄마나 아빠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분명할 것이라 생각하니 수업 시작 전부터 스트레스가 막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 난관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두 번째 수업 시간에 제가 해야 할 '사모 만드는 법'을 알려주시는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저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아들과 같이 사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신을 집중해 만들었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다가와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역시 아버님은 다르시군요."

만드는 것에 소질이 없기에 칭찬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칭찬인가 하는 순간, 사모 양옆에 붙어 있는 하얀색 부분을 떼어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사모 양쪽에 달린 부분을 붙일 수 있게 사모 원통에 이미 하얀색 양면 테이프가 붙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다소 민망했지만 실수를 만회하고자 사모를 꾸밀 수 있게 마련된 색종이들을 사모에 예쁘게 붙이려 노력했습니다. 만들기에 소질이 없음에도 생각보다 잘 만들었다 생각하고 만족하며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옆의 엄마들이 만든 것은 깔끔하고 예뻤습니다.

제가 붙인 것들은 색종이 뒤로 본드인지 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다 삐져나온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소 당황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또 한 번 제게 결정타를 날려주었습니다.

색종이 뒤로 풀인지 본드인지가 삐져나와 있다.
▲ 사모 만들기 색종이 뒤로 풀인지 본드인지가 삐져나와 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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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체육 모두 싫어하는데, 두 가지를 참여수업에서 한다니요

"아빠 다른 애들은 다 끈 달았는데?"

옆을 보니 다른 남자 아이들은 사모에 다 끈이 달려 있었습니다. 모자에 쓰고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모 만들기 시간이 다 되었기도 했고 끈을 만드는 방법은 자세히 보지 않은 터라 아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일단 그냥 쓰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 머리에 잘 맞는 줄 알았는데 사모 만들기를 끝내고 아이들이 다시 모여 앉은 모습을 보니 제 아들만 사모를 약간 삐딱하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금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써 무시하며 넘겼습니다.

어쨌든 두 번째 시간도 끝나고 이제 참여 수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 시간에 아들과 같이 춤을 춰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 머리가 혼돈의 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저는 미술도 체육도 모두 싫어합니다. 둘 중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미술을 택할 만큼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데 게다가 춤을 춰야 하는 것이라니.

체육실로 이동해 유치원 선생님 두 분이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를 들려주고 어떻게 추는지를 가르쳐주셨지만 제 머릿속은 그야말로 하얀 백지 상태였습니다. 아무 것도 안 들리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상태라고 할까요.

게다가 제 아들은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나는지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라고 하니까 춤을 추기는 했지만 춤을 추는 동안은 멍한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아빠 팔짱 끼고 돌아야지."

자기도 잘 못 추면서 너무나 당당하게 저를 가르치려 한 아들이 없었다면 더 당황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춤을 추는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지가 작아 앉아 있기가 너무 불편했습니다.

잘못 앉으면 바지가 찢어질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자세를 잘 유지하고자 사투를 벌이는 순간 유치원 선생님 말이 귀에 들렸습니다.

"이 줄에서는 유일한 아버님께서 이야기를 해 보실까요?"
"네 질문이...?"
"소감이요."

소감. 소감을 말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두 번째 참여 수업이 시작된 후로 아들을 위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행동을 하려 노력했으나 사실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체육실로 이동해서는 바지가 너무 작아 앉을 때마다 찢어질까 신경이 쓰여 머릿속이 더 복잡한 상태였습니다. 여기 어디인가 난 무얼하고 있는가 이런 상태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순간적으로 제 진심을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아 정신이 없으셨어요? 원래 우리 친구들이 평소에는 더 잘 하는데.."

말을 하고 보니 제가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정신이 없는 상태라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것인데 선생님 입장에서는 수업이 너무 산만했고 별로였다고 말한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멋있게 말을 하면 아들에게도 더 멋있어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다소 바보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감을 말하고 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보니 아들은 다른 남자 친구와 같이 개구리 자세를 하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활발한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때로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정신이 없어서'라는 답변을 하다니... 제 스스로가 한심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참여 수업이 끝나고 다시 원래 교실로 돌아가면서 속으로 이런 저런 답변을 혼자서 다시 만들어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빠, 빨리 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들 때문에 그런 생각도 곧 접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수업 시간! 아이들은 밥을 먹고 부모들은 소감문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소감문이라도 멋있게 쓰고 싶었지만 글씨를 워낙 못 써서 길게 쓸 수가 없어 그저 '좋았습니다'라는 말만 쓰고 선생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너무 떠들어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원래 그게 당연한 거죠."

괜찮다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듣고 보니 우리 아들이 평소에 생각보다 많이 떠든다 싶어 조금 죄송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 다행이라 생각하고 밥을 먹는 아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습니다.

밥으로 나온 김밥 중간 부분에 들어있는 야채가 먹기 싫다고 중간 부분을 손으로 다 밀어내고 밥하고 김만 먹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혼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과거 저에게 혼나고 엄청 놀라 한동안 아들이 저를 피해다닌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집사람이 가능하면 혼내는 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했고 저도 아들과 관계 회복을 위해 그 후로는 친한 친구 같은 아빠로 역할을 한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혼내는 것이 또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한 것은 결국 아내에게 아들이 밥 먹을 때 야채를 골라냈다고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참관 수업, 아니 참관 수업을 가장(?)한 참여 수업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최근 방송되고 있는 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주인공 진정석(하석진 분)이 혼자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항상 마시고 싶었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참았던 맥주를 드디어 마시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쩐지 그날은 맥주로 저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술남녀' 진정석이 늘 하는 말처럼 '퀄리티 있는 안주'와 함께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습니다. 저는 퇴근을 늦게 하는 편이라 집에 가면 보통 아내와 아들이 모두 자고 있어 요리를 해 먹기는 좀 그렇거든요.

그래서 진정석처럼이 아닌 '혼술남녀'의 여주인공 박하나(박하선 분)처럼 과자를 안주 삼아 먹기로 하고 과자를 사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사람이 고생했다며 만들어준 어묵국
▲ 퀄리티 있는 안주 - 어묵국 집사람이 고생했다며 만들어준 어묵국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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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에 가니 아내가 "오늘 고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사 들고 온 맥주와 과자를 보더니 '퀄리티 있는 안주'를 만들어주겠다며 어묵국을 해주었습니다. 집사람이 해 준 어묵 국물을 마시고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니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지난번 운동회에 다녀온 후에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옆에 있는 집사람 생각이 더 많이 났습니다. 아침에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올 것'이라며 아들이 운동회 때 실망했던 이야기를 했을 때, 집사람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것이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집사람도 사랑하는 아들 수업에 참여하고 싶었을 것인데 제가 맞벌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안타깝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집사람이 아들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제가 더 노력해서 채우자는 생각을 하며 집사람을 위로할 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그게 위로였을지 걱정이 되네요. 제가 집사람에게 위로라고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근데 율이가 엄마는 오면 잔소리만 한다고 내가 오는 것이 더 좋다고 했어."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왔는데 자기만 아빠가 온 것이 정말 아들은 좋았을까 하는. 그래서 5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이기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아들이 저와 집사람의 상황을 생각해서 운동회 때와 달리 이번에는 괜찮은 척 한 것은 아니었을지. 진실이 어느 쪽인지는 아들이 좀 더 크면 물어보겠습니다.

정말 혹시라도 제 생각대로 대답한다면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은 아들이 저를 더 좋아한다고 믿고 싶으니까요. 엄마보다 아빠가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실 몇 번 없으니까 말입니다.


태그:#유치원, #유치원 참여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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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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