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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일요일 오후, 316일을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버티던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70대 노인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이후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살인 진압과 국가 폭력에 대해 무려 10개월째 조사중이라는 말만 반복한 검찰은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고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도 없었다.

돌아가신 직후 서울대 병원을 중심으로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부검이야기가  돌았고 시신침탈이 우려된다는 소식이 현장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SNS로 끊임없이 올라왔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찰은 병원 주변에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피어오르는 분노와 무력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결국 저녁 여덟시가 넘어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강릉에서 출발한 저녁 8시 40분 서울행 버스

경찰은 그날(25일) 자정을 앞두고 결국 시신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백남기 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있을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강제부검을 반대하고 진상규명을 바라는 시민들이 바닥에 은박돗자리를 깔고 시신이 있는 지하 1층 입구와 정문, 후문 쪽에 모여 있었다.

나처럼 지방에서 소식을 듣고 올라온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언제 영장이 받아들여지고 경찰이 집행을 하러 밀고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새벽을 넘기면서 걱정을 참지못해 택시를 타고 도착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몸으로 막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연대가 느껴졌다.

첫번째 부검영장이 기각된 26일 아침 6시 무렵. 그러나 경찰은 부검영장을 재 청구했다.
 첫번째 부검영장이 기각된 26일 아침 6시 무렵. 그러나 경찰은 부검영장을 재 청구했다.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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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터올 무렵, 경찰의 부검영장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안실 밖에 배치된 경찰버스가 빠지는 모습이 보였고 사람들사이에서 약간의 긴장이 풀어지고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곧 그날 늦은 밤, 부검 영장을 재청구했다.

강릉에 거주하고 있어 저녁 촛불집회까지만 참석할 수 있었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경찰의 부검 영장 재청구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는 다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하고, 다시 뜬눈으로 사람들이 밤을 지새워야하며, 여전히 시신침탈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을 의미했다. 평일이 돌아오고 지방에 거주하며 생업에 종사해야하는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서울로 달려올 수 없었다.

저녁 6시-7시, 강릉에서도 "우리가 백남기다"

지역에서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답답했다. 그렇다고 매번 서울로 달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같은 생각을 하는 주변 사람들끼리 피켓이라도 들자 싶었다. 무엇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SNS에 공지를 띄웠고 몇몇 사람들이 모였다.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차가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강릉 홈플러스 앞 오거리, 신영극장 앞 횡단보도, 번화가로 들어가는 시내 골목 입구에서 궂은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들었다.

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 반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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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 반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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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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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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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28일 진행한 1인 피켓시위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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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고갈된 지

비를 맞으며 한시간 동안 진행한 피켓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결국 경찰이 요청한 시신부검 영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담했다. 이미 경찰이 직사로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백남기 농민의 모습과 쓰러진 뒤에도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쏘는 영상이 있었고, 300여일이 넘도록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남겨진 병원 기록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서 다치고, 돌아가셨다는 증거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고인의 몸을 부검하여 자신들의 잘못으로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고 싶어했다. 표면적으로는 정확한 수사를 내밀었지만 그 내심에 깔린 의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인의 장례식장을 경찰 병력으로 겹겹히 둘러싸고 조문을 온 사람들조차 출입을 금지시켰던 경찰이었다.

만약 경찰의 진압과 폴리스라인을 넘은 시민들이 모두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수사와 처벌 역시 둘 다에게 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던 날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소환과 조사를 받고 벌금을 부여받기도 한 반면, 경찰측 책임인사들은 제대로 된 조사에도 불응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더 이상 이렇게 돌아가는 사회의 불공정한 모습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부 집권하에 일어났던 여러가지 굵직한 일들에 지칠대로 지쳐있는 지금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의 싸늘한 몸마저 부검을 해야겠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고 있지 않는 공권력의 모습을 보면서 어디에 희망을 걸고 살아야 할지 몰라 나온 것이다.

강릉에서 시민들의 1인 피켓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또한 내일(30일부터) 강릉 신영극장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를 3일간 설치,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분향소 설치와 관련하여  '백남기 농민 분향소 설치 적극 저지' 지침을 내렸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도 방해하려 드는 경찰의 태도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자리잡지만 분향소는 이미 전국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강릉에서 이와 관련한 시민들의 활동은 페이스북 페이지 '故백남기농민 강릉지역 분향소(https://www.facebook.com/baeknamkigangneung)'를 통해 알릴 예정이다. 이 밖에도 강릉지역에서 피켓시위 등에 동참하고 싶은 분들의 참여와 연락을 기다린다.



태그:#강릉, #백남기농민, #1인피켓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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